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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Apr 06. 2022

집에 대한 짧지만 긴 이야기

우리에게 집은,



저장소를 가득 채운 사진들을 정리하다 우연히 한 전시회 사진을 발견했다.

예전 같으면 현상된 사진 꾸러미를 바닥에 죽 들어놓고 이 사진, 저 사진을 들여다보며 머릿속 어딘가를 헤집어 추억을 더듬는 재미에 하루가 가는 줄 몰랐을 거다.

요즘은 참 편리하게도 연도별로, 달별로, 공간별로 사진을 정리해 보여주니 손의 수고로움을 덜게 된다.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 <아파트 인생> , 2014년


이 전시는 아파트를 소재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17인 작가들의 참여한 전시였다.

작가들은 획일적이고 차가운 아파트라는 건물을 예술과 접목시켜 우리가 보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파트의 탄생과 소멸 과정을 기록하며 그 속을 가득 채웠던 인간의 욕망, 삶의 추억들을 포착해내고 있었다.

때론 무겁고 때론 추억 돋는 <아파트 인생> 전시는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기억에 선명했다.





사람이 나이 들듯 아파트도 나이가 든다. 사람이 나이 들어 수명을 다하듯 아파트도 나이가 들면 헐리게 된다. 사람과 아파트의 다른 점은 사람은 수명을 다하면 자연 속으로 사라지지만, 아파트는 수명을 다하면 새로운 건물로 골 탈퇴하여 새로운 부가가치로 재탄생한다는 점이다. 










아파트가 주된 주거 공간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아파트는 집의 또다른 이름이다.

아파트에서 태어난 아이가 커서 아파트 길을 걸어 유치원을 가고 아파트 앞 도로를 건너 학교에 등교를 한다.

아침이면 네모난 아파트에서는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와 삶의 현장으로 떠나간다.

저녁이 되면 뒤로 감기처럼 하나 둘 네모난 공간으로 다시 되돌아온다.

대가족이 사는 201호가 있고, 부부만 사는 503호도 있으며, 엄마와 단 둘이 사는 706호도 있다.


 



아버지는 문패가 있는 집을 원하셨지만 엄마는 아빠 몰래 쌈짓돈으로 부은 주택부금통장으로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아버지는 자기 이름 석자 대신 506호라고 붙은 아파트 문패를 못마땅해하셨다. 나는 그 아파트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동생은 가로로 누우면 꽉 차는 작은 문간방을 자기 방이라고 굉장히 좋아했다. 우리 가족에게 강서구 발산동의 그 아파트는 우리 집이 가장 부유했던 시절의 씁쓸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지금은 그 아파트 단지가 재개발이 되어 엄청난 가격을 호가한다고 들었다.







집은 모두 다른 모양, 다른 가격, 다른 지역에 있지만

집을 갖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은 누구나 같다.

누구나 집이 필요한 것도 불변의 진리다.

그래서 집은 사람들의 형편과 상황에 맞게 다양한 선택지가 있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집이 필요하다는 진리에 어떤 불평등도 있어서는 안 된다.

집의 불평등이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불평등으로 등치되어서도 안된다.





2014년 전시 자료이기 때문에 지금과는 다르다. 저 당시 아파트 가격과 현재 아파트 가격의 차이를 고려해서 단순 계산을 해보게 된다. 소득이 동일하고 수도권 아파트 중위 가격이 2배로 올랐다면 저 기간보다 2배의 기간이 걸린다는 아주 단순한 결과가 나온다(참고로 부동산 전문가가 아니니 수치의 정확성이나 판단자료가 없어 그저 단순 계산을 한 것뿐이다. 자료를 찾을 길이 없고 통계자료를 확인할 수 없으니 더 정확한 자료가 있다면 차이가 있음을 먼저 밝힌다)


소득을 모두 모았을 때라는 조건 자체를 그대로 적용해 9년이다. 생계유지 비용을 빼고 모은다면 현재에는 두배에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다. 만약 소득을 모두 모아 아파트를 구입하는 기간의 18년이라면 생계유지 비용을 제외하고 돈을 모은다면 살아생전 아파트 구매는 불가능하거나 죽기 직전 구매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된다. 물론 이런 이야기에는 반드시 도시에 안사고 지방에 사면되지 않느냐, 싼 집을 사면 되지 않느냐, 분양을 받으면 되지 않느냐, 대출을 받아서 평생 갚는 것이니 이 말은 억측이다 등등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나는 부동산 전문가가 아니고 나와 있는 수치를 가지고 단순 비교해 이야기하는 것뿐이고 이 글의 목적은 집을 몇 년에 걸쳐 살 수 있느냐를 분석하기 위함도 아니다.


저 전시를 보았을 때도 그랬지만 지금에 드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집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가 무엇일까다. 집에 대한 간절함은 모두 같다. 저마다 사연은 달라도 우리 모두는 집이 간절하다.


우리의 부모, 부모의 부모 세대 어쩌면 그 이전부터 우리에게 집은 단순히 건물이 아니었을 거다.

내 몸하나 누일 수 있는 곳, 내 가족들이 안전하게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곳, 지친 삶을 녹이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끌어 모을 수 있는 곳, 그것이 우리에게 집이었을 거다. 좁은 땅에 많은 사람들이 집을 가질 수 있는 최적의 모델로 탄생한 아파트는 집이 안식처란 가치를 넘어, 평생 노동을 팔아 가질 수 없는 부를 만들어 주는 부동산이 되었다.


상위 10%가 부동산 97.6%를 소유한 나라

하위 50%가 부동산 2%를 소유한 나라,


2022년 다시, 집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추억을 소환하는 전시 앞에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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