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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지 May 02. 2017

유튜버와 함께 탕진잼

일상을 탕진하는 유튜버들

나는 '탕진잼'이라는 단어를 취준 덕분에 알았다. 이런저런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신조어, 유행어 등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항상 있었는데, 얼마 전부터 뉴스에 심심찮게 등장한 단어가 바로 '탕진잼'이었다.


 평소에 주위에서 이 단어를 쓰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뉴스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된 단어였기 때문에 선후관계가 뒤바뀐 유행어(사회에서 유행해서 뉴스에서 보도된 것이 아니라 뉴스에서 보도된 후로 유명해진..) 가 아닐까 싶었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이미 '프로 탕진러'들은 우리 주위에 이렇게나 많은데. 


1. 홍성오빠: 인형뽑기의 '금손'

https://youtu.be/z4rvYjx-dnU

 우후죽순 생겨나는 뽑기방들이 증명하듯 요즘 인형뽑기 열기가 뜨겁다. 오로지 '인형뽑기'라는 주제만으로 5월 2일 현재 492개의 비디오(..!)를 업로드한 유튜버가 있으니, 바로 '홍성오빠'다. (아마 홍성군 출신이라 홍성오빠인 것 같다.)


 이 유튜브 채널을 구경하면서, 나는 인형뽑기 기계에 인형 종류가 이렇게 다양한지 처음 알았다. 요즘 가장 인기인 포켓몬 인형(가품이 많다)부터, 희귀한 일본 정품부터, 카카오프렌즈 피규어, 예능 프로그램 <미운우리새끼> 마스코트 뽑기 등등. 그리고 '잘 뽑는 방법' 팁 전수부터 '피해야 할 뽑기 기계'를 알려주기까지. 

 사실 은근히 인형뽑기의 세계를 무시하고 있던(항상 '디즈니스토어 정품 인형'만 집착하기 때문에..) 내게는 또 다른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프리즘 같았다. 

 이미 인형뽑기 고수들에게는 유명한 유튜버인 듯 했다. 그래도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냥 동영상 자체로서는 재미있는 콘텐츠는 아니라는 것? 홍성오빠의 입담이 특별히 뛰어난 것도 아니고, 다소 적막하고 심심한 오디오도 아쉽다. 


2. 함께 탕진해요!: 매력 넘치는 언니들의 현실 탕진

https://www.youtube.com/watch?v=pIVz0awiukI

 "육식동물은 고기를 먹어야 하는 법. 무소유를 외치는 사회에 유소유의 미덕을 전파하는! 본격 소비 채널. '함께 탕진해요' 입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쓸데없다고 욕해도 나를 행복하게 하는 모든 것을 당당히 구입하겠습니다. 돈은 쓸라고 버는 거 아닌가요? 헤헿"


채널 소개 멘트부터 범상치 않다. 보이는 아무 동영상이나 클릭해서 봤다. 정확히 말로 형언할 수 없지만 독특한 매력을 가진 언니들(이라고 썼지만 내 또래일지도)이 지극히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탕진을 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빠.. 빠져든다!

마치 맨 처음 네이버 웹툰 <역전! 야매요리>를 봤을 때의 느낌 같은 느낌. 

 스타벅스 럭키백, 바닐라코 럭키박스 등의 랜덤박스 개봉기, 편의점에서 파는 홍어로 만들어 먹는 홍어삼합, 로또구입기 등등. 특별히 어느 장르의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 도전해볼 수 있는 탕진들을 아이템으로 삼았다. 

이 채널의 매력은 '솔직함'인데, 구입한 물건에 대한 무조건적인 칭찬을 하지 않고, 마지막에 오늘의 탕진잼이 "진짜 탕진이었는지 아닌지"를 평가한다. 즉, 물건 값만큼의 만족도를 내게 선사하면 탕진이 아니고,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거나 다시는 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탕진으로 결론을 내린다. 


 아쉬운 점은 영상이 12개밖에 안 된다는 것..? 두 달 전에 올린 영상이 가장 최근 업로드로 되어 있는데, 곧 다른 영상이 나올 것인지, 혹은 여기서 이대로 탕진 언니들을 보내드려야 하는 것인지는 더 지켜봐야 알 것 같다.


3. 형진이의 소소1상: 아기자기한 피규어들로 눈호강

https://www.youtube.com/watch?v=rw7LGeLLnjc

한 상자, 한 상자씩, 총 10개에서 12개 정도의 귀여운 피규어를 하나씩 개봉할 때마다 괜히 내가 다 두근거린다. 

유튜버 '형진이의 소소일상'은 주로 작은 크기의 피규어들을 개봉하며 리뷰하는 동영상을 업로드한다. 이 채널 덕분에 나는 '가챠'라는 단어도 처음 알게 됐다.


*가챠 시스템:                                      

‘가챠 시스템’(Gacha System) 이란 게임에서 어떠한 아이템이 뽑힐지 알 수 없는 ‘랜덤박스’(Random Box) 아이템을 구입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만약 운이 좋다면 구매한 가격 대비 가치가 높은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는 반면, 운이 나쁘다면 구매한 가격 대비 가치가 낮은 아이템을 획득할 가능성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가챠 시스템 [Gacha System, ガチャ] (게임용어사전: 장르/제작/플레이용어, 2013. 12. 12.)


즉, 랜덤박스 안에 대략 열 개에서 열 두개의 피규어들이 들어있는데, 이 중에서 중복되는 아이템이 들어있을 수도 있고, 운이 좋으면 제품 상자에도 그려지지 않은 시크릿 피규어들이 나올 수도 있다. 뜯어보기 전까지는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저절로 '다음에는 뭐가 나올까?' 하며 기대감이 증폭된다. 피규어들을 보며 진심으로 행복해하시는 듯한 유튜버 형진씨의 목소리 덕분에 더 행복해지는 영상이다.

 덕후의 세계는 끝이 없어서, 나는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피규어들이 있는지도 처음 알았다. 특히 너무나 사랑스러운 소니엔젤들은 전부 갖고싶더라...


 만약 내가 이렇게나 많은 피규어들을, 그것도 한 번에 열개씩, 자주 구매한다면 분명히 집에서 쫓겨날 만한 일인지라 이 영상들을 보면서 "이걸 다 어디다가 두려고?/어디에 쓰려고?"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탕진들이 본인에게 큰 즐거움을 가져다준다면 그걸로 된 거겠지. (게다가 유튜브를 통해 광고수입을 얻을 수도 있으니까..!)


 내게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소비라면 그야말로 탕진이지만, 내게 기쁨을 가져다준다면 그건 '행복한 소비'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단,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왜 사느냐"고 스스로 질문하는 것이 아닐까. 나에겐 소중하지만 누군가에겐 돈낭비, 애물단지로 보이는 것이 대부분의 탕진 아이템이다. 부모님, 배우자, 동거인 등이 반대한다면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자신만의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더 당당한 탕진, 투자/취미/수집 측면에서 모두 만족스러운 '탕진잼'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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