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사랑을 담은 연극 이야기
유독 두 남녀가 눈에 들어온 건 손을 꼭 잡고 있어서였다.
손을 잡고 있는 것이 신기할 이유가 없는데도 말이다.
지하철은 지구 상에 존재하는 작은 우주 같다. 각양각색 사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한 번에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 중 이유불문, 사연 불문하고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사람들은 연인들이다. 더운 여름 날씨도 아랑곳 않고 손을 꼭 잡고 있는 모습은 동화 속 해님도 바람도 어쩌지 못할 것 같다.
그날도 지하철 문이 열리고 한 쌍의 남녀가 손을 꼭 잡은 채 열차 안으로 들어왔다. 자리에 앉아서도 두 남녀는 손을 놓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그렇게 대놓고 쳐다보면 상대방이 불쾌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다. 두 남녀는 내릴 때가 되서인지 서로를 부축하며 일어섰다. 다음 정차역에 내리는 두 남녀가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보고 있었다.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있었던 두 사람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셨다. 혹시 한 분의 몸이 불편한 것은 아닐까 싶어 걸어가는 모습까지 유심히 봤지만 아니었다. 그걸 확인하겠다고 쳐다보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참 짧은 소견머리다. 나이 드신 분들이 손을 잡으면 누가 아플 거라는 생각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그날 이후로 지하철에서나 거리에서나 손을 잡고 가는 노인분들을 발견할 때면 젊은 연인들과 또 다른 풋풋함이 느껴져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는 나이 많은 여자와 젊은 남자의
사랑이야기여서가 아니라 사랑의 본질을 되묻고 있기 때문이다
1987년부터 2021년까지 오랜 시간 사랑을 받아 온 연극 <해롤드와 모드>는 80세 모드와 19세 헤롤드의 사랑이야기다. 매일같이 죽음을 상상하고 실천하는 19세 해롤드는 하루하루 삶의 기적들을 만들어가는 80세 모드를 만나게 된다. 죽음의 순간까지 삶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해롤드를 모험의 세계로 이끄는 모드는 너무나 사랑스럽다. 그런 모드를 해롤드가 사랑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이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는 나이 많은 여자와 젊은 남자의 사랑이야기여서는 아니다. 우리가 공감하게 되는 접점은 이 이야기가 사랑의 본질을 되묻고 있기 때문이다.
강풀의 웹툰이 원작인 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언제 보아도 아름답고 오래 볼수록 더 사랑스럽다. 진정성 있게 사람 이야기를 풀어가는 강풀 작품의 힘이기도 하겠지만 무대로 옮겨진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좀 더 힘 있는 리얼리티를 장착하고 있었다. 우유 배달하는 김만석과 파지 줍는 송 이쁜, 주자 관리원으로 일하는 장군봉과 그의 아내 조순의 사랑이야기는 명품 노배우들의 연기와 만나 관객을 감동시켰다. 송 이쁜 앞에서 김만석은 못하는 것이 없는 슈퍼맨이 되고 김만석 앞에서 송 이쁜은 얼굴 붉히며 마음을 숨기는 사랑스러운 여자가 된다. 노년의 로맨스가 달달해서 놀라운 것이 아니라 이토록 달달한 사랑을 잊고 살았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언제 보아도 아름답고 오래 볼수록 더 사랑스럽다
사랑에는 나이도, 국경도, 피부색도, 성별도 없다고 우리는 자주 말한다. 하지만 말과 의식은 늘 괴리가 있다. 두 노인이 내내 손을 놓지 않고 있는 모습에 의구심을 품었던 나를 보면 말이다. 사랑이란 감정은 나이와 함께 소멸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육십이 되어도 칠십이 되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다정하게 길을 걷는 것은 가능할까? 가능하다. 단지 하지 않을 뿐이다. 이런 쓸데없는 추측과 상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요즘은 손을 잡고 걸어가는 노인들을 만나는 일이 잦아졌다. 사랑한다면 그들처럼 할 일이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