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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Mar 04. 2022

자퇴 1년 4개월 차

우리는 잘 해내고 있는 중입니다






둘째 아이는 고등학교 1학년 11월에 자퇴를 했다. 

아이 친구들이 고 3이 되었으니 자퇴 1년 4개월이 지난 셈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어도 아이의 자퇴는 평범한 일은 아니다. 다행이라면 아이가 자퇴를 할 때는 이미 코로나19로 학교를 못 가는 날이 대부분이어서 학교를 안 가서 걱정이 되는 상황은 덜했다. 자퇴를 생각하고 있는 아이를 둔 부모가 본다면 허무한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솔직하게 정말 솔직하게 아이의 선택은 옳았다. 나에게 옳았다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옳았다. 우리는 너무 평온한 매일을 보내고 있고 심지어 만족한 1년 4개월을 보냈다. 



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글을 써서 변변하게 돈을 벌지 못하는 엄마와 달리, 아이는 책을 내서 천만 원을 버는 쾌거를 이루었다. 심지어 두 번째 책이기도 하다. 요즘 아이들의 세계는 오십이 넘은 노땅인 내가 따라가기 쉽지 않다. 아이는 혼자 책을 냈기 때문에 출판 비용을 빼고 남은 돈은 적금을 들었다. 일부는 **패드를 샀다. 중고지만 아무리 사달라고 해도 사주지 않는 엄마를 포기하고 자신이 번 돈으로 **패드를 사버리고 말았다. 



자퇴를 했으니 하루 종일 무위도식을 하면 어쩌나 했는데 아이가 문예창작을 공부하고 싶다고 해서 문예창작 학원을 보냈다. 몇 개월 다니더니 장학생이 되었다며 학원비는 안내도 된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올해는 대학시험을 보겠다며 대학 입학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하루는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해주며 나의 생각을 물었다. 

"남 생각은 중요하지 않아. 네가 원하는 게 대학인지 글을 쓰는 것인지 먼저 생각해. 네가 결정했으니 대학 준비도 하고 지금처럼 글 쓰고 할 수 있다면 책도 내고 네가 해오던 걸 꾸준하게 하면 돼."

"당연하지. 책도 다시 준비하고 있어."






하고 싶어 하는 일은 누구의 조언이나 도움이 크게 필요하지 않다. 

아이를 보면 그것을 확실하게 느낀다. 자기가 하고 싶어 선택한 길이니 스스로 알아보고 스스로 방법을 찾는다. 하루 일과도 스스로 알아서 한다. 이 정도 되면 이 아이가 엄청 대단하다 생각할지 모른다. 내 이야기는 아이가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은 아이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거다. 모르는 누군가가 보면 '뭐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서 침대에서 책이나 보고 겨우 일어나서 노트북만 끼고 앉아 있고 패드로 영화 보고 팝콘 먹고. 놈팡이 아니야?'



옆집 아줌마가 잠깐 놀러 와서 그 집 아이 생활을 지켜보면 딱 그런 생각이 들 모양새다. 엄마 입장에서도 '저러려고 학교를 그만뒀나' '저렇게 해서 뭘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는 절망각이기 때문이다. 내가 엄마로 지닌 가장 큰 장점이자 남보다 나은 한 가지가 있다면 아이를 딱 적당한 거리에서 보는 인내심을 갖고 있다는 거다. 내가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더 그런 건지도 모르고 남보다 나에게 더 집중하는 성향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는 아이를 믿는다. 시험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성적이 잘 안 나와도 아이가 열심히 공부한 과정을 알기 때문에 '고생했다'는 말로 끝내는 편이다. 열심히 하지 않고 성적 탓을 하면 그건 혼날 일이라고 늘 이야기했었다. 열심히 해서 잘되면 좋지만 내가 살아본 바, 안 그런 경우가 더 많고 결과가 안 좋으면 속상한 것은 자신이다. 자신보다 더 상처받고 힘든 사람은 없다. 엄마는 잠시 속상할 뿐이다. 같은 반 엄마가 물어보면 말하기 창피하거나 자존심 상하는 것은 아이 문제가 아니라 엄마 자신의 문제다. 그걸 바꿔서 생각하는 순간 내 아이는 모자란 아이, 부족한 아이가 된다. 그래서 아이가 상을 받아오거나 좋은 성적을 받아와서 "엄마 나 선물 같은 거 안 줘?" 해도 "네가 잘하면 네가 좋은 거지 엄마는 기분 좋을 뿐이고."라는 매몰찬 말을 남기고 자리를 피하곤 했다. 







아이의 자퇴는 나에게도 평화로운 시간을 주었다. 

아이가 자퇴를 했는데 엄마가 평화를 얻었다고 하면 놀란 눈으로 나를 본다. 아이의 자퇴는 입시생을 둔 부모가 겪는 마음을 고통을 내려놓게 했다. 아이의 성적이 뜻대로 나오지 않아서 어느 학교를 쓸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일은 겪어본 사람들은 안다. 성적이 안 나와서 다른 학원을 알아보고 과외를 알아보고 해야 하는 고민에서 해방이 됐다. 자퇴를 하니 돈이 적게 들어서 좋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진로가 정해져서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모든 일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고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뒤따른다. 이것은 마트 1+1 상품처럼 떼고 싶어도 뗄 수 없는 현실이고, 종이 앞뒷면처럼 숙명 같은 일이기도 하다. 



자퇴한 아이에게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보장된 미래도 없다. 아이가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는 그 사실 한 가지만 있을 뿐이다. 아이가 대학을 못 가면 고졸이 되는 것이고 작가는 불안정하고 보장된 수입이 없는 직업군에 속한다는 것이 현실일 뿐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일은 신이 있다고 해도 알 수 없다. 그냥 앞으로 나가볼 뿐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 그 하나로 모든 고민을 상쇄할 뿐이다. 나는 그저 평화로운 마음으로 내 삶을 꾸려나가면 된다. 열심히 돈을 벌고 아이의 모든 선택을 기다려 주면 된다. 그건 내가 너무나도 받고 싶었으나 누리지 못했던 내 젊은 시절의 '결핍'이기도 하다.  내 결핍을 내 대에서 끝냈다는 것으로 나를 칭찬할 뿐이다. 우리는 잘 해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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