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으니, 싫어하는 것도 이야기해 봐야겠다.
감자, 유탕면, 과자, 튀김, 마요네즈, 햄버거, 탄산음료, 까르보나라, 치킨
읽을수록 눈이 휘둥그레 해지며 이 맛있는 걸?!이라 생각한 거 다 안다. 내장류와 날음식, 해산물은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못 먹는 건 하나도 없는데 싫어서 안 먹는 건 명확하다. 그렇다고 얘네들을 아예 안 먹는 건 또 아니다. 모임에서 다수가 치킨 먹으러 가자 하면 줄곧 잘 따라가서 맛있게 먹고, 고단한 등반 후 산 정상에서 먹는 컵라면 역시 끝내주는 걸 안다. 많이 못 먹을 뿐이다.
그래서 이들이 대체 무슨 잘못을 했냐고? 감자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미안하지만 감자 특유의 포슬포슬한 맛과 식감이 내겐 흙맛처럼 느껴진다. 유탕면과 튀김은 기름 맛이 너무 강하게 퍼져 몇 입만에 물린다. 일단 느끼한 맛에 약하다. 게다가 고단했던 대학생활 내내 라면이 주식이었던 터라 이제는 진절머리 난다. 과자는 먹고 나면 치아에 달라붙은 듯한 그 텁텁한 느낌이 싫다. 햄버거는 효율 부문에서 탈락이다. 예쁘게 먹기도 어려운데 배도 안 찬다. 탄산음료는 너무 달고 목 따갑다. 게다가 건강에 그렇게 해롭다는데 굳이 먹을 필요가 있나. 마요네즈와 까르보나라 역시 느끼한 데다 하얗고 꾸덕한 비주얼부터가 썩 내 취향은 아니다. 이 정도면 살이 찌는 게 더 이상할 법도 한데 그럼에도 이곳저곳 통통하게 살이 오른 내 몸뚱이가 참으로 신비롭다.
어쩌다 하얀 파스타를 먹을 일이 생기면 그 집 피클이 동날 때까지 퍼먹어야 한다. 친구들 사이에선 나랑 싸우고 싶으면 호프집에 데려가 크림소스가 듬뿍 뿌려진 치킨과 감자튀김을 주문하라는 장난이 오고 간다. 쫄쫄 굶긴 다음 치킨마요덮밥만 앞에 둬도 진짜 안 먹을 거냐며 놀리기도 한다. 이렇게 보니 정말 민망하리만큼 예민하고 까탈스럽다. 나는 나랑 밥 먹기 싫다.
"왜???"
"헐~ 이 맛있는 걸???"
"나 라면 안 먹는 사람 처음 봐. 그럼 해장 뭘로 해?"
20대 중반, 혹시라도 서울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가족에게 연락해 줄 지인 한 명은 있어야 할 것 같아 모임에 들었다. 나처럼 타지에서 혼자 상경해 열심히 미래를 일구는 또래 친구들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공감대가 형성됐고, 일주일에 7번을 만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안 먹을 수도 있지. 나도 라면 싫어해."
그게 별이와의 첫 만남이었다. 동그랗고 작은 얼굴에 더 동그랗고 커다란 눈. 보육교사로 일하고 있는 만큼 쾌활한 말투에서 야무짐이 돋보였다. 누가 봐도 리더의 상. 분위기메이커. 귀여운 똑쟁이. 그날 우리가 모인 가게는 라면을 무료로 끓여 먹을 수 있는 서비스로 인기만점이었다. 다른 손님들이 채가기 전에 부랴부랴 라면 먼저 챙겨 오자며 현지, 뭐 먹을래?라는 친구들의 질문에 '나는 안 먹어... 라면 싫어해.'라고 작은 용기를 냈다. 동물원 원숭이가 이런 기분일까 싶던 때, 한줄기 빛처럼 들려온 당찬 한 마디가 너무나 반갑고 고마웠다.
"안 먹을 수도 있지. 나도 라면 싫어해."
"아 진짜? 별이도?"
"그럼 다른 거 더 시킬까?"
"우리가 보고 고를게. 다녀와."
별거 아닌 취향이 별 게 되어버리는 순간들이 있다. 7에 걸맞지 않은 3은 3으로서 존중받기보다, 왜 7이 아니지?라는 의문으로 시작되곤 한다. 게다가 불가피한 이유가 아닌 자의적인 취향이라면 더더욱. 별이는 정말로 라면을 싫어했다. 나처럼. 빵이나 다른 밀가루는 좋아하는데 유독 라면만 싫다고 했다.
그럼 너도 부대찌개에 라면 안 넣어? 안 넣어. 남들이 넣자고 하면? 그럼 그냥 넣고 다른 거 먹어. 나도 그래. 근데 가끔은 라면 기름 떠있는 국물도 싫어. 나도 그래.
이렇게 3은 7을 존중하고 배려하는데 7은 3을 왜 신기해할까. 3이 된 우리는 서로의 모습에서 안도감을 느꼈던 것 같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내가 나로서 존재해도 괜찮다는 뜻밖의 위안과 함께 우리는 10년째 한 편이다.
우리는 종종 나와 다른 취향을 발견했을 때 오롯이 이해하는 걸 생각보다 어려워한다. 이해는커녕 마치 내가 옳다는 것처럼 설득하기도 한다. 취향에 옳고 그름 따위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나와 다르다는 걸 도통 이해할 수 없단 표정으로. 당신이 라면을 안 먹는 사람이라서 아쉽게도 우린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라며 합격 목걸이를 안 줄 것도 아니면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생각이나 선택이 보편적이고, 상식적이며, 대부분 그렇게들 생각할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어디선가 본 심리학 용어로는 '허위 합의 효과(fals consensus effet :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과 견해를 공유하는 정도를 과대평가하게 만드는 흔한 인지 편향)'가 만들어낸 착각이라고도 하더라. 취향이란 상식이 아니라 개개인의 경험과 가치관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결과일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의 의견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판단이라 오해하고, 상대방이 잘 몰라서 저러는 것이라고 쉽게 단정 지어 버린다. 상대를 무시하려는 의도나 악의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라는 걸 그나마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그러니까 내 말은, 때때로 취향에 대해 오히려 강요당하는 일 또한 의외로 비일비재하단 거다. 특히 나처럼 보편적으로 좋아할 법한 맛있는 음식을 싫어한다고 하면 그 여파는 더욱 크다. 나는 빨간 사과보다 초록 사과가 맛있다고 하면, 아닌데. 빨간 사과가 더 맛있지. 무슨 소리야. 빨간 사과 한 번 먹어봐. 네가 안 먹어봐서 그래. 입맛 되게 특이하다. 어떻게 초록 사과가 더 맛있다고 생각하지? 너도 빨간 사과 먹다 보면 생각이 달라질걸. 하는 건 너무 서운하단 얘기다. 그냥,
그렇구나. 한 마디면 될걸.
남편과의 연애 초반, 한 식당에서 반찬으로 가지무침이 나왔다. 정갈하게 누운 가지들 위로 깨가 솔솔 뿌려진 어여쁜 접시가 나타나자마자 살짝 움찔하는 표정을 재빨리 눈치챘다. 식사하는 내내 지극히 무관심한 젓가락은 물론이고 시선 한 번 주지 않는 모습에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 이 사람은 가지를 싫어하는구나. 안 먹는 걸까, 못 먹는 걸까. 가지에 대해 남모를 비밀스러운 사연이 있는 걸까. 내 입에서 오물오물 씹혀가는 가지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그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가지 싫어해?"
"응. 물컹물컹한 게 별로야. 나는 식감이 중요해."
"그렇구나. 다른 거 또 못 먹거나 싫어하는 거 있어?"
"연근."
"왜??? 몸에도 좋고 맛있는데..."
아차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