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은 어쩌다 불안한 색이 되었을까

by 현지



나는 초록색 덕후다.

좋아하다 못해 초록에 빠져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별명이 '초미녀'였다. 흔히 생각하는 그 미녀가 아니라 '초록에 미친 여자'의 줄임말이다. 어느 정도냐면 옷, 신발, 가방, 양말은 물론이고 내가 가진 대부분의 소품은 가지각색 초록으로 뒤범벅이다. 가수 버벌진트의 <완벽한 날>이란 노래에는 '뭘 입어도 지키는 철칙, 빨간 아이템 최소한 하나, 옷이 안 되면 빨간 양말'이란 가사가 있다. 나에겐 초록이 그렇다. 화실 로고 및 아이덴티티 컬러도 당연히 딥그린이다.


한 번은 세이지그린 볼캡을 쓰고 민트색 티에 초록색 손목시계를 차고, 카키색 플랫슈즈를 신고 쨍한 초록색 지갑을 꺼내 가방을 구매한 적이 있었는데 직원 눈에 왠지 모를 경계가 가득했다. 그날 새로 산 가방은 올리브색이다.


초록색이 좋은 이유는 밤새 떠들어도 모자라지만, 딱 몇 가지만 꼽자면 균형감과 다양성에 있다.


초록은 중간의 색이다. 따뜻한 계열의 노랑과 차가운 계열인 파랑 그 사이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색이다. 실제로 그 둘이 섞여 만들어진 혼합색이다. 그래서 난색과도 잘 어울리고, 한색과도 궁합이 잘 맞는다. 그 둘 어디에 붙여놔도 어색함이 없고, 섞으면 섞을수록 다채로워진다. 그만큼 균형이 완벽하고, 스펙트럼이 가장 넓게 느껴지는 색이다.


또한 인간의 눈에 초록색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주위만 둘러봐도 자연의 초록빛이 떡하니 둘러싸고 있는 만큼, 우리 눈은 초록을 다른 계열의 색보다 더 많이 구분할 수 있다. 어릴 적 갖고 놀던 물감만 봐도 연두, 녹색, 풀색, 청록, 짙은 초록. 벌써 5가지다.


게다가 눈이 가장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파장대라 오래 봐도 부담이 적다. 초록색을 보면 긴장이 풀리고 스트레스가 줄어든다는 이야기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래서 색채심리학에서의 초록은 주로 안정, 평온, 휴식을 상징하는 색으로 해석된다.






그림을 그릴 때 역시 초록색 물감부터 짜기 시작한다. 단순히 하나의 초록을 메인으로 쓰진 않고, 정말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초록부터 블랙에 가까울 정도로 깊은 초록 안에서 원하는 깊이가 나올 때까지 레이어를 쌓는다. 주로 배경에 초록 계열을 주조색으로 사용하는데, 대부분 주제부로 넘어가 완성까지 가는 시간보다 원하는 분위기의 배경을 만드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나만 아는 나와의 싸움이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내 그림 속 초록은 뜻밖에도 '불안'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누가 초록은 힐링의 색이랬나. 초록은 굉장히 이중적이고 잔인한 색이다. 미묘한 차이에 따라 우리 눈이 쉽게 구분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색의 균형이 무너지기도 쉽다는 뜻이다. 애초에 혼합색인만큼 조색 비율이 조금만 틀어져도 분위기가 확 바뀌어 버리기 때문에 한순간에 탁해지기 쉽다. 그래서 실기에선 꽤 다루기 어렵고 예민한 색 중 하나다. 미대 입시생 시절엔 초록을 주조색으로 사용하는 걸 경계하란 이야기도 있었다.


이리저리 분위기는 또 얼마나 잘 타는지. 조금만 밝아지면 가벼워지고, 조금만 어두워지면 숨이 막힌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 수많은 덧칠로 쌓아 올리는 거다. 하루는 제법 괜찮아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모든 게 뒤틀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초록을 쓸 때마다 확신보다 의심이 먼저 든다. 이게 맞나. 이 정도면 괜찮은 건가. 더 건드리면 망하는 건 아닐까. 그 불안한 감각이 모이고 모여 지쳐서 다 뒤엎고 싶을 때쯤 내가 원하는 분위기가 슬그머니 나타난다. 일부러 약 올리는 것 같기도 하다.


이토록 극과 극인 색이 또 있을까 싶다. 남들에겐 눈의 피로를 덜어주는 편안한 색일지 몰라도, 나에게 초록은 매 순간 긴장도를 높여주는 각성제다. 초록만큼 악랄하고 불안한 색은 없다.






그럼에도 초록을 사랑하는 이유는, 나를 닮아서다. 노랑과 파랑 사이에서 매 순간 중심을 잡아야 하는 운명이 안쓰럽다. 모두를 다 수용하는 척하면서 한편으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처지가 이도저도 아닌 나를 쏙 빼닮았다. 조금만 힘을 빼면 노랑의 낙천성에 휩쓸려버리고, 조금만 힘을 주면 파랑의 냉정함에 잠식되면서도 어떻게든 본인의 자리를 지켜내려 애쓰는 게 나를 닮아서. 그토록 우유부단하고 예민하지만 그것 또한 나의 색이라고 외칠 줄 아는 당찬 모습이 부러워서 좋다.


세상은 뜨겁거나 차갑거나 둘 중 하나만을 원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나는 어디에든 속한 시늉을 하곤 했다. 일이든 인간관계 안에서든 나는 나의 색을 정의 내리는 게 제일 어려웠다. 늘 어딘가 동떨어진 색으로 칠해진 가면을 쓰고 그 뒤에 숨어 흉내내기에 급급했다. 가면마다 설명서가 쓰여있는 듯했다. 지금은 뜨거운 모습을 보이세요. 지금은 냉정해지셔야 해요. 웃으세요. 참으세요. 그런데 이를 어쩐담. 실컷 끓여보고 얼려봤자 결국 내가 미지근한 사람인 건 결코 변하지 않는데.


초록을 사랑한다는 건 내 안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껴안고 살아보겠다는 선포와도 같다. 단정하게 정리된 결과물과 달리 이리저리 변해가는 도중의 혼란스러움도 나름 아름답길 바란다. 매 순간 부서질 것처럼 열심히 일렁이다가도 꿋꿋하게 버티고 버텨 어느 순간 본인만의 빛을 내뿜는 초록의 고집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가만 보니 휴대폰 케이스가 많이 낡았다. 보통 물건을 한 번 사면 오래 쓰는 편인지라 어느덧 네 귀퉁이가 새까매졌다. 당연하다는 듯 검색어를 입력한다. '아이폰 13 미니 그린 케이스'. 설레는 쇼핑이다.


누가 뭐래도 난 초미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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