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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Jun 25. 2024

'언더스터디'를 아십니까?


 
 


'언더스터디'는 배우가 갑자기 대체되어야 할 경우에 대비하여
같은 배역을 연습하여 대기하는 사람을 말한다. 



'언더스터디'는 배우가 갑자기 대체되어야 할 경우에 대비하여 같은 배역을 연습하여 대기하는 사람을 말한다. 우리 말로는 '대기 배우'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대극장 공연이나 라이선스 공연에서는 주연배우를 대신할 대기 배우를 정해 놓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실제 대기 배우가 주연 대신 무대에 서게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요즘은 연극이나 뮤지컬에서 더블 캐스팅을 넘어 트리플 캐스팅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이런 언더스터디의 존재가 연극이 된 작품도 있다. 연극 <언더스터디>는 잘 나가는 스타가 된 주인공과 그 주인공의 언더를 맡게 된 무명의 연극배우가 연습 내내 사사건건 부딪치며 갈등을 일으키는 이야기다. 사실 일반 관객들도 대기 배우를 잘 모른다. 안다 해도 관심을 갖지는 않는다. 대기 배우 자신도 무대에 설 수 있는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들은 주연배우들과 똑같이 공연 준비를 해야 한다. 



대기 배우였다가 주연 배우 대신 무대에 선 것을 계기로 얼굴을 알리게 된, 지금은 유명해진 배우들의 성공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역시 준비된 자가 기회를 잡는다'라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언더스터디에게 그런 기회가 갈 확률은 희박하다. 만약 기회가 와서 대신 무대에 섰지만 그것으로 끝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준비가 부족해서 그 천금 같은 기회를 날려버린 걸까? 그렇지 않다.



10년의 시간 동안 성실하게 글을 쓰고 있지만 나는 늘 '언더스터디'의 자리에 있다. 



나는 스물네 살에 들어간 잡지사에서는 기자로서 능력이 부족하니 일찌감치 다른 일을 알아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이십 년을 넘게 글 쓰는 일은 쳐다보지도 않고 살다가 3년 동안 공연 리뷰를 sns에 올린 것이 계기가 돼서 공연전문 객원기자가 됐다. 마흔다섯의 나이에는 출판의 기회도 얻었다. 10년의 시간 동안 성실하게 글을 쓰고 있지만 주연의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 나는 지금까지 '언더스터디'의 자리에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람일까? 우리는 누군가의 성공에는 쉽게 손뼉 치고 과도할 정도의 칭찬과 부러움을 쏟아낸다. 하지만 도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거나 경쟁에서 1등을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냉혹할 정도로 촘촘한 잣대를 들이댄다. 반대로 성공했다고 해서 방심할 수도 없다. 오늘의 1등이 내일의 1등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연극 속 쇼비즈니스의 세상은 경쟁으로 가득한 현실 세상과 아주 흡사하다. 



우리는 모두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아주 독보적인 존재가 되고 싶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팔릴만한 사람이 되거나 팔릴 무언가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아주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자격증을 따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이력서를 썼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고 실패는 포기하는 순간 찾아온다고 믿었다. 연극은 모두가 언더스터디가 될 수 있다는 불안 속에서 살아간다는 작은 위로를 주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준비된 자가 기회를 잡는다지만 기회가 아예 오지 않는다거나 기회가 와도 잡지 못할 수 있다. 그렇게 다시 ‘언더스터디’가 되곤 한다. 그래서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 되기로 했다. 주연이 되기 위해 버둥거리느라 힘겨웠던 팔과 다리를 내려놓으며 언더스터디가 필요 없는 조연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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