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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Jan 03. 2022

값싼 동정의 최후

새해 첫날 지하철역에서....






의정부에 살 때였으니 10여 년 전이다.

가능역에는 분식점과 한 곳의 가져가는 커피집(테이크아웃점)이 한 군데씩 있었다.

오래되고 작은 전철역이다 보니 분식점과 커피집도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특히 분식점은 아주 젊은 부부가 하고 있었는데 음식이 별로인지 사람이 들어차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저녁 시간 분식점을 지나다 보면 떡볶이 코너에는 항상 불어 있는 떡볶이가 한가득이었다.  

그런데도 이 역을 오면 꼭 그곳에서 어묵 두서너 개를 먹고 갔다. 

저 어린 부부가 살아보겠다고 열심인 모습이 눈에 밟혀서였다.


그날도 새해 첫날이었던 것 같다.  

명절이라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날인데도 그 분식점은 문을 열었다. 

노느니 가게라도 열자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날은 춥고 속은 헛헛한데 딱히 문을 연 곳도 없었기에 

2500원짜리 라면 한 그릇과 600원짜리 어묵을 먹었다. 

라면 맛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음식을 먹으며

그래도 새해 첫날 매상을 올려줬다는 뿌듯함마저 들었다.

손님도 없는데 그래도 내가 음식을 팔아줬으니 주인도 무척 고마워할 거라 생각했다. 


계산을 하기 위해 카운터에 섰다.

젊은 여주인은 나를 보자마자 인사를 건넸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음식을 먹으러 와주어서 고맙다는 마음과 새해 쉬지 못하고 어딘가로 향하는 고객에게 환한 웃음과 함께 전하는 새해 인사였다. 3100원짜리 별 볼 일 없는 손님이 받기에 과분하다고 느껴질 만큼.

이상하게도 그날은 1800원짜리 라테를 파는 아주머니에게서도, 

버스 운전사 아저씨에게도 먼저 새해 인사를 받았다. 

그런 인사를 받고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 사람은 없다.

나 역시 새해 첫날부터 기분이 몽글몽글해졌다.


문득 

새해 첫날에 일터로 나온 그분들을 향한 

내 멋대로의 연민과

내 멋대로의 서사가 

창피해졌다.

내 멋대로

누군가를 2500원짜리 라면, 1800원짜리 라테로 

만들어버린 나 자신이 

아주 많이 창피했던 새해 첫날의 기억이 

새해에 다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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