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다양한 방식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금처럼 비혼이 흔하지 않은 시기에 S는 비혼을 선택했습니다.
20대 후반,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하자 어쩌다 보게 되는 얼굴들은 S를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대입하며 걱정을 한 아름 짊어진 표정으로 결혼의 장점에 대해 열변을 토했습니다.
사촌 동생들 결혼식 하객으로 자리하게 되던 30대. 결혼식장에서 S를 본 얼굴도 모르는 먼 친인척의 원치 않은 소개 전화가 물밀듯 걸려 왔습니다.
S의 의사와 상관없이 매대 밖에 내놓은 물건 마냥 S를 이리 들었다, 저리 들었다, 혼란합니다.
타인의 훈계에 지쳐가는 S.
"제 말을 들어주세요. 제 삶이잖아요. 저의 의사는 들리지 않나요?"
세상은 다름을 인정하는 것 같으면서도 ‘이래야 해’라며 많은 것을 당연시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누군가를 실망하게 해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엔 역량이나 재량이 부족할 때나 내가 원하는 삶의 형태나 가고자 하는 길이 다수의 사람과 다를 때와 같이.
그러지 못하고 성공이라는 이름의 가이드라인, 행복이라는 이름의 가이드라인이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이렇게 해야 행복할 수 있어.” “그건 일반적이지 않아.”라는 말로 선택을 회유당하며 누군가의 기대에 맞춰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고, 어떤 삶이 나를 보람차게 하거나 가치 있게 하는지 모르게 되기도 합니다. 심지어 이것이 나의 삶인지, 아닌지 구분조차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왜 그렇게 보통은, 다들, 일반적으로라는 말로 그 범주 안에 들지 못해 안달이고 남들과 같아야 평온함을 느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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