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살. 가족을 떠났다.
하루 왕복 3시간의 통학도 지쳤고, 독립이 빠를수록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유와 맞바꾼 책임이 얼마나 큰 짐인 줄도 모르고. 어리석은 독립을 시작으로 다섯 번의 이사를 했다. 아니, 다섯 번의 산을 넘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집을 옮기는 일은 매번 다른 방식으로 치열했다. 내가 머문 곳들은 늘 결핍 투성이었고, 산다기보다 살아남는 기분이었다.
첫 번째 집
복학하면서 얻은 원룸형 아파트. 전세였다. 이미 학자금대출에 생활비도 팍팍한데 월세 부담으로 학업에 더 지장이 생길까 싶으셨던 건지, 엄마는 통장 하나를 탈탈 털었다. 엄마의 노후를 야금야금 갉아 얻어낸 방 한 칸은 아쉽게도 안식처가 되어주지 못했다. 그곳에서 희망 대신 좌절과 어둠을 먼저 배웠다. 여러모로. 그래서 지금은 기억하고 싶지도 않고 뉴스 어딘가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곧장 채널을 돌려버리는 곳이 되고 말았지만.
아무튼 학교 근처는 왠지 아지트가 될 것 같았고(친구도 없었지만), 밤새 술에 찌든 청춘들의 소란이 있을 것 같았다. 학교 기준 걸어서 20분, 버스로 10분 정도 가면 터미널을 둘러싼 번화가가 나왔는데 딱 거기였다. 깨끗한 건물, 안전한 엘리베이터, 대학생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인프라, 사는 내내 아르바이트와 과제 폭탄으로 집에선 잠만 잤는데도 후덜덜한 관리비, 술에 취한 날 처음 데려온 고양이 둘.
두 번째 집
이른 취업 때문에 급하게 구했다. 나도 이제 서울 사는 여자다!
엄마는 두 번째 통장도 탈탈 털었다. 눈물을 머금고 들어간 용산구의 50년도 넘은 투룸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없다. 7층 중에 6층에 살았다. 3층까지는 계단도 돌계단이다. 그 누구보다도 택배기사님들께 가장 송구스러웠다. 늘 현관 앞에 기사님들 드시라고 작은 음료를 채워두곤 했다. 7층 삼촌은 생수도 배달시켜 먹더라. 나는 고양이 모래가 최대였는데.
술 먹고 집에 오면 정신 바짝 차리고 계단을 오르느라 술이 다 깬다. 한 번은 크게 넘어져 정강이를 깨 먹었다. 발목부터 무릎 아래까지 시퍼런 피멍이 번져갔다. 하루에 두어 번 연고를 펴 바르는데, 어느 날 찔끔 나온 눈물이 곧이어 수도꼭지를 튼 거처럼 쏟아졌다. 꼭 망망대해 같은 서울 한복판에 혼자 덩그러니 표류된 기분이었다. 숨이 차오르게 돌계단을 오를수록 서울의 화려한 야경이 발밑에 깔렸지만, 정작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낡고 외로운 문 하나. 계단을 오를수록 내가 가질 수 없는 세상의 불빛들은 더 멀어지는 것 같았다. 금이 간 방 안에서 퉁퉁 부은 눈으로 잠에 들었다.
게다가 용산집에는 유독 돈벌레가 많이 출몰했다. 퇴근하고 방 불을 켤 때마다 심호흡은 필수. 정말 매일... 너무... 빠르고 징그럽고 무섭고... 파리 한 마리만 보여도 기겁하는 내가 어떻게 그들과 2년을 살았는지. 기립박수라도 쳐줄 일이다. 돈벌레는 돈을 가져다준다며 익충이라는데 말도 안 된다. 미안하지만 돈도 안 가져다줬고 무엇보다 내 정신건강에 해로우면 해충이다.
겉에서 보면 할렘가 수준으로 낡은 아파트였다. 바로 옆 동네는 부촌이라 재개발이니 뭐니 말은 많았다. 아이러니한 건 주방의 작은 창을 열면 어렴풋이 한강이 보였다. 다들 그렇게 버티고 있었나 보다. 창살 없는 감옥에서의 유일한 낙인 것처럼
세 번째 집
나는 굉장히 소심했다. 당시 회사에서도 그걸 너무 잘 알았다. 웬만한 개인사정, 건강상 문제 등의 사유를 써봤자 온갖 달콤 쌉싸름한 말들로 조금만 더 부탁할게 현지씨. 라며 내 퇴사를 미루기 일쑤였다. 그렇게 아닌 척 1년을 더 부려먹길래 빼도 박도 못할 명분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사했다. 최대한 외곽 쪽으로 멀어지면 당연히 그들이 놓아줄 거라 생각했다. 3개월을 더 부려먹더라. 미치는 줄 알았다.
돈벌레 아파트와 비슷한 금액의 집을 찾다 보니 전부 언덕 위 빨간 벽돌 빌라들이었다. 이런 곳에도 집을 짓고 사람이 살 수 있구나 싶을 정도의 가파른 언덕이었다. 심지어 꼭대기층인 4층이다. 6층보단 낫겠다 싶어 선택했는데 오만이었다. 그래도 이 집에 살 때가 제일 날씬했다. 건강 하나는 잘 챙겼다. 언제쯤이면 계단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여름 겨울 할 거 없이 사계절 내내 숨이 찼다. 그리고 사계절 내내 먹바퀴가 들어왔다. 먹바퀴는 산이나 나무에 사는 애들이라 집에 들어오면 오래 못 버티긴 한다. 대신 집바퀴보다 훨씬 새까맣고 길고 크다. 정말 크다. 시각적 충격에서 끝나지 않는다. 날개 때문인지 화가 난 건지 쉬식 쉬시식 소리도 난다.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고양이들이 벌레를 갖고 놀거나 죽여놓는다고? 우리 집 애들 나 닮아서 쫄보다. 아무것도 못 한다. 벌레만 봤다 하면 동공 커지고 냐아아아- 하면서 내 뒤로 숨는다. 역시 지켜야 할 존재는 우리를 용감하게 만든다.
누가 집에 데려다준다고 하면 항상 언덕 아래 편의점에서 내려달라고 했는데, 게 중 한 소개팅남은 걱정된다며 집 앞까지 가자고 했다. 극구 거부했으나 기어코 내 가난을 확인시켜 주는 그의 다정한 고집이 미웠다. 하필 눈이 내리고 있었다. 곧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덜덜 떨리던 자동차와 핸들을 꽉 잡은 그의 갈 곳 잃은 동공을 기억한다.
네 번째 집
화실 오픈을 준비하면서 이사도 함께 했다. 이번엔 상가 임대까지 신경 써야 했다. 게다가 거실 있는 투룸이라니. 조금 더 비싸더라도 욕심이 났다. 청춘과 맞바꾼 내 통장도 탈탈 털었다. 서울에서의 벌레천국을 벗어나고 싶었다. 고양이들에게도 조금 더 깨끗한 환경과 좋은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가장 큰 변곡점인 만큼 지역도 의정부로 한 칸 더 올라왔다. 주변에선 좀 있으면 북한까지 가겠다고들 농담한다.
이번에도 언덕 꼭대기다. 대신 1.5층이라 덜 힘들다.
전 세입자가 아이를 키우고 계셔서 살기 괜찮은 줄 알았다. 집을 보러 간 날, 아무래도 저층이라 조금 습한데 제습기 틀면 괜찮아요~ 라며 말갛게 웃던 그녀. 그 웃음에 속으면 안 됐었다. 강북집도 비만 오면 천장에 물이 새곤 했어서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는 삶의 질을 크게 흔들더라. 이 집은 사계절 내내 집게벌레가 돌아다녔다. 돈벌레나 먹바퀴만큼 크거나 빠르진 않지만 생전 처음 보는 비주얼에 기가 막혔다. 이로써 뜻밖의 벌레 3종 세트를 클리어했다. 그리고,
이사한 지 3일 만에 막내 고양이가 급작스럽게 떠났다. 손 쓸 겨를도 없이. 강북집 살 때 크게, 오래 아팠는데 그 이후로 심장이 안 좋아졌다는 걸 숨이 멈춘 뒤에야 알았다. 막내 병원 다니기 편하려고 선택한 집이었는데. 고양이들을 위해 주문한 침대가 오기도 전이었다. 지금도 이 집에 내리쬐던 주황빛 햇살이 떠오르면 마음이 저릿하다. 그 햇살 속에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내가 고른 이 집의 습기와 언덕이 영영 나를 짓누를 것만 같았다. 지긋지긋한 결핍들과 작별하고 싶었다.
아무런 고통도 변수도 없는 완벽한 평지만을 꿈꿨다.
다섯 번째 집
아무 걱정 없이 하루라도 편하게 자보고 싶었다. 자취계의 하이클래스는 뭐니 뭐니 해도 역세권 오피스텔. 전세금을 정리해서 엄마 통장을 다시 채워드리고, 월세로 전향했다. 드디어 평지다. 드디어 엘리베이터다. 드디어 주차장이다. 드디어 누수가 없다. 드디어 벌레도 없다! 벽면이 전부 통창! 햇빛 짱짱! 채광 좋고 산뜻하고 예쁘고 첫째 고양이도 좋아하고 안전하고
시끄럽다.
언덕을 넘어 평지로 오면 될 줄 알았고,
계단을 두고 엘리베이터로 오면 될 줄 알았다.
벌레를 피해 깨끗한 건물이면 될 줄 알았다.
가파르고 높고 낡은 세 집에선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변수가 등장했다.
소음.
집 바로 앞에는 전철이 지나가고, 역세권에 대로변이라 밤낮없이 취객도 많다. 머플러 튜닝한 오토바이들과 자동차들이 시도 때도 없이 지나간다. 이 이후로 드림카였던 머스탱이 싫어졌다. 나중에 이사할 때 보니 침대 밑에 한쪽씩 잃어버렸던 이어플러그가 득실거렸다.
벌레처럼.
결국 나는 언덕도, 계단도, 벌레도 벗어났지만 여전히 완벽한 집에는 도착하지 못했다. 전보단 낫겠거니 해서 선택한 모든 공간은 늘 어딘가 조금씩 모자랐다. 참으로 다채롭기도 하다.
어떤 집에서는 숨이 찼고,
어떤 집에서는 버텼고,
어떤 집에서는 잃었고,
어떤 집에서는 도망쳤다.
다섯 번의 산을 넘는 동안 내 몸엔 그 집들이 남긴 고약한 습관들이 고스란히 배었다. 하지만 그 지긋지긋한 집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여전히 세상 모든 곳이 매끈한 줄로만 아는 철부지였을 거다. 집들은 결핍이라는 이름으로 덜 큰 어른인 나를 길러냈고, 나는 그 낡은 틈새들 사이에서 울고 웃으며 단단히 살아남았다.
내가 그토록 찾던 평지란 어떤 결핍 앞에서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마음의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이제 여섯 번째 집에서 또다시 낯선 나를 마주하고 있다. 이번엔 조금 다를까 싶지만 여전히 확신은 없다. 평지에 엘리베이터도 있고, 벌레나 소음도 없다. 내 입맛대로 인테리어까지 해놓으니 제법 그럴싸하다. 그렇다고 이 집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언젠가 또 예상치 못한 결핍을 마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래왔듯 조금 부족한 채로도 버틸 수 있도록 나를 잘 고쳐 써보려 한다.
다섯 번 넘은 산, 여섯 번은 못 넘을까.
그래서인지 이번 집은 덜 무서운 것 같기도 하다.
뭐, 살아보면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