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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May 18. 2022

꼬치 꼬치 캐묻지 않기

난 네가 궁금하단 말이야





"어디 가니?"

"일 보러."

"언제 오니?"

"몰라. 일 끝나면."

"무슨 일인데?"

"사람도 만나고 내 할 일도 있고."

"늦어?"

"몰라. 끝나면 와."




주말 아침 큰 아이는 분주했다. 보통 아침 식사도 거르고 잠을 자기 일쑤인 아이가 방과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며 외출 준비를 한다. 신발장 거울을 대충 훑어본 아이는 "나 간다"란 세 글자를 남기고 사라졌다. 아이의 뒤꽁무니를 겨우 포착하고 "어디 가니?"를 외쳤다. 아이와 나의 단답형 질문은 그렇게 뜬금없이 시작되어 멕아리없이 끝났다. 질문에 성과는 하나도 없었다. 일 끝나면 온다는 말은 기다리지 말라는 말과 같다. 일 보러 간다는 말도 묻지 말라는 뜻이다.




주방 옆 작은 아이방도 분주하다. 큰 아이 방은 거실 화장실과 가까워서 이동이 순식간이지만 작은 아이 방은 거실 화장실과 거리가 있다. 그래서 작은 아이의 분주함은 큰 아이와 달리 길고 요란하다. 나가는 것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작은 아이는 신발장 문을 열고 한참을 고민한 끝에 두툼한 워커를 꺼내 들었다. 물감을 일부러 흩뿌린 듯한 고무줄 바지에 자기 몸의 절반을 차지하는 백팩을 매고 있다. 머리엔 이미 헤드셋을 꼈다. 묻지 말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묻지 않을 나도 아니다.




"어디 가?"

"영화 보러."

"혼자?"

"친구랑."

"누구?"

"말하면 알아? 맨날 누구냐고 묻잖아."

"그래도 말해줘."

"은경이."

"언제 와?"

"끝나면 와."

"그게 언제야?"

"몰라. 나 간다."

두툼한 헤드셋을 다시 끼고 돌아선다. 더 이상 묻지 말라는 뜻이다.




이번 주는 내가 아침부터 분주하다. 오늘은 전시와 공연까지 세 군데를 가야 한다. 난 오늘 무척 바쁘다.

아침 청소만 대충 하고 빵으로 아침을 때웠다. 발걸음마다 졸졸 따라다니는 고양이 밥도 챙겼다. 이 놈도 나 아니면 일찍 밥 챙겨줄 사람이 없다는 걸 안다. 고양이 화장실까지 치우고서야 일이 끝났다. 자고 있는 작은 아이에게 엄마 나가니 밥은 알아서 챙겨 먹으라고 알렸다.




"엄마 어디가?"

"일 보러."

"언제 와?"

"일 끝나면?"

"늦게 와?"

"몰라"

보란 듯이 문을 닫고 나온다.




신발을 신고 신발장 거울을 들여다본다. 닫혀 있는 큰 아이 방을 향해 외친다.

"엄마 나간다"

"어디 가?"

"일 보러."

"언제 와?"

"일 끝나면?"

"늦어?"

"몰라"

작은 아이가 안 쓴다고 밀어낸 이어폰을 끼고 집을 나선다. 이게 이런 기분이군. 그냥 내 존재를 확인받았다는 안도감 말이야.




꼬치꼬치 캐묻는 것은 네가 궁금한 나의 마음이야.

대답하기 귀찮은 건 나를 믿는 너의 투정이지.

그래도 이제 꼬치꼬치 캐묻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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