나는 확장 되어 있었다.
2020년 연말에 시작해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는 상담.
시작은 여러 복합적인 이유에서 정말 무거운 마음을 짊어지고 갔었다.
그동안 묵혀있고 쌓여만 있던 내 감정과 상처의 흉터, 쓰레기 들이 정리되지 못하고
직장에서 그것이 터져버리며 나를 나락끝으로 몰아갈 즈음, 어렵게 심리상담소의 문을 두드렸었다.
다행히도 나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있었는지 그렇게 스스로를 구제하는 방법을 찾아냈었나보다.
1년 8개월간의 상담기간동안 직장은 여전히 재직중이고,
그당시 만나던 남자친구와는 이별도 했고,
투잡을 하면서 원래 이루고 싶던, 원래 잘하던 재능을 소소하게 나마 발현하고있고,
새로운 좋은 사람을 만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며 결혼을 준비중이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집안끼리 기싸움이며 섭섭한거며 메리지 블루며
그렇게 어렵고 힘들다는데,
주변을 돌아보며 더욱 여유롭고 포용할 줄 알고,
과거의 나를 돌아보며 부족했고, 안쓰러웠고, 맑았고, 사랑스러웠던 나를 기억해 보기도한다.
20대때부터 나는 현모양처가 꿈이었는데.. ㅎㅎ
나의 엄마는 나와 소통과 감정공유가 잘 되지 않는 극대립의 성향과 기질이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내 감정, 마음을 이해받지 못한체 꽤 외롭게 성장했었다.
엄마는 가정주부라서 나를 케어해 주시기는 했지만 이제 와 생각하니 그건 통제였었다.
엄마의 방법데로, 엄마의 뜻대로 하려는.
자기주장을 할 필요가 없이 성장한 유년시절(엄마가 다 케어하고 통제해주었기 때문에..)을 거쳐,
사춘기가 되며 내 뜻과 의지와 엄마랑 부딪히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졌고, 친구같은 모녀사이보다는 그냥
혈연에 의한 모녀관계였던 것같다. 물론 의절하고 대화가 단절 될 만큼 사이가 극한이인건 아니었지만
살가운 사이는 아닌 관계.
엄마는 또 살림에 취미가 없으셔서 가족들 식사를 잘 챙겨주지 않으신다.
물론 밥과 김치는 있지만 국이 없을때가 많고 밑반찬 또한 늘- 콩나물 무침, 두부부침 등 매우 간결한 반찬들.
물론 챙겨주시는 엄마가 아직 계시고 집에서 먹을수 있는 밥이라는것에 무척이나 감사하지만 간혹 힘들게 일을 마치고 온 나와 동생 아버지에게 김치와 쌀밥. 뿐인 저녁상을 볼때면 왜그렇게 서러운건지..
그래서 더욱 나는 좋은 엄마가 되어보고 싶고, 진수성찬을 차려주는 아내가 되고싶었던 거 같다.
모든것이 나의 로망데로 되지 않아서 현실이고 부딪히면서 내려놓아야 하는것이 결혼이다 보니 그래서들
결혼준비가, 결혼생활이 불행하다고 하는건 아닐까.
나 또한 늦은만큼 또 뭐가 많이 준비되어있길 바라고, 남과 견주어 우리또래의 부부들의 모습을 보며 좌절할때도 있지만 어쨋든 살아가야 할 나의 삶이 아닐까.
비교하고 견주어서 달라지는 것이 없다면 나의 주어진 안에서 노력하고 잘 일궈가야겠지.
오히려 늦은 결혼이라 주변의 친구들, 지인들이 겪은 것들을 익히 보고 들은지라 어느정도 감내할 마음의 준비도, 각오도. 또 많이 바라지 말아야겠다는 선행학습이 되어 있는것 같기도하다.
늦은 만큼 남보다 더 행복하게 살려는 욕심보다는 그냥 이제 내 인생에 들어오게된 예비 남편과 예비시댁, 앞으로의 모든 예비 결혼생활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스스로 잘 견디어주길.
혼자 버텨온 시간들도 많이 버겁고 힘들었지만 이제는 그나마 같이 기대어줄 사람이 생겼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우뚝. 서 있어야겠지.
지난 주말 상담을 받으러 가는 길에 문득, 작년 이맘때의 감정이 떠오르며,
2021년의 나는 상담소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오며 일주일치 묵은 빨래한 빨랫물을 양동이에 한가득 담아
낑낑대며 내려오던 마음이었는데.
2022년의 나는 같은 계단을 내려오며 한손에 놀이동산 풍선을 잔뜩 쥐고 하늘을 나는 상상을 하는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울질 성향이기도 하고 정적이고 불안했던 내가, 요즘 참 평온하고 안정된 마음의 상태가 되었다.
나는 그렇게 마음과 감정이 또 확장되어 있었다.
이렇게 일년사이 달라지는게 사람의 마음이고 상황인데.
늘 좋은일만 있고 늘 나쁜일만 있으란 법을 없겠지.
나의 마음을 잘 지켜 나의 인생을 잘 걸어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