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침대에서 다른 꿈을 꾸는 연극 속 부부이야기
"'혹시 남편분 연봉이 얼마인지 아세요?"
전 남편과 이혼 서류를 내고 2주 숙려기간 중, 남편과 20년을 알고 지냈다는 여자의 뜬금없는 셀프고백을 문자로 받았다. 외도로 소송을 해볼까 잠시 잠깐 고민하다 지인의 소개로 변호사와 통화를 했다. 정말 별 것도 아닌 질문인데 놀랍게도 나는 그 사람의 연봉을 몰랐다. 월급명세를 보여준 적이 없고 보여달라고 해도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아이 키우고 일하느라 까맣게 잊고 살았던 이유도 있었다.
"그 여자분 만나는 거 전혀 모르셨어요?"
역시 대답은 같았다. 몰랐다.
"그럼 남편분 앞으로 땅이나 다른 재산 있는지 아세요?"
나는 그 변호사의 질문에 같은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으시네요."
우리는 서로에게 모든 것을 공유하고 살고 있을까?
우리는 정말 서로를 다 알고 있을까?
이십 년을 살았고 연애까지 합치면 이십사 년을 만났지만 정작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몰라서 헤어질 운명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른 부부들은 어떨까. <나도 처음이야 중년>을 쓰면서 중년 남녀 60여 명을 만나 인터뷰를 했었다. 이십 년을 살았어도 정작 이름과 나이 외엔 아는 것이 없었던 나와 달리 그들은 상대 배우자를 잘 알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도 대부분 자신만의 비밀 하나씩을 가지고 있었다. 사랑하는 연인이라면, 한 이불에서 365일을 동고동락하는 부부라면 우리는 서로에게 모든 것을 공유하고 살고 있을까? 부모 자식 간, 형제자매 간은 어떨까? 한 부모의 뱃속에서 나온 한 핏줄인 우리는 정말 서로를 다 알고 있을까?
그래서인지 이 부부 네 쌍의 위험천만한 게임을 지켜보는 것은 무척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네 쌍의 부부가 식사하는 동안 핸드폰을 식탁에 올려놓는다. 누구 건 연락이 오면 모두에게 공개하기로 한다. 연극'완벽한 타인'(2021.05.18. (화)~2021.08.01. (일) 세종문화회관) 은 보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살인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귀신이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핸드폰 벨소리가 날 때마다 우리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를 알게 된다.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되고 겉과 다른 아내의 마음을 알게 된다. 또 이십 년 넘게 모르고 있었던 친구의 성 정체성을 알게 되고 아내의 은밀한 대화를 엿듣게 된다. 이야기는 우리가 예상하는 그대로 현실이 되고 즐거운 저녁식사 시간은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시간이 되고 만다. 관객 역시 가위에 눌린 듯 눈앞에 장면만 응시하게 된다.
또 다른 부부들의 저녁 파티 현장으로 가보자. 연극 '진실 거짓'(2018년, 원작 플로리앙 젤레 르, 안경모 연출)의 무대로 가보자. 프랑스 작품 특유의 위트 넘치는 대사와 세련된 스토리를 갖고 있는 이 작품은 <진실>과 <거짓> 두 개의 공연으로 이루어진 연작 형식으로 되어 있다. 서로의 배우자에게 거짓말을 하고 밀월여행을 떠나는 알리스와 미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무대는 다시 알리스와 폴, 로렌스와 미셸 부부의 저녁 파티 직전으로 간다.
알리스는 다른 여자와 키스하는 미셸을 목격하고 그의 아내 로렌스에게 이 사실을 말해주려 한다. 하지만 남편 폴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이 우정 어린 호의'라고 말하며 파티 내내 아내 알리스가 이 사실을 말할까 봐 노심초사한다. 배종옥, 김정난, 김진근, 이형철 등 우리에게 익숙한 배우들이 대거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결혼생활에서 진실과 거짓이 어떤 무게로 공존하는가란 묵직한 주제를 던져줬다.
무엇보다 결혼생활에서 진실과 거짓이
어떤 무게로 공존하는가란 묵직한 주제를 던져준다
좀 더 코믹하고 속 시원한 부부들의 이야기도 있다. 장진 감독의 연극 '꽃의 비밀'(2019년, 장진 연출)이다. '골 때리는 아줌마들의 통쾌한 대 반란'이란 타이틀이 말해주듯 결혼한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태리 북서부 '빌 라페로 사'라는 시골마을, 축구에 환장하는 남편들은 모두 축구를 보러 나갔고 남은 네 명의 여자들을 자신들만의 송년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자들은 남편들이 탄 차가 눈길에 미끄러져 절벽으로 떨어졌다는 사고 소식을 접하게 된다. 문제는 다음날이 남편들의 보험 최종 승인을 위해 보험회사에서 건강검진을 하러 오는 날이라는 것이다.
그게 왜 문제일까? 사고가 났다는데 말이다. 여자들은 폭설로 사고 현장 접근조차 안 되는 상황에서 남편들이 보험도 없이 죽는다면 자신들이 살아갈 험난한 현실이 떠오른 것이다. 일단 이 건강검진만 무사히 끝내고 계약서에 도장만 찍는다면 보험금이 나온다. 네 여자들의 삶에 한줄기 빛이 생기는 셈이다. 이제 여자들은 각자의 남편으로 변장을 하게 된다. 네 여자들의 아슬아슬한 반란이 과연 성공으로 끝날 수 있을까?
우리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결말은 보험금 수령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보험금을 받지 못하게 되었어도 너무 속상해하지 않아도 된다. 이 이야기는 한참 배꼽을 잡고 웃고 난 뒤 돌아가는 길에서 불현듯 이것을 깨닫게 해 준다. 부부는 생활이라는 이면의 꼬리표를 달고 사는 공동체적 협업관계임을, 부단한 노력과 상대를 위한 배려가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그 관계는 종이보다 더 얄팍한 사이가 될 수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