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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May 04. 2023

옷장의 미니멀리즘

옷장을 비우고 마음을 채우기







옷을 팔기로 했다. 


옷을 사기로 한 것이 아니라 내 옷을 팔기로 했다.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다는 당*마켓에 옷을 내놓기로 했다. 판매할 옷은 원피스와 가죽 재킷이다. 원피스는 백화점 아웃렛에서 세일을 할 때 샀다. 한동안 원피스에 꽂혀 있었던 때가 있었다. 온라인 쇼핑을 할 때마다 원피스란 키워드로 검색을 하는 것이 하루 일과 중 하나였다. 길을 가다가도 원피스가 눈에 보이면 멈춰 서서 구경을 하는가 하면 원피스를 사기 위해 쇼핑몰을 하루종일 뒤지기도 했다. 어떤 원피스를 사겠다는 목표는 없었고 그냥 원피스를 사는 것이 목표였다. 원피스에 대한 나의 관심은 통바지에서 스키니 바지로 옮겨가는 유행과 같은 그런 것이었다.




가죽 재킷에 얽힌 사연은 더 기막히다. 


바야흐로 가죽 재킷이 유행이었던 때였다. 홈쇼핑에서는 온갖 종류의 가죽재킷 물결이었다. 흔한 검은색에서부터 초록색 가죽 재킷까지 가죽 재킷의 고정관념이 깨지던 때였다. 길이는 긴 버버리 스타일에서 짧은, 아주 짧은 재킷까지, 홈쇼핑 채널마다 가죽 재킷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몇 번을 고민하고 온라인 쇼핑몰을 뒤지다 마음에 드는 가죽 재킷을 찾았다. 홈쇼핑에서 판패하던 그 재킷은 몸에 붙는 모양이었고 길이도 짧았다. 가죽 재켓을 입어본 적은 없었지만 원피스에 툭 걸친 모양새가 꽤 멋스러보였다. 그렇게 생애 첫 가죽재킷이 내게로 왔다. 










그렇게 나에게 온 원피스와 가죽재킷은 라벨도 떼지 않은 상태로 옷장에 남겨졌다. 


'이번 봄에는 입어야지', '이번 가을에는 꼭 원피스 위에 저 가죽 재킷을 입어야겠다'라고 다짐을 하지만 번번이 입지 않고 계절이 지나갔다. 그렇게 원피스와 가죽재킷은 이삼 년 동안 옷장 속에 쥐 죽은 듯 숨어 있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라벨조차 떼지 못한 옷은 원피스와 가죽 재킷만은 아니었다. 옷과 옷 사이에 끼어 존재조차 잊고 있었던 진한 갈색 여름 니트가 있었고, 홈쇼핑에서 5벌을 세트로 구매한 겨울 니트는 검은색 니트 한 벌을 제외하고 나머지 네 벌은 라벨이 주렁주렁 달린 채 서랍장 속에 박혀 있었다. 라벨은 겨우 뗐지만 한 두 번 입고 외면당했던 옷들은 훨씬 더 많았다. 



이것들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이사를 앞두고였다. 


이사 갈 집은 별다른 수납장이 없었다. 갖고 있는 옷장을 제외하면 붙박이장이나 살고 있는 집처럼 팬트리 같은 것이 없는 곳이었다.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게 수납장과 팬트리 안에 들어 있던 옷들을 보관할 곳이 없어진 것이다. 방법은 버리거나 나눔을 하거나 운이 좋다면 팔아야 했다. 꼭꼭 넣어 두었던 옷들을 꺼냈다. 넓지도 않아 보였던 팬트리 안에서 쏟아져 나온 옷들을 보고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옷은 버려도 버려도 버릴 옷들이 나왔다. 


4년을 꺼내 보지도 않았던 옷들은 입기에도 나눔 하기에도 팔기에도 어려워 보였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같은 종류의 옷들이 수십 가지였다는 거다. 모양과 소재의 차이가 별로 없는 흰색 니트가 십여 개가 나왔다. 청바지는 충격적이었다. 드레스룸에 걸어 놓았다면 여느 연예인 못지않았을 청바지 가짓수가 수납장과 팬트리에서 쏟아져 나왔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옷들은 아마도 사서 한 두 번 입었거나 라벨만 떼고 입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나는 이 옷들을 왜 산 걸까?









이사를 하고 옷장의 옷은 절반이 사라졌다. 


그래도 여전히 옷장은 옷으로 가득하다. '혹시'하는 마음에 남겨 두었던 원피스와 가죽 재킷을 드디어 당*마켓에 올렸다. 라벨도 떼지 않았음을 강조하기 위해 라벨이 달린 부분을 찍어서 올렸다. 옷은 금방 팔렸다. 한 번도 입지 않았다는 것이 크게 어필을 한 것 같았다. 




옷장을 채우고 있는 옷을 다시 절반으로 줄이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버린 옷들에 대한 죄책감도 컸지만 쌓아 두고 입지 않는 것 또한 죄책감이 들어서다. 비워내는 내내 나 스스로에게 느꼈던 실망감은 말할 수 없다. 옷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마음의 허기를 옷으로 욱여넣어 채우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이제는 옷을 사는 것이 조금씩 두렵다. 다시 옷장이 채워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다. 옷으로 옷장은 채울 수 있어도 마음의 허기는 채울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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