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묻는 그대에게

생존의 일직선상에서 만나는 연극 이야기

by 이숙정



사는 것은 순간순간이 별일이다.
단 한순간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없다.




사는 것은 순간순간이 별일이다. 단 한순간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없다. 입으로야 별일 없다, 괜찮다, 잘 지낸다고 말을 하지만 사실 그런 사람은 없다. 느닷없이 전세금을 올려 달라는 통보를 받기도 하고, 연말도 아닌데 회사 인사이동 계획이 나돌기도 하고, 멀쩡히 잘 만나던 사람에게서 이별 통보를 받기도 한다.


하다못해 먹방을 찍어도 될 만큼 먹성 좋은 아이가 우유 한잔에 배탈이 나기도 하고, 학교 갔다 온 아이가 감기에 걸려 열이 오르기도 하고, 타야 할 버스나 지하철을 코 앞에서 놓쳐 약속시간에 늦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난 순간부터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지나가는 하루는 없다. 그러니 사는 것은 늘 별일이다. 그러니 그 별일을 헤치고 때론 이겨내며 하루하루 사는 우리는 대단한 슈퍼 울트라 캡짱들이다.


세상에 일어나는 별일들을 확인하기에 친구들만 한 정보통이 없다. 그 별일들을 대하는 친구들의 반응도 각양각색이어서 세상 모든 근심에 힘들어 죽을 것 같은 위기감을 호소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걱정이 무엇일까 싶을 만큼 삶이 편해 보이는 친구도 있다. 아주 극히 드물지만 자신이 겪고 있는 별일들을 제삼자의 시각에서 스펙터클 하게 전해주는 친구도 있다.


첫 번째는 내가 어찌해줄 수가 없어서 만나도 짠하고 헤어져도 안쓰럽고, 두 번째는 질투심과 부러움을 유발해서 나 자신을 기죽게 만든다. 가장 부담 없는 친구는 세 번째인데 한바탕 같이 웃고 나면 해결은 안 되지만 그래도 잘 살아보자는 그럭저럭 괜찮은 결말을 내고 헤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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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을 벗어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노인이 되겠다고 결심하는
미미의 선택은 비현실적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국립극단 연극 <광주리를 이고 나가시네요, 또>는 세 번째 친구 같은 유형이라 할 수 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 서보면 비극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 연극은 삶의 비극을 희극의 목소리로 담아내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게 만든다. 매 순간 인생 희비극의 갈림길에 있는 우리들에게 이 이야기는 비극의 순간도 살아나갈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준다.


이 이야기에는 삼대 가족이 등장한다. 1세대인 할머니는 억척스럽게 지난 시절을 살아온 이 집안의 어른이다. 2세대는 할머니의 아들과 며느리다. 이들은 대한민국 경제가 성장가도를 달리던 시절 쉼 없이 일하며 자식들을 가르치고 키워낸 세대다. 할머니의 아들은 퇴직 후 막장드라마에 빠져 무위도식한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대신해 하루하루 사는 것을 걱정하느라 정신없다. 마지막 세대는 이 집의 큰 딸 미미다. 미미는 대학을 졸업하고 10년 동안 취직도 못하고 집안에만 박혀 산다. 어릴 때 미미인형 머리 빗겨줄 때 빼고는 마음 편할 때가 단 한 번도 없다는 미미는 이 이야기의 관찰자이기도 하다.


이 집안은 정말 어디를 봐도 희망이 없어 보인다. 게다가 할머니는 고생해 마련한 집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아들에게 얹혀산다. 때마다 모이는 자식들은 그런 할머니를 서로 모시지 않겠다고 난리다.

"입을 숟가락처럼 쭈욱 내밀고 내가 넣어주는 거 넙죽넙죽 잘 받아먹던 녀석들이, 이제는 밥 먹다가 옷에 흘린 밥풀 떼어내지 못해 안달 난 것처럼 나를 떼어내 버리려고 하나. 더 살란다. 부지런히 더 살란다."

아이러니하게 이 집안에서 유일하게 경제활동을 하는 것은 할머니다. 할머니는 억척스럽게 집안에 있는 식료품들을 광주리와 유모차에 담아 동네 독거노인들에게 장사를 한다.


할머니는 자신의 생일상 앞에서 자식과 며느리가 서로 할머니를 모시지 않겠다고 난투극을 벌이는 꼴을 지켜보게 된다. 아들 내외 역시 불확실한 자신들의 노년이 겁나기만 하다. 히키코모리처럼 집안에서만 생활하는 젊은 미미 역시 이 상황을 벗어날 출구를 찾지 못한다. 이 상황을 벗어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노인이 되겠다고 결심하는 미미의 선택은 비현실적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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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변두리에 각기 다른 사연들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별별 이야기



삶의 희로애락이 모여있는 곳 하면 바로 이곳 '미용실'을 빼놓을 수 없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헤어숍이나 ##헤어살롱 말고 동네마다 꼭 하나씩 있는 미용실 말이다. 그 동네의 터줏대감이자 동네 소문의 중심지, 동네 아주머니들 중 핵인싸들이 모여드는 그런 미용실. 미용경력 20년의 베테랑 '성원장'이 운영하는 에덴 미용실이 바로 그런 핫플레이스인 셈이다. 인근에 알만한 가게 사장님들이 단골이고 이곳을 거쳐가지 않는 동네 이야기가 없다. 연극 <에덴 미용실>(2017, 추민주 작/연출)은 도심 변두리에 각기 다른 사연들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별별 이야기를 들려준다.


에덴 미용실에는 반장, 통닭, 만물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단골손님들이 있다. 이름보다 하는 일로 불리는 이들은 모두 아줌마들이다. 이들은 단순히 손님과 미용실 원장의 관계를 넘어선다. 이들은 롤러코스터 같은 자신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아주 솔직하고 화끈한 입담으로 들려준다. 그리고 단골 아줌마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성 원장의 아들 '이쁜이'가 있다. 이쁜이는 샴푸 솜씨로 미용실을 찾는 여자들의 마음을 녹여주는데 사실 이쁜이의 죽여주는 샴푸 실력은 성 원장의 애제자이자 미용실 보조 미용사 '경미' 덕분이다.


연극 <에덴 미용실>의 등장인물은 대부분 여자다. 성원장, 반장, 통닭, 만물 모두 남편이 있지만 남자들과 비교 불가한 생활력으로 자신들의 인생을 헤쳐온 전사들이다. 성 원장의 남편은 하는 일없이 빈둥대지만 미용실이 끝낼 때면 가게 셔터만큼은 확실하게 내려준다. 성 원장은 그런 새 남편의 존재만으로 위안 삼으며 생활을 책임진다, 하지만 애제자 경미에게 불미스러운 짓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미련 없이 남편을 쫓아내 버린다. 아들 이쁜이는 공부보다 미용일을 더 좋아한다. 예쁘게 치장하는 것을 좋아하고 여자보다 남자를 더 좋아한다. 성 원장도, 경미, 미용실 단골손님 3인방도 그런 이쁜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들은 날 쳐다보지도 않는데
나는 왜 그렇게 기죽어 살았는지 몰라."




에덴 미용실은 미용실 이름처럼 삶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낙원이 되었을까? 연극의 결말이 이야기의 결말은 아니니 우리가 그 끝을 알 길은 없다. 마치 우리 인생처럼. "공주와 왕자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란 동화의 결말을 믿기에 우리는 인생을 너무 잘 안다. 죽는 순간까지 아무 일도 어떤 고비도 없다면 그 무료함과 지루함에 사달이 날 확률이 높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들은 날 쳐다보지도 않는데 나는 왜 그렇게 기죽어 살았는지 몰라."

연극 <광주리를 이고 나가시네요, 또>에 등장하는 고시원 할아버지의 마지막 대사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회장님으로 잘 알려진 배우 오영수는 이 연극에서는 고시원 할아버지로 등장한다. 그는 짧은 장면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강한 한마디를 남긴다. 어찌 보면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우리들의 고민을 한방에 해결해주는 답이 아닐까 싶다.


정말 사는 것은 매일매일이 별일이다. 늘 왜 나만 재수 없는지, 왜 나만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지 자기 경멸에 빠져 살지만 잠시 고개 돌려 주변을 보면 알게 된다. 모두 다 똑같다는 것. 모두 다 그렇게 지지고 볶고 산다는 것. 그래서 또 내일을 살아갈 힘을 죽어라 내게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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