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람지 Apr 06. 2018

정글 숲을 기어서 가자,
이과수가 나온다

엉금엉금 기어서 가자/늪지대가 나타나면은/이과수가 나온다/이과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한참을 달려 도착한 푸에르토 이과수(Puerto Iguazu)는 공기부터 달랐다.


우리나라의 가을 날씨와 비슷하게 으슬으슬 쌀쌀한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달리, 한낮의 푸에르토 이과수는 해가 쨍쨍하고 습도가 높은 후텁지근한 여름이었다. 멀지 않은 어딘가에 정글이 있고 눈에 보이지도 않을 물 알갱이를 뿜어내는 폭포가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들기에 딱 좋은 날씨.


 푸에르토 이과수는 매우 작은 마을이지만 관광객들이 워낙 많이 찾는 곳이기에 없는 것이 없다. 낮에 도착하여 다음 날 이과수 폭포를 보러 가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당장 할 일이 없던 나는 마트에 장을 보러 가기로 한다. 

 사실 여행 중에 내 손에서 호스텔에서 밥을 요리해서 먹은 적이 없다. 언제나 식당에서 혼밥을 먹었고, 그렇게 매일 있는 외식이 내 주머니가 다른 알뜰한 배낭여행자들보다 빠르게 배워진 주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유독 내가 묵었던 호스텔의 투숙객들이 다들 호스텔에서 손수 저녁을 만들어먹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나도 그 분위기에 합류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72일의 긴 여행이 끝나가는 마당에서야 드디어.


 내가 생각한 메뉴는 바릴로체의 푸드트럭에서 사 먹은 초리빤(choripan)과, 콜롬비아 칼리의 살사 학원에서 한국인인 영주 언니와 함께 만들어 먹었던 아보카도 토마토 고수 샐러드. 나름대로 영양의 균형(?)을 맞췄으면서도 지난날의 여행에서 새로 알게 된 소울 푸드로 구성한 메뉴였다. 

 남미의 초리쏘(소시지)야 원래 워낙 맛있는 것이니까, 그걸 빵에 끼워 넣은 초리빤은 실패할 리가 없었지만 문제는 샐러드였다. 내가 좋아하는 아보카도를 야심차게 마트에서 사 왔는데, 아보카도가 말랑말랑하게 푹 익어 있을 거라고 순진하게 생각한 내 잘못이었다. 덜 익어서 딱딱하니 잘 잘라지지도 않는 아보카도로 만든 샐러드에선 얼마나 고릿고릿한 맛이 나던지. 그래도 나름대로 토마토랑 오이랑 고수 썰어넣고 예전에 먹었던 그 맛을 재현하려고 애썼다.


 다음 날, 드디어 이과수 폭포를 보러 가는 날.

 호스텔 바로 근처의 버스 터미널에서는 매 한시간마다 이과수 폭포로 가는 버스가 출발한다. 

이과수 폭포 입구로 가는 버스표. 고고씽!

 이 때만 해도 이과수 폭포가 얼마나 거대한 규모인줄 몰랐지.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하고 나면 바로 코 앞에 이과수 폭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폭포를 둘러싼 정글에 가려면 일단 걸어서는 못 가고, 반드시 기차를 타야 한다. 

정글 숲을 달리며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내는 초록색 기차. 

먼저 Circuito Superior(Upper Circuit)에서 내린다. 

이과수 폭포에는 Upper 그리고 Lower, 이렇게 두 가지 순환로가 있는데 어딜 택하느냐는 관람객의 몫이다. 나는 Upper Circuit을 먼저 돌기로 했다. 

 안내 표지판을 따라서, 그리고 신이 난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따라서 걷다 보니 시원한 물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처음으로 내 눈에 보인, 저 멀리의 거대한 폭포. 

트레일을 따라 걸을 때마다 변화무쌍해지는 폭포의 모습. 마치 마추픽추를 바라보던 때와 같은 기분을 오랜만에 느꼈다. 

 이과수 폭포에 와 보기 전까지는 이 곳에는 '이과수 폭포'라는 단 하나의 거대한 폭포만 존재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아주 거대한 정글이 있고 그 안에 수십 개의 크고 작은 폭포가 있었다.

이 정도 풍경이라면 아무리 카메라를 들어도 지나치지 않겠지요 :)

 나스카에서 산 면 티셔츠와 함께. 

정글 숲을 기어서 가자~

엉금 엉금 기어서 가자~

늪지대가 나타나면은

악어떼가 나온다

악어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부르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왁! 하고 놀래키듯 소리를 지르는 이 동요의 구조를, 이과수 폭포의 정글이 꼭 닮았다. 폭포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물의 흐름이 잔잔한 곳이 나온다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잔잔한 물줄기 뒤에는 곧 아주 드라마틱하게 떨어지는 폭포가 나오기 때문. 

폭포 가까이 가는 보트를 탄 사람들이 보인다. 나도 저 보트 탑승이 포함된 입장권을 샀다. 어서 타러 가고 싶어서 두근거린다.

폭포가 만들어낸 무지개.

365일 24시간 무수한 물 알갱이들을 내뿜고 있는 이과수 폭포에서는 언제 어디서든 무지개를 쉽게 볼 수 있다.


참 오랜만에 보는 무지개다.


어릴 때에는 비 온 뒤 하늘이 개고 나면 쉽게 무지개를 찾았던 것 같은데, 어른이 된 후부터는 무지개를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무지개도 동심에게만 잘 보이는 허깨비 같은 것인지, 아니면 환경 오염과 관련이 있는지, 아니면 점점 무지개를 보고도 무덤덤하게 되어 보고도 본 줄을 모르는 것인지. 

 정글 속의 후텁지근한 날씨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워낙 거대한 규모의 폭포 덕에 끊임없이 맞게 되는 물알갱이 세례 덕에, 금세 촉촉히 젖은 몰골이 되고 만다. 

정글을 누비는 원숭이 발견. 

내리막길. 정신 없이 자꾸만 뒤를 돌아보면서 폭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다 보니

어느덧 보트를 타는 곳에 가까워졌다.

보트를 타고 폭포 가까이 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곧 내가 저걸 타게 될 거다. 

폭포가 만들어내는 어마어마한 물보라는 금세 보트를 집어삼켰다. 

멀리까지도 보트에 탄 사람들의 즐거운 비명소리가 들린다.

이 작은 사진을 봐서 얼마나 실감이 날 지는 모르겠지만, 

폭포 아래의 물은 마치 바다 같다. 폭포가 만들어내는 물보라와 파도며, 그 물의 깊이 하며. 차라리 바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드디어 내가 보트를 탈 차례가 다가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디오스, 부에노스아이레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