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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Feb 23. 2022

배움에 대한 조금 불성실한 태도

바느질이 이어준 세상



쉰 번째 이야기






바느질을 하면 팔자가 사나워진다고 한다.

옛날부터 삯바느질로 자식을 키웠다는 이야기가 있다.

삯바느질은 삯을 받고 하는 바느질을 뜻한다. 즉 돈을 받고 바느질을 한다는 말이다. 

밤을 새워 호롱불 밑에서 바느질을 하는 여성의 모습을 TV나 영화를 통해 자주 봐서 그런지

바느질을 한다는 것은 '짠내'나는 노동으로 생각되기도 했다.


내가 바느질에 천성적으로 끌리는 것은 늘 우리의 옷을 만들어 입히곤 했던 엄마의 영향이 크다.

그렇다고 엄마처럼 꼼꼼한 성격은 못된다.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이다 보면 금세 지치고 한 땀이 두 땀이 돼버린다. 바느질을 좋아한다고 뜨개질이나 자수 같은 바느질과 유사한 작업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무념무상으로 하는 것이 바느질인데 숫자를 세고 구조를 따져야 하는 뜨개질이나 초정밀 작업인 수놓기 같은 것은 아예 손도 대지 못한다. 






그럼에도 내가 처음에 꽂힌 것은 '드레스 인형'이란 신세계였다. 이 또한 결핍에서 시작되었지 싶다. 어른이 돼서 내가 했던 많은 공부들은 '결핍'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바느질 공부의 첫 시작이 된 '드레스 인형'이었던 것도 어린 시절 맘껏 가져보지 못했던 '결핍'에서 시작됐다.



바비인형, 나나 인형, 미미인형 같은 마론인형(Maron Doll 마론이란 이름이 미스 유니버스 수장자 이름에서 왔다는 설도 있고, 미국 마텔사의 인형 상표가 바비라서 이를 피하기 위해 만들어낸 명칭 정도라는 이야기도 있음)이 처음 등장을 했던 때였다. 인형이 비싸서 돈이 좀 있는 집이 아니면 이 인형을 갖기 어려웠다. 초등학교 시절 마론 인형을 가지고 있던 친구가 반에 한 명이 있었을 정도다. 사람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이 작은 인형은 늘씬한 키에 완벽한 몸매, 또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작은 천사 같았다. 손에 쥐는 순간 나는 상상 속에서 공주가 되기도 하고 모든 이야기에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인형에 대한 결핍은 동경이 되었다. 언젠가는 작은 방 하나를 인형으로 가득 채우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드레스 인형'은 더 이상 고민의 대상이 아니었다. 

마음이 가는 것에 늘 직진인 나는 '드레스 인형' 키트를 사고 인형 만들기 책을 샀다. 

바느질은 고등학교에서 배운 것이면 충분했다. 아니,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어리고 사는 곳이 지방이었어서 서울로 '드레스 인형'을 배우러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단 드레스 인형 키트를 사서 만들기 시작했다. 



책 <인형 퀼트> 2002년



책 <인형 퀼트>








무엇이건 배움을 위해서는 직진하는 것이 좋다. 일단 저지르고 보면 어찌어찌 중간지점까지 가게 된다. 

내 인형사랑도 혼자 만들며 시작됐다. 초창기여서 그랬는지 설명서도 손으로 그리고 써서 만든 것이라 나 같은 초보자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많았다. 인형 만들기 장점은 내가 하는 방법이 방법이 된다는 거다. 이해가 안 되면 내 식대로 하면 된다. 그게 나만의 노하우가 된다. 인형의 커다란 치마 속으로 몸통을 끼워야 인형이 번듯하게 설 수 있다. 인형 몸통도 사야 하는 거였다. 이래저래 드는 돈이 늘어서 몸통은 콜라병이나 소주병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인형의 넓은 드레스 안에 들어가는 거라 눈에 보이지 않으니 상관이 없었다. 



드레스 인형을 만들어 보니 호기심의 영역이 '퀼트'로 이어졌다. 이 퀼트는 인형보다 돈이 더 들었다. 퀼트는 작은 조각 천을 이어서 만드는 것인데 이 천 대부분 수입천이었다. 지금은 국내산 퀼트 원단도 너무 훌륭하지만 이십 년 전 퀼트 원단은 수입 원단이 대부분이었다. 또 수입원단이 예쁘고, 만들었을 때 작품이 제대로 나왔다. 살림 사는 것은 누구나 같아서 맞벌이를 한다고 해서 내 맘대로 돈을 쓸 수는 없었다. 내가 선택한 것은 조금 더 일해서 이 배움을 이어갈 수 있는 돈을 버는 것이었다. 







이 무모한 도전으로 얻은 것은 일단 시작하면 된다는 거다. 

사람이 늘 시작하는 것이 힘들다. 저거 해보면 좋겠는데, 한번 시작해 볼까'하는 마음은 수없이 갖는다. 그다음 치고 들어오는 생각은 시작을 힘들게 한다.

- 내가 지금 시간이 되나?

- 저걸 배우려면 아이들은 어디에 맡기지?

- 시작했다가 포기하면 돈만 날리잖아.

- 돈 많이 들면 안 되는데?



남들은 둘째치고 나 역시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1분을 넘기지 못한다. 안되면 되도록 하면 된다. 혹은 되는 정도까지만 하면 된다. 중간에 포기할 것이 두려워서 시작을 못하면 아깝다. 중간에 포기하면 어때? 포기했다가 나중에 한번 해볼걸 후회하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다. 도전해서 안됐으면 그 배움은 나랑 맞지 않는 것이니 두 번 다시 뒤돌아 볼 이유가 없게 된다. 



어린아이들이 있어도 요즘은 불가능하지 않다. 내가 처음 인형을 만들 때는 직접 가게에 가서 수강을 하거나 '문화센터'에 등록을 하고 단계를 거쳐야 했다. 요즘은 유튜브에 넘쳐나는 것이 강의이고 키트도 종류가 수 십 수 백가지라 앉아서 뚝딱 만들 수 있는 것들부터 반제품까지 있다. 몰라서 못 찾지 없는 것이 없는 요즘이다. 그러니 아이들이 배움의 걸림돌이 되는 것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핑계에 가깝다. 



그다음 문제는 돈이다. 무엇이건 배움에는 돈이 든다. 사실 돈보다 시간이 든다. 우리가 시간을 돈으로 계산하지 않아서 그렇지 가치로 따지면 시간이 돈의 10배 이상은 된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무엇을 배우건 돈이 필요하다. 하다못해 독서모임에서 책을 읽어도 책을 사야 하고 오프라인 모임이 있다면 가서 커피값이라도 내야 한다. 그럴 때는 이 배움의 목적을 생각하면 된다. 독서가 목적이라면 온라인 독서모임을 찾으면 된다. 책은 도서관에서 빌릴 수도 있고 좀 품이 들지만 도서 체험단에 도전을 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모임이 목적이라면 약간의 돈이 드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 






무엇이건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무조건 학원이나 강좌부터 덥석 신청하지는 않는다. 

'퀼트'도 인형도 처음부터 배운 것은 아니었다. 일단 먼저 해보고 이게 나와 맞는지, 내가 꾸준하게 할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만들면 만들수록 재미가 있었고 전문적인 기술을 더 배우면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서자, 또 직진했다. 그렇게 초급, 중급, 고급 과정을 거쳐서 자격증을 땄다. 또 자격증을 딴 문화센터 원장님을 통해 인근 중학교 방과 후 강사를 할 수 있었다. 펠트반이었는데 2년 정도를 하면서 부수입을 얻었고 그 수입으로 나는 공연을 보러 다녔다. 한마디로 일석이조, 삼조였던 셈이다. 



강좌를 신청해야 하고 빨리 신청하면 할인의 혜택이 있는 경우도 며칠간 생각을 하고 다른 곳도 알아본다. 그 며칠이 지나도 배움의 열정이 사그라들지 않으면 그다음부터는 갈등 없이 시작한다. 인형 만들기나 홈패션처럼 재료를 사여하는 배움은 더욱더 처음부터 학원 등록을 하거나 하지 않는 게 좋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단기 강좌나 만들기 키트를 사서 내가 먼저 해보고 내가 할만한 것인지를 판단하고 등록을 한다. 



배움에도, 공부에도 여러 방법이 있고 길이 있다. 좋은 공부법이 누구에게나 다 좋은 것이 아니듯 배움의 길이 누구나 다 똑같지 않다. 하지만 분명 자신만의 비법 하나 정도는 갖고 있는 게 좋다. 그리고 방법 이전에 '꼭 완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금 불성실한(?) 마음이 필요하다. 모든 공부는 다 쓰임이 있게 마련 어서 한번 배운 것도 아이들 학교 숙제를 도울 때 솜씨를 자랑하게 되기도 한다. 언젠가 배웠던 그 잠시의 기억이 훗날 새로운 인생길을 열러 주기도 한다. 꼭 자격증을 안 따도 전문가가 안되어도 된다는 여유로운 마음이 역설적이게도 끝까지 완주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자격증 과정을 공부할 때 강사는 "매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배운다고 생각하면 내가 이거 해서 뭐하나 싶겠지만 실제로 끝까지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손에 꼽을 정도예요."라고 했다. 즉, 우리는 그 많은 사람들 중 하나이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서 자신을 자책하거나 끈기가 없다고 비하할 필요는 없다. 물론 끝까지 가는 소수에 드는 것이 가장 좋기는 하겠지만.






(좌)펠트반 수업 중 만든 연필 인형/ (우)컨츄리 인형 자격증 과정에 제출했던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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