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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지 Apr 18. 2017

요즘 젊은 것들의 영어

영국 사투리 배우기, 콩글리시 퇴치... 우리는 '진짜' 영어를 원한다.

나는 한 번도 영어에 콤플렉스를 느껴본 적이 없다.

순수 국내파이고, (자랑 같겠지만 사실이다)언어적 감각이 뛰어난 덕인지 어릴 적에 엄마가 몇 번 읽어준 영어 동화책으로 스스로 알파벳을 읽는 법을 터득했고,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도 얼마 안 가서 해리포터 원서 전 권을 술술 읽는 초딩이 됐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다니게 된, 원어민과 미국 교과서로 수업을 하는 영어학원에서도 항상 나는 '이 달의 우수학생'으로 뽑히곤 했다. 무리없이 외고를 진학했고, 수능은 누워서 떡먹기 하듯 백점. 토익과 토플 점수 모두 굳이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거의 만점. CNN 인턴으로 뽑히기까지. 


영어는 단 한 번도 내게 어려운 적이 없었고, 장애물이 된 적도 없었다.

'주입식 영어교육의 폐해로 고생하는 한국 청년들'은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2014년, 대학교 3학년,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싱가포르로 교환학생을 가게 됐다.

교수님의 강의를 알아듣는 것도, 영어로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것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내게도 딱 한 가지, 아쉬워 죽겠고 답답해 미치겠는 문제가 발생했으니, 그건 바로

"여기 애들의 농담에 곧바로 받아칠 수 없다/적절한 리액션을 할 수 없다"는 것!


가령, 한국어로는 "오~ 대박!" "완전 신박하다!" "아, 쫌!(신경질)" 등등의 빠릿빠릿한 반응을 무의식적으로 내뱉었을만한 상황에서, 나는 그에 해당하는 '구어체 영어', '현지 애들의 대학생 영어'를 구사하지 못해 답답함을 겪었던 것. 


1. '토익'보다 '드립'

https://www.youtube.com/watch?v=PUGFMYAn-N0&index=3&list=PLAFrxqyBNmxXAomCiJ0FQjKQQiuCHs0PW

20대 청년들이 방학마다 밥 먹듯 해외여행을 가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단순히 호텔 예약을 하고,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수준의 영어에서 만족하지 않으려고 한다. 호텔에서는 컴플레인을 하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다른 여행자들과 어울려 놀고, 친절한 웨이터와 센스 있는 농담 몇 마디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진짜 영어'를 원한다.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미드/영드와 각종 영화를 접하며 자란 우리 젊은 세대들은 이미 알아버렸다. 우리가 의무교육과정이나 토익 학원을 통해서 배운 '영어'가 실은 얼마나 딱딱하고 비실용적인지를. 그것이 실제 영어권 국가 사람들의 생활 영어와는 얼마나 큰 거리가 있는가를. "How are you?"라는 질문에 "I'm fine." 뿐만 아니라 수십, 수백 가지의 다른 대답을 할 수도 있고, 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주로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줄 아는) 원어민, 교포/교민들의 '영어 꿀팁' 영상이 유튜브에서 인기다. 위의 '올리버쌤'의 사례가 대표적으로, 이 영상에서는 친구가 '아재 개그'를 할 때 어떻게 '썰렁하다'하고 리액션을 하면 되는지 여러 개의 문장들을 알려준다. (아아, 이걸 보고 교환학생을 갔어야 했다....) 


 그 외에 '소오름', '어쩌라고', '그런 게 어딨어!' '~하는 김에' 등등 한국어로는 불쑥불쑥 잘도 튀어나오지만 영어로는 곧바로 그 느낌적인 느낌이 튀어나오지 않는 표현들을 골라서 알려준다. 


 이들의 유튜브 동영상은 그런 한국 청년들의 답답한 속을 시원하게 긁어주고 있다. 


2. 지금 네가 하는 그것은 콩글리시


 한국에서 태어나 줄곧 한국에서 자라며 한국에서 영어를 배워서 20대에 이른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두 가지는 '잘못된 영어 습관'이 있기 마련이다. 즉, 실제 원어민이 쓰지 않는 표현이거나 원어민이 듣기에 다소 어색한 표현인데, 그것을 원어민으로부터 교정받을 기회가 없었거나 혹은 본인이 임의대로 한국어 문장이나 표현을 영어로 직역해 사용하며 생기는 문제들을 말한다.

 

 내 경우를 예로 들자면, 나는 음식을 칭찬할 때면 "It's really delicious."라고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해외에 나가 보니 모두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면 "It's really good."이라고 하지, delicious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나중에 안 것인데 delicious는 주로 음식을 요리한 사람이 앞에 있을 때에 하는 칭찬이고,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요리사가 누군지 모를 때/요리사가 앞에 없을 때)에는 delicious를 사용하지 않는 편이라고. 


 내가 모르고 있었을 뿐이지, 사실은 내가 사용하는 말 중에서도 '미묘한 콩글리시'가 상당히 많음을 알게 됐다. 역시나 이런 청년들의 답답한 속을 긁어주는 콘텐츠를 페이스북에서 발견했다. 아무래도 나와 마찬가지로 20대 대학생인 페친들이 좋아요를 많이 누르며 공감과 호응을 보이기 때문에 내 타임라인에 자주 뜬다. 

가령 이런 것.(출처: 페이스북 페이지 '마유영어') 우리가 한국에서 흔히 과제를 제출할 때 '레포트'라고 하다 보니 외국에 나가서도 습관적으로 report라고 하고, 우리에게 대학은 항상 'university'였으니 외국에 나가서도 습관적으로 '나는 유니버시티 스튜던트!'라고 하지만 실제 미국의 학생들이 듣기에는 틀리거나 어색한 표현이라는 것. 


 캠퍼스에 외국인 유학생들이 북적이고, 교환학생을 다녀오는 것이 필수 코스가 된 우리에게는 호응이 좋을 수밖에 없는 콘텐츠. 


'time'과 'the time'의 차이. 'Here is'와 'I am in'의 차이. 이 미묘한 차이를 통해서 나의 영어를 한층 더 자연스럽고 유창하게 만들어주는 내용의 게시물도 많이 올라온다. 


3. 나는 사투리까지 할 줄 안다

 

 방송인 로버트 할리의 등장이 파격적이었던 이유는, 그 당시로서는 그가 한국에 매우 낯설고 드문 '한국말을 하는 외국인'이었던 것에 더해, 그가 걸쭉한 사투리를 구사했기 때문이다. 외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사투리까지 알고 있다는 사실은, 그렇게 해당 언어의 원어민에게 "오~ 이런 것도 알아?"하는 놀라움을 주고 호감과 사교의 물꼬를 터 준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아진 지금, 청년들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또다른 차별화로 눈을 돌린다. 영국영어/미국영어의 억양 차이는 기본이요, 영국 영어의 다양한 사투리까지.

https://www.youtube.com/watch?v=v0jM9JF3FvQ&t=450s

https://www.youtube.com/watch?v=badgLd0Sjz8&t=290s

 사실 유튜브의 '영국남자' 채널이 '진정한 원어민 영어'를 소개하는 유튜버의 조상님 격인데, 너무 소개가 늦었다. 이 두 영상은 개인적으로 내가 너무나 애정하는 영상들. 첫 번째 영상은 Posh English/Queen's English라고 불리는 고급진 영어와, 웨일스/리버풀/스코티시 등등의 악센트를 비교해 알려주는 영상이다. 두 번째 영상은 영화 <킹스맨>을 보며 콜린 퍼스가 구사하는 고급진 영어와 에그시(배우 이름 까먹음)가 구사하는 껄렁껄렁한 slang을 비교하는 영상이다. 

 영국남자 조시와 그의 친구들이 만드는 영상은 다 하나같이 유쾌하고 귀엽고 재미있으므로, 가볍게 영국 영어의 맛을 보고 싶은 분들께 추천.

 

그런데, 정말로, 레알 본격적으로 '영국 사투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유튜브 채널이 등장했다.

바로 KoreanBilly! 

https://www.youtube.com/watch?v=D07msmHFaO8

 https://www.youtube.com/watch?v=3gbptsVFVTI

 뭔가 계속 보게 된다.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 이 뭔가 동글동글하면서도 깔끔하고 댄디한 것 같으면서도 눈웃음이 곰돌이 푸처럼 친근한 이 한국인 청년 '코리안 빌리'가 알려주는 영국 다양한 지방의 사투리. 재생 화면도, 정지 화면도 일관되게 똑 떨어지는 귀염상인, 친근하면서도 비현실적인 그의 매력에 자꾸만 영상을 보게 된다.


 영국 맨체스터 부근으로 교환학생을 갔다가 사투리에 푹 빠지게 된 유튜버 '코리안 빌리'는 영국의 각양각색의 사투리를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을 만들게 됐다고 한다.  글래스고, 웨일스, 맨체스터, 리버풀, 아일랜드, 브리스톨... you name it. 그가 구사하지 못하는 영국 사투리는 없다. 


  그의 매력을 느낀 것은 한국인 유튜버뿐만이 아니었는지, 현재 코리안빌리는 영국 BBC 방송과 라디오에까지 출연하면서 인기를 떨치고 있다. (방송 출연 영상도 그의 유튜브 채널에서 확인 가능하다.)


 묘하게도 사투리는 로컬들과 좀 더 가까워지는 데에 신기한 효과가 있다. 영국에 갈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코리안빌리의 영상을 체크해 보자. 어설프게 영국식 발음(워-터)을 따라하는 것보다는, 더 귀엽게 호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Why aye man!


4. 다들 좋아하는 쇼 하나쯤은 있잖아요


 '다들'이라고 말하면 지나친 비약일 것이다. 그래도 20대는 상당수가 <셜록> <스킨스> <가십걸> <빅뱅이론> 등의 미드를 즐기고 있고, <코난쇼><엘렌쇼><지미 키멜쇼><제임스 코든의 카풀 가라오케> 등의 토크쇼에도 익숙하다. '덕후'가 자연스럽게 양산되고, 덕후까지는 아니더라도 페이스북에 떠도는 짧은 영상 클립에 피식 웃거나 매력을 느낀 사람도 많을 것이다. 


 <셜록>의 베네딕트 컴버배치, <미녀와 야수>의 엠마 왓슨처럼 20대에게는 영미권의 셀레브리티를 좋아하고 관심있게 지켜보는 일이, 한국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과 똑같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이들을 위해 토크쇼나 드라마, 영화의 한 장면을 통해서 영어를 가르치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이 등장했다. 


짜잔! 내가 직접 어플리케이션을 깔아서 실행해 봤다. (화면 캡처: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슈퍼팬')


"좋아하는 게 많을 수록, 영어도 잘할 확률 업업!" 처음에 앱을 실행하면 좋아하는 배우, 좋아하는 티비쇼 등을 선택하는 화면이 나온다. 내가 선택한 것에 맞춰서 추천 영상이 나오고, 영상을 보며 영어를 공부하면 된다. 핵심적인 표현이 나올 때 대사를 '담을' 수 있게 했고, 화면 하단에 해당 표현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영상을 보고 나면 그 다음은 단어 배열해서 빈칸 채우기가 나온다. 


 영어 학습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덕후들에게는 취향 저격인 영어 학습법이다. 


5. '로망'을 팝니다, 영어 스터디


  유튜브 영상이나 어플리케이션을 보는 것만으로는 만족이 안 되는 20대, '진짜' 선생님과 눈빛을 주고받으며 영어를 배우고 싶은 대학생들을 위한 '영어 스터디' 서비스도 인기다.

 특이한 점은, 영어 스터디 리더가 원어민이나 직업적인 학원 강사가 아닌, 수강생인 대학생들과 동갑내기라는 것.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스터디 리더들의 자기소개 영상은, 그들이 얼마나 '매력 넘치는' 사람인지를 수강생들에게 어필한다. 주로 영미권 국가에서 살다 온 경험이 있으며, 여행/스포츠 등 액티브한 활동을 즐기고, 심지어 외모까지 수려하다.

 

(출처: 페이스북 페이지 '스터디서치' 캡처)


영상 말미에 그들은 말한다. "친구처럼 편하고 재미있게 영어를 배울 수 있어요! 저와 영어 스터디 할래요?"


원래는 영어를 잘 하지는 못했지만 다년간의 유학생활 경험을 통해서 영어를 유창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고, 그를 바탕으로 세계 각국을 다니며 근사한 경험을 쌓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훈훈한 외모의 또래 남녀들. 


현재 대학생들이 원하는 로망들을 모두 고스란히 담아놓은 듯한 이들의 모습에, 대학생들은 귀가 솔깃할 수밖에. 이제는 영어 사교육 시장에서 대학생들의 지갑을 열게 하려면, 단순히 '영어를 잘 할 수 있게 해 준다' 이상의, '영어를 잘 함으로써 네가 얻게 될 모든 긍정적인 것들(여행, 밝고 에너지 넘치는 인생 등등)'에 대한 판타지에 호소해야 한다. 그것이 실제 꿈으로 이루어질지, 아니면 판타지에 그칠지는 수강생 본인에게 달려있겠지만 상당히 매력적인 영어 학습방법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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