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방송국 선배였고 내 인생 방향을 180도 정도 바꾼 사람. 뜬금없이 운동권 방송을 만든다며 몇몇 후배들을 데리고 나갔더랬다. 그곳에 내가 있었다. 사회에 대한 신념도 의지도 부족했던 내가 어떤 과정으로 그 선배와 함께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아쉽지만 이십년도 더 지난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기억하기 싫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커피가게에서 책을 읽지도 못하고 한참을 바라 본 선배의 이름.
추억이기도 했고 원망이기도 했고 고마움이기도 했다. 다시 만난다 해도 주고받을 이야기 한 줌도 남지 않은 과거의 사람이다.만나면 묻고 싶은 것이 태산같았는데 선배 이름을 본 순간 이제 과거를 과거로 놓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항상 모든 것은 내 선택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후회도 미련도 없이 열심으로 살았다는 것을. 뭐 그런 대단치도 않은 결말을 내고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