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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지 Mar 29. 2017

이토록 유쾌한
실버유튜버 박막례 할머니

인생은 아름다워

이게 뭐라고 이렇게 웃길까. 할머니 한 분이 카메라 너머의 손녀딸과 아웅다웅 티격태격하면서 메이크업 튜토리얼을 선보이고, 가방 속 소지품들을 공개하고, 파스타를 먹어도 본다. 요즘 인터넷에서 핫한 '박막례 할머니' 동영상과 그의 손녀 김유라씨 이야기이다. 이들의 영상을 보고 있자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내가 이들의 영상을 처음 접한 건, 페이스북 '여행에 미치다' 페이지에서 본 '할머니와 호주 여행'이었다. 

'여행에 미치다'에는 주로, 아니 거의 100퍼센트로, 내 또래의 젊은이들이 떠난 여행 사진이나 동영상,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그들의 찬란한 청춘이 소개된다. 그런 페이지에 처음으로 소개된 '할머니와의 여행' 영상은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그것도, 주로 노인들이 가는 패키지 여행도 아닌, 손녀딸과 단 둘이 간 여행이라니. 

https://www.youtube.com/watch?v=9J_9o-ob5hA

<박막례 할머니의 XX할 호주여행> 영상.


71세의 할머니가 호주에 가서 수영을 하고, 스테이크를 먹고, 캥거루를 구경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대체 왜 그렇게 특별하게 느껴진 걸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은 것'을 누리고 싶은 욕구가 있다. 좋은 옷, 예쁜 화장과 머리스타일, 멋진 외국 도시로의 여행, 비싸고 맛있는 음식 등. 

다 같은 인간인데, '나이가 든 70대'라고 해서 그들이라고 좋은 것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 없을까. 다만 우리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노인에게는 그런 욕구가 없을 것이라고, 그들의 욕구를 무시했기에 새삼스러웠던 것일 뿐이다. 아니 더 정확히는, 우리는 나이 든 사람들은 그런 것을 누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누릴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3zlvl1580wA

<파스타를 처음 먹어봤어요!> 편. 드라마에 나오는 음식을 먹어봤다고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절로 반성이 ㅠㅠㅠㅠ


우리는 그동안 그들에게 충분히 nice 하지 못했다. 우리 스스로의 부모에게,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그들이 당연히 젊은 우리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느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잘 알면서도

우리는 훤히 꿰고 있는 것을 그들은 전혀 모르고 생소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알면서도

백화점 점원이나 이탈리안 식당 종업원에게 엉뚱한 질문을 하는 창피해하고. 그것도 모르냐고 타박하며

'그들'과 '나'를 구별하는 선을 그었다.

우리는 "엄마는 그것도 몰라?"라고 말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 왜 저 손녀딸 유라씨처럼 착하지 못했을까. 

https://www.youtube.com/watch?v=glRTXA7ott8

<발렌타인데이를 맞아 카톡 라이언 모양의 초콜릿 만들기에 도전한 박막례 할머니>

 이렇게 할머니와 유튜브 채널을 만들려면, 물론 유라씨처럼 착한 손녀딸은 필수 준비물이겠지만, 그래도 역시 이 영상의 재미를 완성하는 관건은 박막례 할머니의 '열린 태도'가 아닐까. 

 일례로, 발렌타인데이를 맞아 이마트에서 초콜릿 만들기 세트를 구매해 집에서 직접 초콜릿을 만들어보는 영상에서 박막례 할머니는 "요즘 젊은 애들은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말하지 않고 대신 "요즘 젊은 여자들은 참 부지런하고 재주도 많다"고 말한다. 또한 매일 손녀딸이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온갖 희한한 일을 이것저것 해보라고 시키면 귀찮을 법도 한데 "그래 내가 해 볼게"라고 말한다. 또, 초콜릿을 만드면서 "나는 그냥 초콜릿이 공장에서 띡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만드는구먼. 나는 여태 이런 것도 모르고 살았네. 부끄럽게."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노인을 그 동안 한국 사회에서 많이 보지 못했다. 젊은이들의 문화를 부정적인 눈으로 보는 대신 긍정적인 면을 봐 주는 노인을,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노인을, 새 문물을 따라잡으며 '내가 그 동안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구나' 하는 깨달음과, 한술 더 떠서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을 툭툭 털어놓는 노인을 우리는 본 일이 드물다.

https://www.youtube.com/watch?v=Jl5YMytRH4k&t=146s 

심지어 ASMR에 도전하시기까지. 대단하시다.

https://www.youtube.com/watch?v=JuWZQK0BqOE

<박막례 할머니의 가방 속 공개>편. 정말로 상상 그 이상이다. 

박막례 할머니 시리즈의 재미는 뭐니뭐니해도, '그들이 사는 세상'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20대인 우리가 20대 특유의 사교 활동, 맛집, 패션 등을 갖고 있듯이, 할머니들 역시 그들만의 세계를 갖고 있다는 깨달음. 할머니들의 멋부리기 비법과 사교활동이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데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할머니의 가방 털기' 편에서 할머니의 가방 속에서는, 중국집에서 나눠주는 면봉과 이쑤시개, 친구들과 과일을 깎아 먹기 위해 챙겨 다니는 과도("나는 가방 속에 없는 게 없다고 친구들이 다 나보고 천생 여자래), 병따개("맥주 마실 때 깡통보다는 병으로 마시는 게 더 싸다고 하데? 그래서 갖고 댕겨.), 가발("아, 이거는 머리가 조금 거시기할 때.) 등등이 나온다. 젊은 세대에겐 이런 게 가방에 들어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황당한 물건일지 몰라도, 할머니의 설명을 들어보면 다 나름의 활용도가 있는 '잇템' '필수템'이다.


역시나 발빠른 웹진 ize에서 이들을 인터뷰했다. 손녀딸 유라 씨는 무엇보다도 할머니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신다. 그 비단결같은 마음씨가 부러울 따름이다. 첨부한 인터뷰 기사를 꼭 읽어보시길.

http://www.ize.co.kr/articleView.html?no=2017031922287238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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