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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Mar 30. 2021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

누구라도 그렇게 말해줘야지

코로나로 세상이 멈춰버린 2020년 봄, 큰 아이는 취직을 했다. 모두가 '기적'이라고 했다.

 "요즘같은 때 취직이 되기도 하네!", "아이고! 자식 잘 키웠네.", "성공했다, 진영엄마."

이름만 대면 아는 대기업 취직도 아니고 공무원시험 합격도 아니고 작은 회사에 취직한 것인데도 사람들의 공치사가 줄을 이었다. 티내고 좋아해주지 않았지만 내심 '자랑'스럽고 '기특'했다. 


"엄마, 나 회사 그만두는 거 생각 중이야."

회사들어간 지 1년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아이는 대화를 하자며 내 팔을 잡았다. 대한민국 평균 엄마인 나는 무슨 일이 있냐는 답을 원하지 않는 질문과, 요즘 회사를 나오면 어디 들어갈 데가 있냐는 협박에, 힘들어도 좀 참고 갈 데를 알아보고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는 설득을 했다. 


아이는 '답정너'처럼 결국 회사에 그만두겠다는 통보를 하고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왔다. 뭔가 한소리하려고 아이 방에 들어서는 순간, "엄마는 왜 한번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아? 엄마는 무조건 괜찮다고 해주면 안돼?"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아이는 옷을 갈아입으며 메마른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 말 못한 채 방문을 닫고 그 자리에서 돌아 나왔다. 무언가 가슴 속에서 '쿵'하고 내려 앉았다. 


이십여 년의 결혼생활을 그만 정리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엄마에게 '이혼'을 이야기했다. 이십여 년 결혼생활 동안 겪었던 시댁과 문제, 남편의 외도, 가정 경제 파탄까지 살면서 털어놓지 못했던 이야기에 엄마는 놀랐다. "왜 그런 이야기를 이제야 했니? 그렇게 살거면 진즉 이혼하지?"

왜 그랬냐면 그래도 괜찮다고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아서, 엄마는 늘 내게 의무만을 이야기했으니까, 내가 힘들어서 못살겠다고 하면 참고 살라고 했을 거니까. 목구멍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들을 삼키며 돌아왔던 지난 시간이 떠올랐다.


회사를 나오겠다는 고민으로 얼마나 많이 갈등했을까? 아니 그 이전에 그 일이 나에게 맞는 일인가를 얼마나 많이 생각했을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얼마나 속끓이며 고민했을까? 그 말을 뱉기까지 했을 그 많은 시간들을 나는 왜 보지 못했을까? 내가 이십여 년을 고민하며 아파하며 기를 쓰고 살아 온 시간들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순간의 좌절을 아이도 느끼지 않았을까. 


그래도 괜찮지 않은 일들이 더 많은 것이 인생이다. 설사 괜찮지 않지만 괜찮다고 말해준대서 세상이 끝나거나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회사를 나와도 다른 길이 펼쳐질 수 있고 이혼을 해도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일어나지도 않은 불행한 순간이 반드시 올 것처럼 단정하며 오늘을 저당잡혀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살면서 부딪치는 힘든 순간, 내 생각과 내 선택이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보다 큰 위로는 없을 것이다. 내 딸아이가 듣고 싶었던 그 한마디 말이 그때 내가 듣고 싶었던 그 말이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그리고 더 늦지 않게 말해 주었다. 

"괜찮아, 그래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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