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먹 라이프'를 즐기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충동성이다.
언젠가 해봐야지 하고 꿈꿔왔던 일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조금 관심은 있었으나 금세 포기했던 것들, 혹은 전혀 상상도 못해본 것들과 더불어 내 일이 아닌 것처럼 스쳐 지나왔던 것들까지 하나 둘 꺼내 보아야 한다. 거창할 필요는 없다. 수많은 리스트 중 가장 가까이에 있는 스탬프부터 하나씩 찍어나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찍먹리스트와 버킷리스트는 조금 결이 다르다. 내 찍먹리스트중 하나는 물고기였다. 정확히 말하면 물고기를 키우는 것.
누구나 금붕어 한 번쯤 키워본 적 있을 것이다. 내 기억 속 금붕어는 사라진 지 오래다. 키우긴 했었나. 거북이랑 햄스터, 고슴도치는 확실히 기억나는데 이상하게 물고기에 대한 기억은 없다. 오히려 나이를 먹으면서 물에 사는 생물들을 동경하게 됐다.
나는 물을 무서워하니까.
내겐 공포의 대상인 물 속에서 당연하게 숨을 쉬어가는 그들이 마냥 부럽다. 사람들 붐비는 건 힘들지만 아쿠아리움 가는 걸 좋아하고, 동네 수족관마저 그냥 못 지나친다. 제각각으로 생긴 물속 생물들은 TV로 봐도 반갑고 신비롭다.
그들의 세계는 한없이 고요해 보여서일까. 생존 욕구가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들의 세계에 있을 또다른 긴장이 궁금해졌다.
“금붕어는 생각보다 많이 자란대. 어항도 커야 한대. 그리고 죽기라도 하면... 너무 크고 빨갛고 좀 그래. 엔젤피쉬도 너무 예쁜데 만약에 죽으면 징그럽겠지. 그때 우리 수유동 카페에서 봤던 그런 애들은? 아 근데 걔도 죽으면 좀... 그래도 큰 애들이 예쁘긴 한데...”
“죽이려고 키우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닌데... 물고기는 워낙 수명도 짧고 잘 죽으니까.”
“짧게 사는 동안만이라도 좋은 환경에서 행복하게 해주면 돼.“
“죽은 물고기는 솔직히 좀 무서워.”
“뭐든 함께하려면 어떤 이별이든 감수해야지.”
맞는 말이다. 뭐든 함께하려면 그래야지.
안 해본 걸 하려면 당연히 그래야지.
남편은 죽여도 봐야 잘 키운다는 무서운 소리로 용기를 북돋았다. 그래도 내 욕심에 괜한 생명을 해칠 순 없으니 고심했다. 결국 초보자가 입문하기 가장 좋은 물고기들 중 고르고 골라 구피와 플래티가 살아남았다. 결승전은 대면 면접이었다. 직접 수족관에 가서 하나하나 여쭤보고 찬찬히 관찰했다.
승자는 플래티. 구피의 형형색색 화려한 꼬리에 잠시 매료되긴 했지만, 조금 더 통통하고 약간 멍청미가 묻은 얼굴에서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졌다. 성격도 순하단다. 구피와 같이 키울 수도 있고, 다 커도 4cm 내외라는 말에 조금 안심이 됐다. 물고기들에겐 미안하지만 얼굴을 보면서도 그들의 마지막을 상상했다.
나중에 죽었을 때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눈을 질끈 감지 않고도 뜰채로 건져낼 수 있는가.
건져낸 뒤에도 죽음의 원인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가.
인간이란 이토록 이기적이다.
“오늘도 2마리나 죽었어.”
“또?”
“내가 잘 못 키우나봐.”
“물을 너무 자주 갈아줬나? 아님 자기들끼리 싸운건가?”
“아니야. 다 하라는 대로 했는데... 애들이 다 상태가 안 좋아.”
큰일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살생은 죄다. 자꾸만 죽어가서 개체 수를 채우려 구피까지 데려왔는데. 물생활한지 3개월 동안 용궁 보낸 플래티와 구피들을 다 합치면 나는 무조건 지옥행이다. 이정도면 희대의 연쇄살어(魚)마가 따로 없다. 심지어 수족관 사장님께서 잘 안 죽는다며 추천해주신 샤페테트라 3마리까지 전부 전멸했다. 절이라도 가야 할 듯싶다.
첫 한달은 새로운 물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약한 개체들은 일찍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오히려 처음에는 모두 괜찮았다. 한 달 정도 지나니 똑같이 물갈이를 해주고 똑같이 밥을 소량 주는데도 백점병이 돌았다.
물고기들의 감기라 불리는 백점병은 초기에 잘 관리해주면 곧 좋아진다고들 했다. 배운 대로 소금욕도 해주고 수온도 높이고 수질정화제도 정량 넣어줬다. 그럼에도 내 노력을 비웃듯 시름시름 앓다 배 뒤집고 늘어지기 일쑤였다.
죽은 물고기가 무서운 것보다도 나 때문에 죽었을까라는 죄책감이 훨씬 무서워졌다.
보통 이렇게 집단 폐사의 경우 물이 깨져서 그렇다고 한다. 어떤 원인이든 물고기들이 살 수 있는 조건의 환경이 박살났단 소리다. 그래서 보통 이럴 경우 겸허히 받아들이고 어항부터 물고기들까지 전부 리셋하거나, 물생활을 중단한다고들 한다.
남은 2마리마저 떠나보낼 순 없었다. 필사적으로 살리고 싶었다. 나도 잘 할 수 있다는, 새로운 생명체들과 마음껏 공존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고 싶었다. 그렇게 더 오래 함께하고 싶었다.
내가 얘네라면, 어떤 물에서 살고 싶을까.
적당히 수초도 있고, 때맞춰 먹이도 있는 물.
친구들도 있고 헤엄칠 공간도 넓은 물.
플래티는 열대어니까
따뜻한 물.
아.
수온 체크.
원인은 생각보다 사소하고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동안 물갈이 날짜와 물의 비율, 양은 기가 막히게 딱딱 맞췄는데, 환수할 때의 수온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쪼로록 흐르게 환수해준다 해도 따뜻한 물을 좋아하는 물고기들에게 점점 찬 물이 섞이면 당연히 춥지. 놀라지. 힘들지. 아프지.
바보같은 실수 하나로 연쇄살어마가 된게 너무나 미안했다.
수온을 정확히 맞춰 환수를 한 지 일주일 만에 남은 2마리의 백점병은 씻은 듯 나았고, 녹고 있던 꼬리까지 활짝 폈다. 움직임도 자연스러워졌고 똘망똘망해졌다. 하필 똑같은 종에 암컷, 수컷이라 둘이 아주 전쟁 속에 지켜낸 사랑 같은 느낌이다. 귀엽게 생긴 애들끼리 꼭 붙어 다닌다. 그래, 세상에 너희 둘 뿐이다.
그들의 세계를 배우고 조심스레 온도를 맞춰 가는 일. 끝까지 가보지 않으면 절대 몰랐을 행복이다.
사소한 온도를 맞추는 법을 배우기 위해 나는 수많은 이별을 맞이해야 했다. 이마저도 완벽한 물집사가 되려던 욕심에 가려져 가장 본질적인 배려를 놓쳤던 것이다.
그들의 곁을 지키고, 관찰하고, 해보지 않았다면 평생 ‘물고기는 키우기 힘들다’는 편견 속에 갇혀 앞으로도 물고기는 동경의 대상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비록 연쇄살어마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얻었지만, 이제야 내 어항은 배려와 온기로 채워지는 중이다.
오늘도 귀염둥이 2마리와,
더 귀엽고 작은 19마리의 새끼들이 어항을 빛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