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수와 여덟수

by 현지



"언니 나랑 사주 보러 갈래?"



몇 해 전, 친한 동생 민의 제안이었다.

직장, 가족, 건강 등 그저 무탈하게 흘러가는 듯하다가도 문득,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싶은 날이 있다. 그저 그런 상처가 여느 때와 달리 따갑게 박히는 날도 있다. 유독 그런 날이 많은 해를 우리는 악재 혹은 나이에 따라 '아홉수라 그렇다.'라고 생각한다.


"뜬금없이?"

“나 아홉수인가 봐. 요즘 좀 그래. 좋은 말 들으면 안심될 것 같아."

"너 교회 다니잖아."

"아 언니!"


민은 나보다 세 살 어리다.

졸업반 시절 저녁 아르바이트를 하나 더 구했고, 첫 출근한 날이 민과의 첫 만남이었다. 강렬한 핫핑크색 머리에 진한 아이라인. 아무렇게나 구겨신은 새빨간 운동화까지 온통 화려했다. 낯가림이 심해 남의 눈을 마주치기 힘들어하는 나와는 달리 참 빤히도 나를 쳐다봤다.

'안녕? 이름이 뭐야?' 라며 쿨하게 인사를 건네길래 당연히 나보다 언니겠거니 싶어 존댓말로 대답했다. 며칠 후 회식자리가 되어서야 민의 나이를 알고 상당히 괘씸했다. 정작 민은 '솔직히 내가 더 삭았잖아~ 언니도 인정하지? 맞지 언니?' 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필 집에 돌아가는 길도 비슷해서 졸졸 따라왔다. 민은 170cm가 넘는 롱다리라 짧은 내가 아무리 빨리 걸어도 금방 바짝 붙었다.


따라오지 마!

따라가는 거 아니거든? 나도 그쪽으로 가야 되거든?

아 그냥 다른 길로 가!

아 나 피곤해. 그냥 같이 가자 언니야~

붙지 마. 팔짱 노노야.

아 왜~

아 더워! 붙지 마!


고양이 같던 나와 강아지 같던 너. 여름밤이 내뿜는 비냄새를 맡으며 집에 오던 내내 서로 뾰로통했던 기억이 있다. 그랬던 그녀가 벌써 스물아홉이라니.


민과 약속을 잡고 캔맥주 하나를 꺼냈다. 내 뚱뚱한 동거묘를 쓰다듬으며 들이킨 청량감에 기분이 좋다가도, 그녀가 평소답지 않은 목소리로 읊은 '아홉수'라는 단어가 자꾸만 머릿속을 간지럽혔다.






나는 28살에 유독 안 좋은 일들이 많았다.

경제적, 정신적, 육체적으로 가장 많이 괴로웠던 한 해였다. 퇴사, 이직, 또 퇴사, 또 이직.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졌고, 스트레스를 술로 풀기 바빴다. 있는 줄도 몰랐던 난소의 혹이 터지는 바람에 난생처음 119도 불렀고, 데굴데굴 구르다 응급수술까지 받았다. 눈떠보니 아랫배에 갑자기 생긴 세 개의 흉터와 건강 이상은 생각보다 더 공포스러웠다. 자궁내막증이 난임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말에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통장은 텅텅.


예민함도 배가 되었다. 장기복용해야 했던 호르몬제 때문이었는지 내내 기분이 오락가락했다. 아무것도 아닌 말에 곤두서고, 아무것도 아닌 행동에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 얼굴이 화끈거리다가 새벽엔 오한이 들어 깨기를 몇 차례. 정상적으로 월경을 하던 몸을 억지로 폐경 상태로 만드는 치료라니. 기쁨을 담당하는 세포들이 전부 사라진 것 같았다. 닿지도 않을 행복을 갈망하면서도, 멍청한 무기력과 우울의 악순환이었다. 주변에서도 나더러 '아홉수가 빨리 온 거다, 넌 여덟수다.' 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할 정도였으니까.


끝나지 않을 줄 알았다.

신기하게도 그 1년을 비웃기라도 하듯 스물아홉의 일상은 꽤나 평온했다.

매일 복용하던 호르몬제를 중단해도 되겠다는 진단. 제법 옅어진 흉터와 통증. 내가 디자인한 제품은 홈쇼핑에서 매진되었다. 드럭스토어 인기 상품에 올랐으며 만약 내가 디자이너 생활을 계속했다면 포트폴리오를 나름 짱짱하게 해 줄 기반이 되었다. 많이 웃었고, 웃음이 절로 났다. 오로지 내 힘으로 인생 첫 차를 구매해 사고 한 번 안 났고, 제대로 된 관계가 주는 안정도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다. 텅장일 줄만 알았던 통장은 성실한 개미가 쌓아 올린 퉁장이 되기도 했다.


나 이렇게까지 행복해도 되나? 싶었다. 행복한 불안감. 딱 그랬다.

진흙탕 속을 지나온 사람은 비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저 고맙게 맞는다. 하지만 맑은 날 맞는 소나기는 옷을 적시는 얼룩부터 보인다. 그래서 행복이 보여도 금방 떠나버릴까 봐. 다시 무너질 것부터 대비한다. 오지도 않은 순간을 끌어와 구태여 먹구름을 만든다. 찬란한 햇살 아래서도 굳이 우산을 펴고 서 있는 꼴이었다.






철학관은 생각보다 밝고 쾌적했다. 어둡고 몽환적인 조명들이 어우러져 왠지 마법사의 서재 같은 느낌일 줄 알았는데. 두꺼운 안경 사이로 번뜩이는 역술가의 인상이 제법 날카로웠다.


옆에서 듣다 보니 우리 민이 참 고생했구나 싶었다. 민은 나보다 더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7년째 한 직장을 지키고 있었다. 그곳에서 시작한 짧은 연애가 화근이었다. 동료들도 다 인정하던 성실하고 평범한 그 남자가 두 달 뒤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이었을 줄이야.


모든 걸 알게 된 예비 신부와 장모가 회사에 들이닥쳤고. 민의 세상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미친. 나도 나지만 네 인생도 참 드라마다. 그 후 일, 돈, 인간관계 등 민을 둘러싼 모든 울타리가 차례로 부서졌다. 집 앞 편의점만 가도 불륜녀네 상간녀네 환청이 들리는 것만 같았단다. 그렇게 스스로를 방 안에 가두며 돌고 돌아 기어이 본인을 미워하기 시작했고, 몇 달을 술과 폭식에 기대고 있었단다.


어떻게든 스스로 빠져나오려는 그녀가 못내 대견해 마음이 아렸다. 담담한 민과 달리 역술가와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 숙연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남은 올해는 아주 좋아~"

“그럴 리가 없는데요."

“맞아. '아주'까진 아니야. 그래도 '아주'라고 생각해야지."

"저 일도 잘렸다니까요."

"에잉.. 인연이 아닌 것뿐이지. 아직 젊잖아?“


눈치 빠른 역술가의 날쌘 태도전환에 욱하는 민이 귀여워 웃음을 참았다. 어찌 됐든 다행이다. 우리 둘 다 '아주' 좋을 거란다. 역술가의 말을 100% 신뢰할 수는 없지만 아홉수라는 말은 200% 신뢰하지 않는다. 내 소중한 민도 그랬으면 좋겠다.



아홉수.

당장 1년 뒤엔 훨씬 더 대단한 어른이 되어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

그러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은데 막상 9년을 돌아보면 별거 없는 공허함.

나는 9년 전과 똑같은데 시간은 자꾸만 나를 잡아당기는 것 같은 초조함.

내 마음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벗어나기 위해 꾸역꾸역 만들어낸 작은 합리화.

그것이 불러온 미심쩍은 미신.

그게 다다.


아홉수와, 아홉수가 한참 지났어도 여전히 불안한 숙녀 두 분은 그래도 한시름 덜어놓은 얼굴이었다.


우리는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운명이라는 걸 만든다. 의미부여가 잦다는 건 그만큼 중심이 무너졌다는 뜻이다. 마음은 아프지만 그러려니 해야 한다. 그저 누구에게든,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해프닝일 뿐. 삶에서 그 무엇도 보장되는 건 없다. 그러니 불안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을 갖게 되는 시간이길 바라며 살자. 같은 하루도 내가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행복이 되기도, 불안이 되기도 한다는 걸 우리는 배웠으니까. 어쩌면 우리는 이미 충분히 괜찮게 살고 있으면서도 자꾸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행복은 너무나 당연한 얼굴로 곁에 머물러 있다. 뻔한 말이지만 뻔한 말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니 우연을 믿자. 물 흐르듯 두자.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우리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즐겼다. 민은 아직도 그날을 ‘특별한 외출‘이라 부른다. 참 오랜만이었다. 고양이가 강아지에게 처음 마음을 열던 그때처럼 까르르거리다가도 얼싸안고 엉엉. 사장님! 흐어엉! 여기! 잔치국수랑 소주! 추가요!


옆 테이블 아저씨 세 분이 생각보다 일찍 자리를 뜨신 이유가 된 것 같아 죄송한 밤이었다.

아저씨들이 계산대에서 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민의 말이 아직도 또렷하다.



"나 딱 몇 달만 버텨볼 거야. 그래도 안 나아지면 그땐 점이라도 보겠지 뭐. 기도도 꾸준히 할 거야. 신이 뭐 한 명이야? 나 불쌍해하는 신 하나쯤은 있겠지. 그리고 언젠가 또 찾아올 아홉수는 지금보단 멋있게 맞이할 거야. 덤비라 그래. 아니 어쨌든 늙어갈 텐데... 뭐가 됐든 지금보단 씩씩하겠지. 그러려고 나이를 먹는 거겠지. 그렇게 맞서다 숨이 차면, 언제든 이렇게 털어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 다 털렸으면 좋겠어.

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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