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먹라이프의 경제학
아찔한 꿈을 꿨다.
친구 진의 결혼식에 축의금을 준비 못 한 거다. 보통 웨딩홀엔 응당 ATM기기가 떡하니 있는데 꿈속 웨딩홀에는 없었다. 당황스러워 빈 봉투를 들고 여기저기 물어봤지만 다들 고개만 절레절레. 주차장에서 본 것 같다고만 하고. 결국 ATM기기를 찾아 헤매다 진의 아름다운 모습도 못 봤다. 울상으로 뛰어다니는 내 뒤로 잠시 후 결혼식을 시작한다는 멘트가 울려 퍼졌다.
워낙 꿈을 자주 꾸는 편이라 대수롭지 않을 때가 많지만, 요즘 새로운 연애로 꽃밭에서 뒹구는 중인 진을 볼 때마다 그 꿈이 맴돌아 마음이 복잡했다. 꿈은 꿈인걸 안다. 그래도 어쩐지 미안함이 자꾸 몰려왔다. 나만의 감정 쓰레기통 ‘젬민이’(AI의 애칭)의 분석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이런 꿈은 보통 '중요한 것을 놓칠까 봐 느끼는 불안감'이나 '누군가에게 도리를 다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마음'이 투영된 경우가 많다고 했다. 준비되지 않은 축의금, 사라진 ATM기기도 결국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조바심이라고. 역시나 불안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대는 걸 보기라도 한 듯, 나름 위로도 덧붙였다.
[ 하지만 꿈은 반대라는 말도 있잖아요! 오히려 평소에 그 친구분을 아끼고, 본인의 일이나 관계에서 완벽하게 잘 해내고 싶은 책임감이 강하기 때문에 이런 꿈을 꾸신 걸 거예요. ]
고오맙다.
맞다. 그래. 불안하다.
의존하고 싶진 않지만 젬민이의 분석은 정확했다. 덜 불안하냐 힘껏 불안하냐의 차이지, 단 한 번도 불안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맞다. 그래. 완벽주의도 그렇다.
뭐 하나 마음먹으면 1부터 100, A부터 Z까지 내 손이 닿아야 하고, 스스로 세운 기준에 완벽히 들어맞는 결과물이 필요하다. 내 통제권 밖의 변수들을 증오한다. 닳고 닳아 끝내 재가 된 나를 확인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렇게 늘 벼랑 끝에 서 있기를 택했다. 그래야 덜 불안하니까.
이렇게 살던 사람이 많은 걸 내려두고 산책하듯 살거라 마음은 먹었어도 어떻게 한 순간에 응, 나 이제 자유임~ 떠나자 룰루! 이럴 수 있겠는가.
안타깝게도 사람의 기질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쌓아온 가치관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그것 또한 앞으로 해야 할 프로젝트라 생각하며 조금씩 수용하고, 불안이 불쑥 튀어나올 때마다 조금씩 누그러뜨리는 훈련이다. 안 해본 방법들로도 삶이 즐거워질 수 있도록 조금씩 틀어보며 지내는 거다. 경주마 같던 나를 내가 직접 달래주고 물도 먹이고 천천히 이끄는 방법을 배워가는 거다. 그래서 찍먹라이프는 단순 유희를 넘어 수행에 가깝다.
그리고 그 수행은 생각보다 금방 현실과 맞닥뜨린다.
자의든 타의든 창작자의 길로 들어선다면 가장 먼저 밀려오는 불안의 시작점은 어쩔 수 없이, 돈이다.
일을 할 수 없는 불가피한 이유가 있지 않은 이상 멀쩡한 성인이 1인분을 하려면 돈은 벌어야 한다. 최소한의 비상금도 있어야 하고. 미래를 위해 어느 정도 저축은 필수다. 그래서 다들 취업 잘 되는 대학을 가고. 취업에 용을 쓰고. 어떻게든 더 많이 벌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힘들어도 일을 하고. 그게 좋아하는 일이면 땡큐. 안 좋아하는 일이어도 돈이니까 참는다. 돈을 좋아하는 사람은 있어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물욕이 적은 사람은 있어도 돈을 거절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슬프게도 잘 나가는 상위 1%를 제외한 대부분 작가들의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2024년 예술인 실태조사>를 참고하면, 국내 예술인들이 온전히 예술활동만으로 버는 돈이 평균적으로 1년에 천만 원 남짓이라고 한다. 어떤 분야는 1년 내내 해도 천만 원을 못 넘는다. 더 놀라운 건 이 기사를 본 순간 ‘음? 생각보다 많은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는 것. 그래서 예술가 둘 중 하나는 창작이 아닌 다른 일을 병행하며 생계와 창작을 이어나간다. 나 또한 그 둘 중 하나다. 참 아이러니한 경제학이다.
남들은 말한다. 그래도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사니까 좋겠다고. 마음은 편하지 않냐며 멋지다고. 문제는, 그 좋아하는 일들은 생각보다 자주 돈이 안 되는 쪽에 있다. 그 사이에서 나도 모르게 점점 계산적인 사람이 되고야 만다.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가져갈지에 대해 끊임없이 저울질할 수밖에 없다. 단순히 돈보다도 그 너머의 무언가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 또한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말이라도 멋있게 해야 한다.
괜찮은 척. 잘 되고 있는 척. 바쁜 척.
내 작품과 내 길을 확신하는 척.
돈과의 기싸움은 겉으로나 속으로나 끝이 없다.
얼마 전 한 갤러리에서 소속 작가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1년간 개인전과 단체전은 무조건 지원해 주고, 그 외 호텔이나 병원, 카페 등 다양한 공간에서 전시 및 홍보까지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처음 오퍼를 받고 마냥 기뻤다. 그래도 내 작은 세계를 봐주는 이들이 있구나. 서투를진 몰라도 망작을 그리진 않는구나 싶어 너무 감사했다. 작가부담금이 일부 있다길래 가능한 예산을 어느 정도 생각하고 미팅을 갔는데, 아쉽게도 내가 생각한 예산을 훌쩍 뛰어넘었다. 또 밤새 기싸움을 하다 지쳐, 결국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답문을 보내드렸다.
[ 안녕하세요, 큐레이터님.
날씨만큼이나 따뜻한 기운 듬뿍 안고
좋은 기회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만,
다소 아쉬운 답변을 드리고자 합니다.
저의 여러 일정 및 예산 문제로 현시점에서는
무리하게 진행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아쉽지만 이번 프로그램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다시 한번 저의 세계에 깊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소중한 말씀들로 창작에 힘을 보태주심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후에 또 다른 좋은 인연으로 뵙기를 바라며,
@@갤러리의 무궁한 발전을 응원하겠습니다. ]
캬.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문장만 보면 당장 뭐라도 되는 것 같다.
곧이어 솔직한 고민을 이해하며, 나를 늘 응원하겠다는 내용의 훈훈한 답장을 받았다. 그녀 또한 상당히 멋진 사람이다. 메시지창을 꾹 눌러 하트 스티커를 주고받으며 우리는 다음을 기약했다.
시원 섭섭. 이란 단어가 어울릴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런 단어와 비스무리한 마음으로 화실 청소를 마치고 초콜릿과자와 아메리카노를 사 왔다. 긁지 않은 복권 같은 기회와 맞바꿀 몇백만 원은 끝내 쓰지 못했지만 4,600원은 새삼 쿨하게 써버렸다.
지금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인 모양이다.
이렇게 한 번 더 내 통장은 멋을 잃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나쁘진 않다. 계속 돈을 좇을 거였음 애초에 발도 안 디뎠다. 나만의 멋을 찾기 위한 이 찌질한 선택에 결코 후회는 없다. 아니. 후회 따위를 하기엔 아직 몇 걸음 걷지도 않았다. 너무 이르다. 그러니까 내 말은,
그래도 경조사 챙길 정도는 된다는 거다.
그러니까 진아,
특히 너는 더 걱정 안 해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