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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Jun 23. 2023

세상은 나를 뺀 여집합 같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산다는 것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것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일 겁니다.

혹자는 좋아하는 일도 업이 되면 괴롭다고 합니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게 업이 되면 힘들 것 같기도 합니다.

노래가 돈을 벌어주어야 하니까요. 모두가 노래로 먹고살기에 충분한 돈을 벌지는 못할 테니까요.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게 업이 되면 그렇게 좋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남보다 뛰어나야 운동으로 성공할 테니까요. 

그렇게 보면 좋아하는 일이 업이 되어 사는 것도 항상 행복한 일은 못 되는 것 같습니다.





일은 네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합니다.

좋아하지 않으나 잘하는 것, 좋아하면서 잘하는 것,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못하는 것, 좋아하나 잘 못하는 것.

가장 바람직하고 누구나 원하는 것은 좋아하면서 잘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겠죠. 이 조합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업일치를 이루는 삶을 사는 사람들



저를 예로 든다면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아주 잘하지는 않습니다. 공연 리뷰도 10년간 써오고 있고 운 좋게 어찌어찌 책도 냈지만 성공까지는 아니어도 명함을 내밀기에는 부족한 변방의 작가인 셈입니다. 글을 쓰는 데 있어서 잘한다는 것이 기준이 모호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제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준다면 그게 잘한다는 지표가 되지 않을까요? 그 점에서 본다면 저는 글 쓰는 일을 좋아하지만 잘하지는 못합니다. 좀 더 솔직하게 글을 써서 먹고사는 일은 현재 불가능하다는 뜻이죠. 



좋아하면서 잘하는 것은 인형을 만든다거나 옷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당장 돈을 벌 수 없는 일이고 취미로 하면 좋을 만큼의 관심사여서 고민의 대상이 되지는 않습니다.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못하는 것은 음식을 만드는 일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는 무척 난감한 일이기는 하지만 음식을 하는 것이 꼭 엄마의 역할은 아니니까요. 세상은 신기하게도 살아가는 방법이 생겨서 여자와 남자 둘 중 하나는 음식을 잘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 요즘은 워낙 다양한 밀키트 제품들이 있어서 음식 만들기를 못한다고 해서 먹는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좋아하지 않으나 잘하는 것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입니다. 이 부분은 개인의 능력 안에서 상대적인 것이라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잘한다고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가진 여러 가지 능력 중에서 그나마 오랜 시간 생계를 책임져준 일이니 잘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일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누군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과 개인적으로 느끼는 사교육의 폐해가 늘 마음을 무겁게 했기 때문입니다.





절박한 마음으로 종이에 이 네 가지를 적어가며 내가 원하는 삶을 고민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머릿속에서 부유하던 생각들을 적고 나니 둥둥 떠다니던 고민들이 정리가 되더군요.  제 결정은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을 같이 하자는 거였습니다. 먹고사는 일은 꿈보다 현실적이고 중요한 문제라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두 번도 못 사는 인생에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는 것도 싫었습니다. 물론 이 두 가지가 일치한다면 고민할 일이 없겠지만 누구나 다 그렇지는 못합니다. 저는 두 가지 일을 함께 하며 제 시간을 쪼개기로 했습니다. 몸도 고달프고 주말에도 쉬거나 하지는 못하지만 그 정도 각오도 안 하면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니까요. 



좋아하는 일을 해도 마냥 행복하지도, 365일이 꿀맛 같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넘어져도 울지 않고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릎에 상처야 남겠지만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 마음에 상처가 남아도 웃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밤마다 상처가 덧나 고통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세상은 항상 여집합 같습니다. 

나를 뺀 나머지는 모두 잘 살고 있을 것 같은 여집합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무인도 같습니다.

나는 존재도 희미한 하늘에 뜬 별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무인도에서는 나만 보이지만 하늘에서 보면 나와 같은 무인도가 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름 없는 별에서는 아무리 용을 써도 내 빛을 볼 수 없지만 지구인이 보는 하늘에 별무리 속에는

나도 빛을 내고 있습니다.

나를 뺀 나머지도 모두 각자의 여집합을 마음에 품고 살고 있는 것은 우리가 자주 잊고 사는 건지도 모릅니다.

정말 사람 사는 일이 뭐 하나 쉬운 것도 없지만 뭐 하나 다를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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