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철이다.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은 딱 내가 만든 포스터 같았다. 스물아홉의 여자가 생각하는 가장 보수적인 옷을 골라 입은 날.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0.1mm의 자간에 집착하며 클라이언트의 변덕스러운 요청에 맞춰 ‘진짜_진짜_진짜_최종.jpg'라 이름 붙인 파일들이 끝도 없이 이어지던 피로 끝에 마주한 마지막 미팅이었다. 디자인의 세계는 정답이 명확해서 안심이 됐다. 인쇄물이 나오면 눈에 불을 켜고 오타를 검수하고, 색감의 오차를 줄이며 안도했다. 적어도 그 세계 안에서 나는 무능하진 않았다.
하지만 퇴근 후 침대 옆 구석에 세워둔 캔버스를 마주할 때면 세상 찌질이가 따로 없었다. 그깟 하얀 사각형이 뭐라고. 손이 굳을까 봐. 혹은 언젠가 영감이란 게 예고 없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로 덩그러니 세워둔 이젤은 어느덧 밀린 숙제가 되고 말았다.
언젠가는 그리겠지.
입버릇처럼 내뱉던 그 말은 시간이 갈수록 목을 죄는 밧줄이 됐다. 화가라는 꿈은 늘 ‘언젠가 도달해야 할 성지’였다.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진지하고, 처절하며, 완벽한 예술가적 고뇌를 짊어져야만 한다고 믿었다. 내 모든 시간을 예술이라는 영역에 푹 절여내야 되는 줄 알았다. 그러지 않곤 결국 가짜이거나 허세일뿐이라는 자격지심이 늘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실무를 위한 스케치를 제외하곤 가벼운 낙서조차 할 수 없었다.
모니터 앞에서 10시간 내내 시안을 뽑아내면서도, 정작 캔버스 앞에서는 30분도 앉아 있기 힘들었다. 내 노력이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할까 봐. 내 작품이 남들 눈에 고작 취미 수준으로 비칠까 무서웠다. 그래서 숨었다. 일이 바빠서. 컨디션이 안 좋아서. 오랜만에 지인 약속이 있어서. 꿈은 그렇게 방치될수록 독을 품고 부풀어 올랐다.
어느 날, 막내 고양이가 크게 아팠다.
내 20대를 통째로 지켜본 녀석이다. 큰 수술을 견디고 수척해진 작은 몸을 보고 있자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무력했다. 그저 어떻게든 그의 온기를 붙잡아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다시 붓을 들었다. 대단한 철학 같은 건 없었다. 그냥 그나마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이라서. 나도 너를 사랑한다는 마음을 남기고 싶었다. 그 밤부터 퇴근 후의 풍경이 바뀌었다. 이상하게 고양이를 그리는 동안은 캔버스가 무겁지 않았다. 붓을 든 손에 힘을 뺐다. 누군가를 감동시켜야 한다는 비장함은 사라졌다. 그저 내 고양이의 몰랑한 코끝과 웅숭깊은 눈빛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 싶다는 마음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이었다.
"저희 강아지도 그려주실 수 있나요...? 구매하고 싶어요."
이 가벼운 시작은 내게 생각지도 못한 구원이었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 짓눌려 붓 한 번 들지 못했던 나를, 다시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으니까. SNS를 통해 들어온 첫 주문을 시작으로 아이디어스, 스마트스토어에 당당히 입점하던 낯설고 설레는 순간들은 아직도 생생하다. 나 회사 밖에서도 뭔가를 할 수 있구나!
주문받은 그림을 그릴 때마다 겪어보지 못한 희열을 느꼈다. 숨까지 참아가며 1호짜리 세필붓으로 털을 한 올 한 올 그린다. 끝없이 쌓이는 선들이 만나 깊이가 생기고 생명력이 살아난다. 사진과 똑같이, 혹은 사진보다 더 사실적으로 그려낼수록 안도감이 들었다. 의뢰인의 눈물 젖은 감사 메시지를 받을 때면 묵직한 보람에 마음이 울컥했다. 내 캔버스의 무게는 분명 가벼워지고 있었다.
이상했다. 성취가 쌓일수록 또 다른 허기가 고개를 들었다. 정답이 없는 예술을 하고 싶다며 큰소리쳐놓고, 다시 사진이라는 답안지 뒤로 숨어버린 겁쟁이가 되어있었다. 물론 리얼리즘이 취향인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30점의 초상화를 그려낸 후에야 내가 그 부류는 아니란 걸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도망치고 있었다. 그림이 사진과 완벽하게 닮아갈수록 사람들은 환호했고, 통장엔 정직한 숫자들이 찍혔다. 하지만 묘하게 마음 한구석이 비어갔다. 기술이 정교해지는 만큼 창작자로서의 나와는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과연 나는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그렇다고 반려동물 초상화를 대충 그린 적은 없다. 주문이 들어오면 여전히 사적인 감정은 최대한 덜어내고, 내가 바로 이 구역의 털치기 장인이란 마음으로 임한다. 작가라고 해서 그림 따라 태도가 달라져선 절대 안 되므로. 누군가에게 단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라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그 작업에서만 할 수 있는 온 정성과 힘을 쏟아붓는다. 그게 의뢰인에 대한 예의이자 내 자존심이다.
다만 그게 작가 현지의 전부는 아니라는 거다. 지금도 여전히 내 그림을 그릴 때엔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간다. 괜히 멀쩡한 걸 망쳐버리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왜 이렇게 못 그리나 싶어 울적하기도 하다. 역시 창의적이지 못한 머리통이라며 다시 동물들을 끄적거리며 연습하기도 한다. 그래도 이렇게 어긋난 그림들이 더 오래 남는다. 조금은 덜 정확하고, 조금은 덜 그럴듯하지만 그 안에는 적어도 내가 있으니까.
꿈은 방치될 때보다 조금씩 건드려질 때 더 지독한 갈증을 부른다.
그 고통이 어느 정도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