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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Jan 11. 2022

엄마, 공연장이 텐트야?




"엄마 공연장이 텐트야."

둘째 아이가 여섯 살이었을 때 함께 간 공연장을 보고 아이는 말했다. 그 공연장은 창동에 만들어진 이동식 공연장인 <서울 열린 극장 창동>이었다. 창동 공연장에서는 당시 각종 문화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의정부 예술의 전당에서 난생 처음 금난새 선생님의 합창 교항곡 공연을 보고 공연에 매료되었다. 눈에 불을 켜고 금난새 선생님의 공연을 찾고 있었고 우연히 창동 공연장에서 '금난새의 브런치 콘서트'가 한 달에 한번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공연은 오전 11시였고 가격은 만원이었는데 미리 선구매를 하면 할인이 되어 8천 원 정도였다. 거리도 집에서 멀지 않았고 시간도 아이가 유치원을 간 뒤라 딱이었다. 공연 시간도 1시간 정도여서 공연을 보고 차 한잔을 하고 와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티켓은 1년 치를 미리 예매할 수는 있지만 아이의 상황은 1년 치를 미리 예견할 수 없다는 거였다. 


그럼 아예 아이를 데리고 공연을 보면 되지 않을까? 공연 관람 연령은 7세가 되어야 했지만 둘째 아이는 또래보다 머리 하나만큼 키가 커서 초등학교 1학년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지금은 절대 그럴 수 없지만 그 당시는 아이의 나이를 확인하지 않았다. 


문제 하나가 해결되니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아직 어린아이가 1시간짜리 클래식 공연을 무사히 볼 수 있느냐였다. 어린이 뮤지컬이나 어린이 전용 공연이라면 상관없지만 그 공연은 주부들을 위한 공연이었다. 둘째는 3년을 나와 그 공연을 보러 다녔는데 그때까지도 브런치 콘서트에 아이들이 오는 일이 없었다. 다행히 둘째는 공연 내내 움직이지도 않고 화장실을 가겠다고 하지도 않고 첫 음악회를 잘 보고 나왔다. 






아이는 커서 이제 열아홉이 됐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생활처럼 하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에 첫 책을 썼고 이제는 책으로 돈을 번다. 여전히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러 다니고 글 쓰는 공부를 위해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대학을 가지 않아도 아이는 글을 쓰는 일을 계속할 계획이다. 


아이는 영어 학원 대신 나와 연극을 보러 갔고, 수학 학원 대신 뮤지컬을 보며 행복해했다. 물론 이 경우가 결코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안다. 문화를 즐기는 정도를 벗어나 아이와 나는 매주, 혹은 한 달에 두세 번 공연이나 전시를 보러 다녔다. 학교를 빠지는 대신 '현장체험 신청서'를 내고 학교 밖의 자유를 맘껏 즐겼다. 아이는 또래 아이들처럼 핸드폰이나 게임으로 힘들게 하지 않았다. 굳이 못하게 한 것도 아니었는데 아이는 책을 보고 주말이면 함께 공연장을 다니며 핸드폰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핸드폰으로 여가시간을 안 보내지는 않지만 책을 읽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렇다고 내 아이가 특별하거나 공부에 더 관심이 많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이는 아주 평범한 십 대 청소년이었다. 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는 경험들을 하고 있었다. 


내 아이가 온몸으로 문화를 경험하면서 겪은 변화를 보며 다른 아이들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중고등학생들 과외를 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에게 휴일이나 여가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게임을 하거나 친구들과 영화를 본다고 했다. 그게 나쁜 것은 아니니 문제랄 것은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이상의 문화를 경험해 보지 못했다. 연극을 보러 간 경험도 미술관을 가는 일도 없었다. 엄마들은 아이들이 주말이면 게임에 빠져 지낸다고 속상해했다. 마치 처음과 끝을 분간할 수 없는 뫼비우스 띠를 보는 것 같았다. 






정말 우연히 과외하던 아이들에게 시험을 보고 나면 재미있는 뮤지컬을 보여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아이들은 뮤지컬을 보자는 제안에 당황하면서도 재미있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시험이 끝나고 어머니들께 허락을 받고 아이들을 데리고 뮤지컬 '빨래'를 보러 갔다. 아이들의 반응은 거의 폭발적이었다. 이런 공연 처음 본다, 너무 재미있고 눈물 나게 감동이었다, 다음에 또 보어 오면 안 되냐 등등. 그렇게 시작한 것이 그 후로도 매년 시험을 보고 나면 아이들을 데리고 연극, 뮤지컬, 전시회를 데리고 다녔다. 그때 함께 공부했던 아이들은 수년이 흘러 성인이 되어서도 나를 만나고 있고 늘 그때의 기억들을 이야기한다. 


연극을 좀 본다고 해서 아이들의 삶이 순식간에 변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뮤지컬을 좀 봤다고 해서 아이들이 핸드폰을 던져 버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학교와 집, 학원을 도는 마의 삼각지대 코스를 벗어나 문화를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핸드폰과 게임 말고도 자신들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고 더 양질의 여가시간을 즐길 수 있지는 않을까?


무모한 도전일지는 모르지만 내 아이와 함께 누렸던 시간들을 기록해 보려고 한다. 이런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아이는 이렇게도 키울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혹여 아이와 함께 연극을 즐기는 방법을 알고 싶은 누군가, 아이와 미술전시회를 함께 가고픈 누군가, 아이와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멋진 음악회를 경험하고 싶은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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