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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Apr 11. 2021

연극 '양갈래머리와 아이엠에프'

어느날 엄마는 양갈래로 머리를 땋고 열여섯 소녀로 돌아갔다. 가족들은 엄마가 한평생 죽도록 일만 하다 정신줄을 놓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게라도 나는 쉬고 싶었어. 

이제 쉬었으니 내가 일할게. 

당신 혼자 일하는 거 죄책감이 들어서....”


거짓말처럼 묶었던 머리를 풀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어난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그 한마디 한마디가 온 몸을 쿡쿡 찔러댔다. 정신줄을 놓은 사람처럼 드러누워야만 쉴 수 있는 나의, 너의, 우리들의 엄마. 가정의 위기마다 슈퍼맨처럼 아이언맨처럼 날아오르는 그녀들은 자신의 쉼이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돌아오는 현실을 산다. 아이엠에프도 코로나도 모두에게 일어난 사건이지만 그 무게는 결코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았다. 


<사진출처- 무브온>


연극은 아이엠에프로 실직한 김씨가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횟집, 찜닭집, 치킨집 등 온갖 장사를 하고 망하기를 반복하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며 겪는 모진 풍파를 그리고 있다. 김씨는 경비원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 입주민 차 청소부터 입주민 쓰레기까지 대신 치우기도 거절하지 못한다. 얼핏 보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김씨가 가족을 먹여살리는 것 같지만 사실 이 집의 실제 가장은 엄마다. 


엄마는 남편의 실직으로 콜라텍 주방 일을 아르바이트로 시작한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은 20년 가까이 지속된다. 병원에 연고를 판매하는 영업사원이었던 아들은 의사의 갑질에 일을 그만두고 운둔 중이다. 고졸 딸이 나가 버는 돈으로 생활하며 엄마의 월급으로 가게 임대료를 내며 버텨왔다. 이 가족에게 엄마의 쉼은 단순히 쉼이 아니다. 


엄마는 어느 날 배추를 사러 가다 평생을 일만 하다 배추밭에서 고꾸라져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엄마는 양갈래 머리를 땋으며 치매에 걸린 시늉을 하면서 '쉼'을 선택한다. 그렇게라도 쉬고 싶었다는 엄마의 대사는 우리 모두의 가슴 한복판에 와서 꽂히고 만다. 


아이엠에프를 시작으로 오늘날까지 이십여 년간 그 자리를 맴돌고 있는 한 가정의 이야기를 통해 극작가이자 이 작품의 연출인 윤미현은 묻는다. "왜 우리의 삶은 성실히 살아도 나아지는 기미를 보이지 않는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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