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말리는 그녀들

웃음을 무기로 우리를 치유하는 연극 이야기

by 이숙정



늘 대단한 의도를 갖고 살지 않는다. 공연도 마찬가지다.
배꼽 빠지게 웃고 싶은 날은 웃기는 이야기면 그만이다.



살다 보면 아침 막장 드라마가 현재 내 삶을 대변하는 것 같아 씻지도 못하고 텔레비전 앞에서 아침 시간을 지새우기도 하고, 웹툰을 뚫고 나온 것 같은 남자 배우에게 푹 빠져서 그와 짝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어떤 날은 예능프로그램에 꽂혀서 역주행으로 시청을 완료하기도 하는 것이 사람 사는 모습이다. 정말 배꼽 빠지게 웃고 싶은 날이 있이나 우울이 양 어깨에 1톤씩 내려앉는 날에도 이상하게 재미있는 공연이 당긴다. 연극 <미스 프랑스>는 정말이지 그런 날 딱인 연극이다.


연극의 장점이자 단점이 내가 보고 싶을 때 마음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언젠가 다시 무대에 오른다면 꼭 다시 보고 싶은 연극이기도 하다. 연극 속에는 똑같이 생긴 세 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미스 프랑스를 선발하는 그룹의 조직위원장 플레르와 '누구나 다 아는 호텔'에서 일을 하는 여종업원 마르틴, 클럽 댄서이자 플레르의 쌍둥이 여동생 사만다. 이 세 여자는 한 명의 배우가 세 가지 극과 극 캐릭터 변신을 한다.


100분의 공연시간 동안 플레르와 마르틴, 사만다를 오고 가며 각 캐릭터를 소화하는 한 여배우의 변신이 큰 재미를 주는데 당시 운 좋게도 배우 김성령의 무대를 보게 되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여배우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공연이었고 막을 내리고 느꼈던 카타르시스는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잊히지 않는다.




20211018_004446 (1).jpg



여성의 성적 욕구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낯선 우리 마음속 경계선을 허물어 준다



아주 많이 도전적이고 화끈한 여자들의 무대였던 뮤지컬 <쿠거>는 또 다른 의미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쿠거는 동물 쿠거(고양잇과의 동물, 퓨마)의 습성을 빗대서 밤늦게까지 자신을 만족시켜 줄 파트너를 찾아다니는 나이 든 여성들을 칭하는 미국 속어다. 요즘에 와서는 연하남을 선호하는 경제력과 자신감을 갖춘 미혼 여성, 혹은 연하남과 교제하거나 결혼하는 여성들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한때 '쿠거족'이란 말이 우리 사회에서도 유행어 대열에 끼면서 변화한 사회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뮤지컬 <쿠거>가 2015년 아시아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초연되었을 때, 공연계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박해미, 김선경, 최혁주, 김혜연, 김희원이 캐스팅되어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이혼 후 새 삶을 시작하기를 원하는 여자 '릴리'와 인생을 즐기고 싶은 욕망을 숨기고 살아가는 여자 '클래리티'는 우연히 쿠거 바를 찾게 된다. 이곳에서 이 둘은 완벽한 쿠거의 삶을 살고 있는 '메리-마리'를 만나게 된다. 세 여자는 젊은 남자들과 연애와 사랑을 하게 되고 이것을 계기로 세 여자는 자신만의 인생을 찾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여성의 성적 욕구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낯선 우리 마음속 경계선을 허물어 준다. 세 여자는 개인의 행복이나 성적 만족 모두 스스로 만들어 가는 거침없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세 주인공은 나이를 먹는 것에 주눅 들지 않고 사랑은 절대 나이와 함께 시들지 않는다는 쉽게 꺼내 놓지 못했던 감정들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표현한다. 보기만 해도 당당해 보이는 여배우들의 연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관객들은 보는 내내 속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sticker sticker



이 이야기들이 애써 힐링을 말하지 않아도,
위로의 말을 전하지 않아도 충분히 위로되고 힐링되는 이유이다



속 시원함으로 말하면 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연극 <대학살의 신>은 '매너 있는 두 부부의 매너 없는 썰전'이라는 홍보 문구처럼 말로 여러 사람 숨 넘어가게 할 아주 고품격 코미디 연극이다. 이 이야기에는 정말 매너 있고 품격 넘치는 두 부부가 등장한다. 두 부부는 자신들의 두 아들 때문에 불편한 자리를 함께 하게 된다. 11살 소년 브뤼노가 친구 페르낭 디에게 맞아 이빨 두 개가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브뤼노의 부모 미셀과 베로니끄는 페르낭 디의 부모 알랭과 아네뜨를 집으로 초대한다. 아주 매너 있게 아이들의 행동에 대해 의논하려는 것이었다. 프랑스 부모와 한국 부모가 크게 다르지 않은 점은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된다는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건 부모들의 세상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 싸움이 어떻게 끝을 맺을 것인가다.


매너와 교양 가득한 이야기로 시작한 두 부부는 시간이 지나고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유치하기 짝이 없는 말싸움에 열을 올린다. 자신들은 교양 있는 상식적인 사람이라고 주장하지만 삿대질에 물건 던지기와 욕하기를 넘어 육탄전을 마다하지 않는다. 위선과 가식에 절어 있던 두 부부의 민낯이 밝혀지자 관객들은 웃음을 멈추지 못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 관객을 배꼽 빠지게 만든 것은 남자들에게 향하는 여자들의 일격이다.


베로니끄는 중립을 지킨다며 자신의 감정에 공감해 주지 않는 마마보이 남편을 향해, 아네뜨는 바쁘다는 핑계로 늘 가족들에게 형식적인 남편 알렝에게 회심의 한 방을 날린다. 이 부부들의 요절복통 대환장 코미디는 어느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우리 마음속 민낯을 보여준다. 비록 박수를 치며 웃을 때는 '나는 아니야'라고 부정하겠지만 말이다.


살면서 모든 것에 대단한 의미를 찾으려 할 필요는 없다. 연극은 인간의 삶을 배우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우리가 늘 심각하게 살 수 없고 매 순간 자신을 성찰하며 살 수는 더더욱 없다. 미친 듯이 웃거나 속시원히 울고 나서 찾아오는 활력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이 이야기들이 애써 힐링을 말하지 않아도, 위로의 말을 전하지 않아도 충분히 위로되고 힐링되는 이유이다.




20211018_004540 (1).jpg
20211018_004514 (1).jpg












sticker sticker


이전 09화동상이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