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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Jul 15. 2022

에세이-거기 사람 있어요?

일상이 된 사회적 거리두기



동네 작은 카페에 들어섰다. 




스타 OO도 아니고 O디아도 아니고 그냥 동네 상가 모퉁이에 위치한 작은 카페였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손님이 없어서인지 카페 주인으로 보이는 선한 얼굴의 아저씨가 카페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별다른 인사는 없었지만 손님이 들어왔으니 카운터로 가실 줄 알았다. 이제 아이스 라테 한 잔과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키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도통 아저씨가 카운터로 가실 생각을 안 하신다.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아저씨는 나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 순간 아저씨를 보느라 내 눈앞에 카페만큼이나 아담한 키오스크가 놓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밖으로 열린 카페 문을 들어서면 두세 발자국 앞에 놓인 이 새로운 신문물을 어처구니없게도 보지 못한 거였다. 아저씨는 내가 키오스크로 주문하기를 기다리고 계셨던 거다. 우리는 별다른 대화 없이 커피를 주고받았다. "안녕하세요?' "커피 나왔습니다." 같은 주문형 매뉴얼 대화도 우리에게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커피를 받아 들고 인사도 잊은 채 카페를 나왔다. 마치 가상현실 공간에서 말과 소리가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느낌이랄까?










이제 토스트 가게만 들르면 아침 외출 목적은 마무리된다


노란색으로 칠해진 토스트 가게는 멀리서도 한눈에 띄었다. 언제 이런 브랜드가 생겼는지 의아했다. 그러고 보면 상가에 있는 가게들의 이름이 무척 낯설다. 토스트 가게는 외형만큼이나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앉을 의자가 별로 없는 것을 보면 이곳은 요즘 흔한 '테이크 아웃' 토스트 가게인가 보다.(가끔 이 영어로 된 것들을 우리말로 바꿔보려 애쓰지만 별 소득은 없다. '가져가는 빵 가게' 정도?) 이곳 역시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가게에 사람이 없다. 심지어 가게 주인도 보이지 않는다. 카운터 너머 주방 쪽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으로 보아 아예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카운터 위에 그려진 토스트 메뉴 몇 가지가 비현실적으로 풍성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 가게를 처음 들른 탓에 추천이라 찍힌 토스트 메뉴를 열심히 훑어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가게 여기저기를 살펴보다 아까 카페에서 본 것과 비슷한, 노란색 키오스크를 발견했다. 그것도 들어오는 문 바로 오른쪽 옆에 제법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투명한 가게 문을 열고 오른쪽을 보지 못한 나는 비어 있는 카운터를 하염없이 보고 서있었던 거다. 그제야 키오스크에서 토스트를 주문했다. 사실 주문이라기보다 익숙한 이름의 토스트를 선택한 것뿐이다. 다른 메뉴들은 생소했고  어떤 맛인지 예상할 수 없는 것들이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추가 메뉴가 있기는 했으나 그것 역시 무엇이 어울리는 조합인지 알 수 없어서 넘어갔다. 





아침의 작은 해프닝은 그렇게 끝이 났다



토스트 가게 역시 별다른 대화는 없었다. 다행히 토스트 가게 아저씨는 "토스트 나왔습니다"를 씩씩한 목소리로 외치셔서 잊지 않고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원래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 사람의 얼굴, 목소리 등을 기억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꼭 다음에 다시 들리게 된다. 나의 경우는 그렇다. 카페의 커피 맛보다 카페의 주인 때문에 단골이 되는 경우가 많다. 어쨌거나 나는 두 곳을 가게를 들렀지만 어느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불필요하게 접촉을 할 필요도 없었다. 코로나 팬데믹 2년 동안 단련된 일이지만 여전히 '사람 없음'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니, 사람은 있으나 '대화하지 않음'에 익숙하지 않다. 



스타 OO 매장에서 커피 종류와 사이즈를 바로바로 답하지 못해 답답해하는 직원의 얼굴을 보는 일도 썩 편한 일은 아니다. 이름도 구분 안 가는 메뉴판-무엇보다 노안으로 잘 보이지도 않는-앞에서 우물쭈물하는 것보다 키오스크란 녀석이 편할 때가 있다. 하지만 카오스크도 그렇게 만만한 녀석은 아니다. 익숙한 곳이 아니면 메뉴를 식별하지 못해 고생을 하게 된다. 얼음을 약간 넣어야 하는지, 많이 넣어야 하는지를 구분해야 하고 소스를 추가해야 하는지, 아닌지를 선택해야 한다. 하나를 고르고 다른 메뉴를 추가할 때 어떤 녀석은 추가 버튼이 눈에 띄는데 어떤 녀석은 구석에 숨어 있기도 한다. 포인트 카드 적립을 전화번호로 해도 되는 녀석이 있고, 폰으로 인식시켜야 되는 녀석이 있다. 그런 경우, 폰을 뒤지고 뒤져 겨우 찾으면 뒤로 늘어선 사람들이 시선이 융단폭격이 되어 내 등 뒤에 꽂힘을 느낄 때도 있다.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무인 지하철 유기농 채소 가게, 무인점포, 무인 편의점, 무인 옷 가게. 세상은 '무인', 사람이 없는 공간에서 편안함과 안전함을 느끼고 있다. 가로등도 졸고 있는 골목길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공포심을 가졌던 1990년대 이후, 사람이 공포의 대상이 되는 시대를 다시 살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여 '인수 공통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겨지며 벌어진 '바이러스 공격'이 새로운 기술 혁명과 톱니바퀴 맞물리듯 맞아떨어지면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 변하는 속도가 나 같은 내향인에겐 현기증 나는 일이다. 



강의를 듣고, 공부를 하고, 책을 읽으며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 가랑이 찢어지는 심정이 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세상이 바뀌는 길에 떠밀려서라도 서있으면  안전할 거라는 믿음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앞으로 가라고 하는 손가락 끝보다 내 시선은 자꾸 다른 곳을 향한다. 탄소중립을 2050년이 아니라 2030년 정도로 앞당기면 더 이상 마스크로 호흡기를 가리고 살지 않아도, 사람보다 키오스크를 대면하고 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가상현실 세상은 그저 새로운 놀이터로 즐기며 살면 되지 않을까? 수없이 많은 활자를 통해, 말을 통해 전해 듣는 그 새로운 세상이 무섭거나 두려워서가 아니다. 문제의 원인을 앞에 두고 애써 다른 곳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기분이어서 그렇다. 키오스크 따위가 두려워서가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게 아닌데?" 하며 지적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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