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인정했더라면
남과 다름을 내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인어공주는 애초에 본인의 물고기 다리를 혐오했던건 아닐까.
인간들의 다리, 뭍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동경하며 본인이 이룰 수 없는 현실에 매우 괴로워 했었나보다.
반대로 물에서도 뭍에서도 숨쉴 수 있는 자신을 인정했더라면, 우아하고 아름다운 물고기 꼬리를 가진 자신의 하반신을 사랑했더라면...
그래서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존심과 목소리마저 내버리고 왕자의 곁에 있으려 하였지만 목소리를 잃은 그녀는 왕자에게 내가 당신을 구했노라 말조차 할 수 없었고 그렇게 왕자와 다른 여인의 결혼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댓가는 인어공주의 존재조차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남에게 기준을 두고, 유명한 위인처럼, 어느 성공한 사업가처럼 목표를 두고 롤모델 이라고도 한다.
특히 어려서 부터 우리나라는 태어나면서부터 입시라고 할 정도로 학업, 진로, 미래, 직업에 대한 부모들과 사회적 인식, 기대 수준이 매우 높다.
그러면서 말로는 개성있고 특기와 장점을 강화시키는 교육을 해야한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한가지에 몰두하여 있는 아이를 본다면 많은 어른들은 "우리아이가 조금 문제가 있을까요?" 라며 상담을 하러 가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까?
그림 속 아이는 뭍에사는 사람의 아이이지만 바다를 동경하고 바다 생물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현대의 인어공주이다.
여느 여자아이들처럼 공주 옷, 인형놀이, 핑크색, 왕관, 엄마의 장신구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있다.
이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고래, 물고기, 조개, 문어 등 거침없이 이야기할 수 있으며 자신의 바다를 확고한 마음으로 사랑한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나는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이야기를 왜 그렇게 슬픈 비극으로 만들어야 했을가 늘 궁금했고 저자의 의도가 매우 궁금해왔다.
어쩌면 지고지순하고 첫사랑의 절절한 마음을 품고 사라져버린 어느 슬픈 사랑시 같기도 하겠지만,
참으로 답답하기도 하다.
나를 인정해야 나를 남앞에 드러낼 수 있다.
내가 드러나야 남이 나를 볼 수 있다.
자신을 사랑하는 인어공주.
내가 재해석하는 인어공주는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