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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Feb 18. 2022

짧고 굵게 공부하기

그거 돈 되니?


마흔여덟 번째 이야기








그거 돈은 되니?
배워서 뭐 하는 건데?


무언가를 배운다고 하면 십중팔구 받는 질문이다. 사실 내가 이것을 배워서 무엇을 하려는지가 궁금하기보다 대부분 그걸 뭐하러 고생스럽게 하냐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질문을 가장 쉽게, 가장 자주, 가장 직설적으로 하는 사람은 엄마다. 젊은 시절에는 매번 돈이 되는 일이냐고 묻는 엄마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배워서 돈 벌고 편하게 살았으면 하는 엄마의 근원적인 마음을 알기에 섭섭함은 없다. 어찌 보면 하도 뭔가를 배우고 부잡스러운 딸을 반 포기한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생각하는 공부는 배우고 싶은 모든 것,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뜻한다. 

음식 만드는 것을 배우면 음식 만드는 법이 공부고

달리기를 배우고 싶다면 달리기 잘하는 법이 공부다.

내게 공부는 배워서 익힐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성격은 내성적이지만 뭔가를 배워야겠다는 마음이 들면 당장 하고 만다. 급한 성격이다 보니 마음이 맞는 누군가와 같이 배우러 다닌다는 것은 어렵다. 마음이 서면 그 자리에서 바로 등록을 하거나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내 편한 시간에 가야 하고 일을 하기 전에 얼른 돌아와야 해서 무언가를 배우는 동안 혼자 사브작사브작 돌아다니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2001년은 우리나라가 IMF를 졸업하던 해였다. IMF로 전 남편 직장이 문을 닫고 작은 공장 관리인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우리는 충남 아산에 작은 면으로 이사를 했다. 염소 농장과 인삼밭으로 둘러싸인 아파트에서 비자발적 귀촌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게 되고 낮시간이 한가해지자 맥없이 풀어진 시간이 아까웠다. 경치 좋은 카페도 어쩌다 한 번이 좋다. 공기 좋은 산책길도 구멍 난 시간과 마음을 메우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공부였다. 





첫 공부로 왜 방송 모니터를 선택했는지는 20년이 지나 솔직히 기억에 없다. 아마 TV 정보 프로그램이나 미용실 여성지 어딘가에서 본 것일 수 있다. 학창 시절 방송반을 했던 경험 때문에 방송 모니터에 대해 근거 없는 친밀감을 갖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충남 아산에 사는 당당하게 서울 여의도에 있는 KBS방송문화센터 방송 모니터 과정을 덜컥 신청했다.



지금은 아산에서 지하철을 타거나 인근 KTX 역을 이용하면 한 시간이면 서울을 올 수 있다. 하지만 그때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면으로 나온 뒤, 다시 버스를 타고 평택역으로 가서 서울행 기차를 타야 했다. 서울역에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하는 2시간 넘는 거리를 옆 동네 드나들듯 매주 출근을 했다. 수업이 끝나면 아이 유치원 하교 시간 전에 돌아와야 해서 뒤도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나만큼이나 부잡스러운 사람들이 그곳에 많았다. 경기도뿐만 아니라 경상도 어디쯤에서 오는 사람도 있었어서 충남 아산은 애교스러운 거리가 됐다. 





방송 모니터 실무과정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규정도 많고 방송을 보며 확인해야 하는 부분도 복잡했다. 

뭐 이런 것까지 지적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세상 속에 합류한 것 같아 수업 시간마다 설렜던 기억이 있다. 한두 번 정도 결석은 허용된다고 했지만 굳이 결석 없이 과정을 마쳤다. 



그 먼 곳까지 배운다고 갔을 때는 그 일을 해보겠다는 결심 정도는 당연했다. 

당시는 과외를 해서 적잖은 수입을 벌고 있었고 IMF 여파로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안 되기도 했다. 

당장 과외를 접고 방송 모니터를 시작하기에는 돈이 안 되는 일이었다. 이후 수없이 배운 것들도 상당 부분 당장 돈이 안되어서 업으로 삼지 못하고 넘긴 것들이 많다.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르고 스스로 터득한 것은 '처음부터 돈이 되는 일'은 없다는 사실이다. 

돈은 시간에 비례했다는 사실도 뒤늦게 깨달았다. '그때 시작했더라면....' 하는 짧은 후회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 시간들이 아예 헛수고도 아니었다. '그거 해서 돈은 되니?'라며 묻는 엄마의 질문이 늘 속상하고 이해하기 힘들었으면서 나 역시 이건 배우면 써먹을 수는 있는 것인지, 돈은 되는 것인지를 늘 재고 계산하고 그랬던 모양이다. 






당연히 배운 것은 꼭 쓰임새가 있다. 

당장 쓰겠다는 결단과 용기가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사람 형편이 뭐 다 똑같으란 법이 있을까? 

배워서 배운 것으로 만족할 수도 있고 배운 것을 자신의 일에 적용을 할 수도 있고 배워서 TV 프로그램을 보며 평을 할 수도 있다. 내 경우에는 공연리뷰를 쓸 때나 TV 프로그램, 영화 등을 볼 때 배운 것이 배며 들어(배운 것이 스며들어) 글로 나온다. 



'배워서 무엇에 쓰는데?'라는 질문은 공부를 하는데 걸려 넘어지기 쉬운 작은 돌부리다. 호기심을 잘 누르지 못하는 나는 일단 시작을 하고 본다. 공부는 의외로 힘든 시간을 이겨내게 해주는 처방이 된다. 경제적으로 힘들 때도, 이혼을 하는 과정 중에도 공부를 했다. 오히려 더 많이 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자격증 두 개가 내 손에 쥐어져 있기도 했다. 



나는 짧고 굵게 하는 공부를 선호한다. 호기심이 다른 호기심으로 넘어가면 또 그 공부를 하는 식이다. 그 많은 것을 배우려면 돈이 든다. 돈이 안 드는 공부는 별로 없다. 그래서 더 열심히 벌었다. 여유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해서 수강료를 내기도 했으니까.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공부에 진심일 필요가 있나 싶었다. 배워서 돈도 못 벌면서 이걸 또 배우냐며 자신을 타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배운 것은 꼭 쓰임새가 있다. 반드시.
그것만으로도 공부는 가치가 있는 투자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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