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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Apr 05. 2021

너는 재능이 없어!

"너는 재능이 없어. 빨리 다른 쪽 일을 알아보는 게 좋아."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잡지사 사수는 나를 조용히 불러 말했다. 일년이 넘도록 언젠가 그 말을 듣게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말을 듣고 말았다. 


막연히 글을 쓰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있었다.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 교내외 글과 관련된 대회는 늘 내 몫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글을 잘 썼다는 얘기였겠지만 어쨌거나 글쓰는 것은 수학 공부보다 내겐 쉬운 일이었다.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반지하 방으로 내려앉았던 그 시절에 엄마와 언니는 60만원이란 거금을 내 학원비로 내주었다. 그 돈으로 기독교방송 문화센터 기자양성과정을 등록했다. 


기자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알 지 못했던 터라 '기자양성과정'이란 공고만 보고 엄마에게 사정했다. 어린시절 싹수(?)를 기억했을 엄마와 언니는 무척 비장한 표정으로 돈을 쥐어 주었다. 그런 인연으로 처음 들어간 잡지사가 '우리교육'이었다. 월간지였지만 정론지였고 작지만 탄탄했다. 수습이란 험난한 과정을 반드시 이겨내리라 다짐했다. 


험난한 과정은 정말 험난했다. 월간지 마지막 페이지에나 들어가는 잡다한 소식 한 꼭지를 쓰는데 한달이 걸렸다. 서너 문장으로 꽉 차는 단신을 수십번 '다시' 썼다. '다시'가 대여섯번을 넘어가면 이제 이유도 알려주지 않았다.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남들은 그럴듯한 기획기사를 서너개씩 쓰는데 나는 단신 하나를 가지고 매일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함께 들어 온 출판부 수습친구와 또래 직원들은 금새 한편이 되었다. 밤마다 모여서 술과 함께 서로의 신세 한탄을 같이 마셨다. 그렇게 6개월을 견뎌내고 다시 일년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작은 기사 하나를 한달 내내 '다시' 써내고 있었다. 기자는 그렇게 되는 것인가보다 했다.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나는 기자로서는 아닌 것이 맞았다. 사수는 그걸 금새 알아본 것이다. 


회사 앞 카페에서 들은 그 말은 듣는 순간 머릿 속이 멈춘 듯했다. 어떤 생각도 나지 않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부도로 길에 나앉다시피 할 


때도 나는 씩씩했다. 죽어 버리겠다는 아버지의 술주정도 겁나지 않았다.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하면서도 나는 미래 인생계획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너는 재능이 없다."는 그 한마디는 내 존재를 지워버렸다.


나는 정말 '다른 일'을 알아 보았고 잡지사를 나왔다. 그리고 다시는 글을 쓰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직업전선에서 일을 하며 '나같은 사람은 글을 쓰면 안된다'고 주문처럼 되새겼다. 그렇게 십년이 흘러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공연을 보며 끄적끄적 써내려간 낙서가 조금씩 글이 되었다. '카카오스토리'가 등장하면서 매일 한 편의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3년이 넘도록 매일 글을 올렸다. 매주 한 편의 공연을 보고 기록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연히 내 '카스'을 본 신문사 후배가 내 인생을 바꾼 제안을 해왔다. 공연 리뷰와 생활에세이를 정기적으로 써보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마흔 셋의 나이에 다시 글을 쓰게 되었다.


재능이 없다는 그 사수의 말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한번 포기는 했어도 두번 포기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먼저 포기하는 일은 없다고. '그만 쓰라'고 하면 다른 곳에서 쓰면 된다. 아무도 나같은 사람 책을 내주지 않는다면 내가 책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내 손으로 책을 제본하는 한이 있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오직 한권 뿐인 나만의 책을 만들겠다고 사진을 인화하고 가정용 프린터로 인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나의 결심은 또 다시 뜻하지 않은 곳에서 이뤄졌다. 연재한 글을 모아 책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2016년, 마흔 여섯의 나이에 나는 첫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나는 재능이 없다. 기자로 재능이 없다는 얘기다. 그때 기자로 재능이 없다고 친절하게 말을 해주었다면 좋았겠다는 것은 해봤자 소용없는 기대다. '재능이 없다'는 말에 내가 가진 모든 가능성을 포기하고 놓아버린 것은 순전히 나 자신이었다. 어쩌면 포기하고 싶었던 내 마음이 그 말에 기회를 잡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젠 재능에 빌붙어 살지 않는다. 오직 내 노력과 끈기와 근성을 믿는다. 최고가 되겠다는 착각도 하지 않는다. 나는 글쓰는 일이 즐겁고 공연을 보는 것이 행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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