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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지 Apr 24. 2018

폭포수에 흠뻑 젖은 채,
악마의 목구멍까지

발가락이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이과수 폭포의 하이라이트를 놓칠 순 없었다

드디어 폭포 크루즈를 타는 시간이 됐다.

폭포 크루즈 탑승권이 포함된 입장 티켓을 구매한 사람들은 일정 시간이 되면 운행하는 보트를 탈 수 있다. 이 보트는 폭포수 바로 아래까지 쭉쭉 달리므로, 보트를 탈 생각이 있다면 온 몸이 쫄딱 젖을 것을 각오하고 타야 한다.

 이 날을 위해 한국에서 사둔 스마트폰 방수팩을 꺼내서 목에 걸었다. 그리고 전날 푸에르토 이과수의 한 상점에서 산 분홍색 우비를 꺼내 입었다. 푸에르토 이과수를 많이 돌아다니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우비를 파는 상점이 많지 않을까 싶다. 가게 주인 청년이 "어떤 색을 원해? 파랑? 노랑? 핑크?"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핑크!!!"를 외쳤다. 나는 핑크색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니까. 

 보트 탑승을 기다리는 곳에서는 승객들이 다들 짐 정리를 하랴, 옷을 갈아입으랴 분주하다. 직원들이 짐이 젖지 않도록 가방을 넣을 수 있는 커다란 방수백을 나눠준다. 

분홍색을 입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보트는 아주 빠른 속도로 시원하게 내달린다. 아직 폭포수가 살갗에 닿지도 않았는데도, 승객들이 움찔거리며 긴장된 비명을 지르게 만들 만큼.

 아직 보트가 폭포에 너무 가까워지기 전에 관광객들은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서 분주하다.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는 보트. 이 신나는 순간은 사진보다는 영상이 어울릴 것 같아서 비디오 녹화 버튼을 눌렀다. 스마트폰을 들고 이과수에 온다면, 방수팩은 필수다.

 

 폭포에 가까이 갔을 때는, 거의 폭포의 표면을 약간 뚫고 진입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래로 떨어지는 물줄기의 힘 때문에 보트가 살짝 살짝 뒤로 밀릴 정도였다. 내 머리 위로 물이 떨어지고 있다기 보다는, 내가 이미 엄청나게 거센 강물 안에 풍덩 빠져있는 느낌이었다. 마치 에콰도르 바뇨스에서 래프팅을 하다가 물에 빠졌을 때처럼. 

 보트에서 내려서 마주한, 완벽한 아치형의 아름다운 무지개.

 젖은 티셔츠를 새 것으로 갈아입고, 짐을 주섬주섬 챙겨서 이 아름다운 무지개에 넋이 팔려서 홀린 듯이 가까이 가고 있던 내게 또 다른 대사건이 터졌다.

 콰직!

 눈 앞에 별이 번쩍하고 보이더니 엄청난 통증이 뒤따랐다. 무지개에 한눈을 판 사이 보지 못한 커다란 바위에 새끼발가락이 부딪힌 것이다. 설마, 부러진 건 아니겠지? 걸어다닐 수는 있는 것으로 보아서 부러진 건 아니겠지 싶어서, 그냥 그대로 절뚝거리며 정글을 돌아다녔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 새끼발가락, 부러진 거였다.

 그 날 저녁 혹시나 샌들이 아닌 앞이 막힌 신발을 신으면 발가락을 조금 더 단단히 보호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억지로 트래킹화에 발을 우겨넣으려 해봤지만 통증이 심해서 신발을 신을 수가 없더라. 그렇게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오로지 샌들만을 신어야 했다는 이야기.


 물론 여행 중에 몸을 다친 것은 불행이긴 하지만, 만약 어차피 꼭 한 번을 다쳐야 했다면 하필 이 타이밍에 발가락이 부러진 것도 그 나름대로 행운이었던 것 같다. 만약에 칠레의 푸에르토 몬트나 아르헨티나 바릴로체 같은 추운 곳에서 발가락이 부러졌다면, 그런데 발이 부어서 트래킹화는 신을 수가 없었다면, 그건 어쩌면 더 이상 여행이 불가능한 상황을 낳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의 내게 남아있던 여행지는 모두 날씨가 따뜻해서 어차피 샌들을 신어야 하는 곳이었다. 나이스 타이밍!

 계속해서 나타나는 크고 작은 폭포들을 눈에 담으며, 걷고 또 걷는다.

 이놈의 이과수 폭포, 정말 크다. 

 발가락의 통증 때문에 걷는 속도가 느려지며 약간씩 다리를 절뚝거린다. 

 트레일의 폭이 넓지 않은 탓에 뒤따라오는 관광객들을 계속해서 앞으로 보내줘야 했다. 

 앗! 야생의 코아티(이)가 나타났다!

 이 귀엽게 생긴 동물의 이름은 '코아티'. 이과수 폭포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야생동물이다.

 보기에는 너무나도 귀여운 코아티이지만, 성질은 그렇게 귀엽지 않다. 

 코아티가 관광객에게 접근하는 이유는, 관광객이 들고 있는 음식물을 빼앗기 위해서다. 관광객을 공격할 수도 있으므로, 이과수 국립공원 안에서는 음식물 섭취에 굉장히 주의해야 한다. 가급적 코아티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재빨리 음식물을 꿀꺽 삼켜버릴 것. 그리고 코아티 앞에서는 절대로 음식을 꺼내지도 말고, 먹이를 주지도 말 것! 이건 내가 직접 본 건데, 한 관광객이 바나나를 꺼내기가 무섭게 코아티 여러 마리가 우르르 모여들었다. 그 재빠른 속도가 얼마나 공포스럽던지.

 귀엽고 무서운 코아티를 뒤로 하고 다시 트레일을 걷는다. 

 아니, 내 기억이 맞다면 걷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기차를 한 번 더 타야 할 것이다.

 바로 이과수 폭포에서 가장 유명한 폭포의 하이라이트, '악마의 목구멍(Garganta del Diablo)'에 가기 위해서다. 

또, 믿을 수 없을 만큼 고요한 커다란 물이 이어진다. 

불길하리만치 고요하다. 왜냐하면, 미동도 없이 조용한 물가의 뒤편에는 미친듯이 떨어지는 거대한 폭포가 있다는 뜻이니까. 

 커다란 물고기야 안녕?

 이 물고기는 폭포 가까이에 가본 적이 있을까?


콸콸콸.

점점 귀를 찢을 듯한 물소리가 가까워진다. 

고요하던 물의 끝자락에, 뻥 뚫린 물구덩이가 보인다.


파노라마로 담을 수밖에 없는 규모. 아니, 파노라마로도 담을 수 없는 규모.

이 모습을 영상으로 온전히 담으려면 드론을 띄우는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봤자, 지금 나처럼 여기 서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에 고막이 멍멍한 채로 물안개에 흠뻑 젖는 것만한 감동은 느낄 수 없겠지만.

 가이드북은 "충동적으로 물에 뛰어들지 않도록 조심해라"라고 말한다.

 실제로, 이렇게 그 규모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물줄기를 보면 몸을 던지고픈 충동이 되는 심리학적인 현상이 있다나. 

 너무 짙은 물안개 구름이 생겨나서, 이 폭포가 얼마나 아래까지 떨어지는 걸까 눈으로 확인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그리고 분명 이 폭포는 우리의 짐작보다 훨씬 더 깊은 아래로 흐를 것 같다.

관광객들이 폭포를 볼 수 있도록 설치해놓은 사각형의 트레일 울타리 안을 누비며 폭포의 모습을 어떻게든 더 잘 담으려고 한참을 애를 쓴 후에야, 그제서야 내 사진을 찍을 정신이 생겼다.

 여행을 하면서 틈틈이 스트레칭이나 운동을 할 틈도 없고, 장거리 버스를 밥 먹듯이 타다 보면 등이며 허리 근육이 찰흙처럼 뭉치고, 무엇보다도 하루 종일 걷다 보면 종아리가 퉁퉁 부어서 아무리 자고 일어나도 붓기가 빠지지 않아서 날이 갈수록 몸이 퉁퉁 불어난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진을 보니 나쁘진 않다. 좋은 비율과 기럭지는 어딜 가지 않는구나. 엄마 감사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아마도 한 번 오면 다시는 보지 못할 이 폭포에 하루 종일을 눌러앉아 있어야 마땅할 것 같지만. 그래야 이 위대한 폭포에 대한 예의일 것 같지만. 입장객이 그렇게 늦게까지 폭포를 구경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악마의 목구멍(Garganta del Diablo)에서 다시 입구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이제 그만 폭포를 떠나야 했다. 

 아쉬워서 뒤를 돌아보며 먼 발치에서 찍은 악마의 목구멍. 

바이바이.

 아까 지나왔던 길을 되돌아 나간다. 이 멈춰있는 듯한 잔잔한 물을 건너오면서 악마의 목구멍이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전혀 알지 못해서 궁금해했던 아까의 내가 부럽다. 

기차 플랫폼에서 만난 코아티.

코아티들도 안녕!


폭포 구경을 마치고, 기념품샵에서 이과수 폭포 엽서도 빼놓지 않고 산 후 다시 푸에르토 이과수로 돌아왔다.

수고한 나를 위해 푸에르토 이과수 버스 터미널 바로 건너편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샀다.

이제 다음날 아침이면, 72일의 남미 여행 중 마지막 나라, 브라질로 가는 날!


+)푸에르토 이과수를 찾는 여행객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었던 여행 정보가 있었다.

푸에르토 이과수는 파라과이와 브라질과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에, 특히 브라질 헤알(real)로 환전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환전소가 잘 눈에 띄지 않았다.

 내 가이드북에서 환전소 한 군데의 주소를 알려주긴 했지만, 막상 그 곳으로 가 보니 생각보다 휑하니 환전소 비슷하게 생긴 곳이 보이지 않아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가게 유리 전면이 진한 검정색 필름으로 도배된 가게에 'Cambio(환전)'이라는 글씨가 써진 가게를 발견했는데, 머뭇거리면서 들어가서는 "깜비오?" 하고 물으니까 아저씨가 맞다면서 고개를 끄덕이신다. 환전을 전문으로 하는 곳처럼 생기지도 않았고, 환율이 명시되지도 않아서 괜찮은 건가 조금 걱정스러웠다. 보니까 아저씨가 그냥 '100페소는 대충 몇 헤알' 이런 식으로 환산해서 브라질 돈을 내어주시는데, 오히려 이게 나중에 리우데자이네루 공항의 환전소보다 환율이 더 괜찮았던 걸로 기억한다. (아르헨티나 페소를 브라질 헤알로 환전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그러니 너무 걱정 말고 들어가서 환전하시길.


 주소는 Avenida Victoria Aguirre 295. 저게 정확한 번지수가 아닐 수도 있으나, 구글맵에서 가리키는 곳 어딘가 언저리인 것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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