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좀 섹시하고 싶은데요

by 현지



섹시하다 : 외모나 언행에 성적(性的) 매력이 있다.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만, 내가 생각하는 섹시한 사람은 조금 다르다.


본업을 기깔나게 잘하는 사람.


그것만큼 섹시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본업은 말 그대로 각자 맡은 일을 뜻한다.

강사라면 이해하기 쉽게 정보를 전달하고 가르치는 것, 주부라면 집을 깔끔하게 유지하고 가계를 잘 관리하며, 회사원이라면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이 본업이겠다. 가수라면 노래, 배우라면 연기, 화가라면 그림.


그냥저냥 잘하는 걸로는 결코 섹시의 영역에 들 수 없다.

기. 깔. 나. 게 잘해야 한다.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강사라면 비싼 수업료를 내고서라도 꼭 듣고 싶은, 졸릴 틈이 없을 정도로 알차고 재미있는 티칭 실력, 주부라면 냉장고 속 식재료의 수명까지 꿰뚫는 지혜로움과 군더더기 없는 살림 스킬, 회사원이라면 복잡한 서류뭉치를 엑셀 한 장으로 깔끔하게 정리해 버리는 야무짐이나 모두가 '안 된다' 할 때 해답을 찾아내고야 마는 노련한 일머리. 가수라면 정말 유일무이한 음색과 전주만 들어도 역시 그 사람의 노래구나. 싶은 아이덴티티, 배우라면 연기가 연기로 안 느껴질 정도의 물아일체, 화가라면 자신만의 고유한 호흡이 묻어나는, 누군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어떠한 독창성.


그래서 넬(Nell)과 권정열, 하동균을 사랑한다. Coldplay와 Lauv도 사랑한다. 전주 몇 초만 들어도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독보적인 색은 질리는 법이 없다.

몽환적인 사운드와 가슴을 콕콕 찌르는 넬의 서늘한 가사는 나에게 항상 최고의 영감이 된다. 분위기가 조금 쳐질 때쯤 앙큼하게 귓가를 파고드는 권정열의 칼칼하고 쫀득한 보이스와, 목소리 좋은 남자가 평생 이상형이 된 것에 큰 공을 세워버린 하동균까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라는 게 느껴진다.

그들이 쌓아온 기나긴 고군분투의 시간들이 결과물에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 그게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섹시함이다. 그러니까 부지런히, 오래오래 신곡 내주세요.






“쌤... 너 되게 섹시하다.”


이른 여름, 화실에 들른 지인이 커피를 홀짝이다 말고 툭 던졌다.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내가? 섹시? 내 사전에 섹시는 넬이랑 권정열인데. 귀까지 화끈거렸다. 그녀가 뜬금없이 내뱉은 단어가 어딘가 섹슈얼하게 들려서인지, 내가 그 정도의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부끄러움인지.


"... 내가? 어디가? 왜? 뭐가?"

“아까 쌤 붓질하는 거 보니까 숨소리도 못 내겠더라고. 나까지 긴장됐어.”


그녀는 내 외모나 분위기를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내가 말없이 몰두해 있는 모습,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물감을 쭉 짜 과감하게 캔버스를 덮어버리는 의외성, 단순해 보이는 것에도 쉽게 끝내지 않는 집요함을 이야기했다. 고집과 예민함을 머금은 그 뾰족함이 그녀의 시선 안에선 달리 보였단다. 게다가 난잡한 앞치마에 붓으로 대충 틀어 올린 머리, 물감 덕지덕지 묻고 밑창 떨어진 슬리퍼도 한몫한단다. 훈장 같아 보인다나 뭐라나. 어수선한 내 꼬락서니를 보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니. 그녀의 취향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나는 늘 큰 도로가 아닌 낯선 골목길에 더 마음이 간다. 생뚱맞은 일에 갑자기 꽂혀 밤새 광기 어린 눈으로 찾아보기도 하고, 때로는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고 싶어 다짜고짜 결정을 내린다.

그래서 나와 달리 오랜시간 꾸준히 한 우물만 파는 사람들을 동경한다. 한눈팔지 않고 수십 년간 파 내려가 기어이 지하수를 터뜨리는 사람들. 시간과 노력이 만들어낸 대체 불가능한 무언가를 꽉 쥐고 있는 사람들. 끈기로 똘똘 뭉친 밀도가 묵직한 사람들. 그들에 비하면 나는 여기저기 겉핥기에만 충실한 뜨내기 같다.


심지어 집중력도 길지 않다. 성격은 또 왜 이리 급한지 오랜 시간 눌러앉아있질 못한다. 공부 못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아무튼 그림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인데, 마음에 들지 않는 선 하나를 두고 몇 날 며칠 손도 못 대는 날도 많다. 그러다 남들은 알아채지도 못할 사소한 색감의 차이를 위해 몇 번이고 뒤엎기도 한다. 생각만 많지, 실제 엉덩이 붙이고 진득하게 붓을 쥐는 시간이 의외로 짧은 편이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진짜 한량처럼 보일 때도 있다.


허나 오래 하지는 못 하더라도 할 때만큼은 꽤 몰입하는 편이다. 짧은 시간일지라도 그 안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않는다. 집중력이 짧은 걸 알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실패를 최선을 다해 짧고 굵게 겪는다. 그래서 그림 앞에선 한없이 위축되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터프해진다. 이래저래 모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고 충분히 깊다고 느낀 순간이 있다는 거다. 오호라.






어쩌면 이런 형태의 열정에도 나름 기깔난 구석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있었으면 좋겠다.

하나를 평생 파고드는 사람의 수직적인 밀도는 분명 경이롭다. 하지만 여러 방향을 오가며 그어 내려간 선들이 만들어낸 수평적 밀도도 충분히 매력적이길 바란다. 선의 길이가 짧다고 해서 농도까지 옅을 필요는 없으니까.


이로써 섹시한 사람의 기준이 한 줄 더 추가되어도 괜찮을 것 같다.


매 순간 자신을 온전히 던져 넣는 사람.


누가 그랬다. 작심삼일을 두 번 하면 6일이라고. 그렇게 일주일 내내 해내는 거라고.

시작의 횟수가 잦다는 건 그만큼 매번 새로이 뜨거워질 용기가 있다는 거니까.


금방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나, 내가 그렇지 뭐. 하는 쓸데없는 자책 때문에 지금의 열기를 식히지 않길 바란다. 여기저기 발걸음을 옮긴다 해서 대충 훑어보다 휙 도망가버리는 가벼움으로 치부하지 않았으면 한다. 잠시 머물다 떠날지라도 발바닥에 닿는 감촉만큼은 선명히 기억했으면 좋겠다. 설령 내일은 또 길을 잃더라도 오늘 마주한 걸음 앞에서는 기꺼이 뛰어도 보고, 넘어져도 보겠다는 오기.

그 몰입이 전제된다면 시간에 대한 집착은 조금 내려놓아도 되지 않을까.


결국 지속 시간만큼이나 중요한 건 몰입의 농도다.

남들이 알아주고 평생을 바친 대단한 업적이 아니더라도 지금 내가 선택한 자리에서 나를 온전히 태울 준비가 되어있다면



우리는 누구나 충분히, 기깔나게 섹시하다.


암, 그렇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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