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타이저] 목표가 선명해서 불안한 나에게

프롤로그

by 현지



식당에 가면 늘 고민에 빠진다.

메뉴판의 수많은 음식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건, 나머지 수십 가지의 맛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와 같다. 어렵게 고른 한 접시를 마주하면, 배가 불러 터질 것 같아도 꾸역꾸역 바닥을 비워냈다. 그것이 내 선택에 책임을 지는 완벽한 식사라 믿었으니까.


내가 달려온 길도 다르지 않았다. 무언가 시작했다면 반드시 끝을 봐야 했고, 안전해 보이지 않는 길은 섣불리 발을 디디지 않았다. 중간에 한눈이라도 판다면 그건 끈기 없는 이들의 변명이라 치부했다. 사회가 정해준 시간표대로, 낙오되지 않으려 숨을 몰아쉬며 목구멍까지 차오른 정식 코스를 밀어 넣던 시간들.


이상했다.

목표가 선명해질수록 마음은 지독하게 불안해졌다. 전력질주 끝에 완주 메달을 목에 걸어야만 비로소 ‘해냈다.’고 말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그 끝에 서 있는 내 모습은 그려지지 않았다. 내가 원한 건 메달이 아니라 그저 달리는 순간의 즐거움이었을지도 모른다.

목표가 있기에 불안하다는 걸 깨달은 순간,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갑자기 왜?"

“다시 그림 그리고 싶어서요.”


남들이 말하는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메인 요리를 비우는 대신, 나는 내가 직접 고른 수만 가지 색의 소스들을 하나씩 찍어 먹으며 나만의 맛을 찾아가기로 했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작은 동네에 작은 화실을 차린 건 내 인생 첫 번째 ‘찍먹’의 시작이었다.


어쩌다 보니 시작된 이 '찍먹 라이프'는 나에게 있어 여름방학이나 다름없다.

숙제 같은 건 잊어버린 채 여기저기 기웃대다가, 해가 뜨거우면 그늘을 찾아 쓱 들어가 쉬기도 하고,

출출하면 시원한 수박 한 입 베어 물고 배부르면 넙데데하게 누워 배도 좀 두들겨보고,

땀이 식으면 다시 일어나 또 어디로 가볼까 느릿하게 걸어보는 배짱이 같은 삶.


누군가는 이 기웃거림을 한우물을 파지 못하는 변덕이라 부르겠지만, 나는 '우아한 일탈‘이라 부르기로 했다. 탕수육 소스를 부어버리면 고기가 금세 눅눅해지듯, 삶에 너무 큰 의미를 부어버리면 일상의 바삭한 기쁨들도 금세 사라지고 만다.

나는 그저 매 순간 가장 바삭한 상태의 행복을 딱 한 입씩 맛보며, 내 박자대로 걷고 싶을 뿐이다. 대단한 결말이 아니어도 좋다. 지금 내 눈앞에서 반짝이는 사소한 기쁨들을 놓치지 않고 눈맞춤하는 것. 잃어가던 것을 다시금 붙잡아보는 것. 낯선 풍경을 기어코 찾아 눈에 담는 것.

그렇게 오롯이, 나로 서보려 한다.



이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완벽한 정답보다는 모퉁이마다 놓인 작은 오답들을 더 사랑하기로 한 산책자의 일기.

생계형 노동에 집착하며 질주하다 창작자의 길로 들어선 평범한 사람의 다정한 방황기.


나는 이제 완주 메달 대신, 내 마음이 머물다 간 자리에 작은 스탬프를 찍으며 걷기로 했다.

비워내야 할 그릇이 아니라 즐겨야 할 맛들이 가득하다는 걸 알게 된 지금,



나의 진짜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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