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연극 이야기
자신이 이 가정의 중심을 잡고 살아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이
엄마를 늘 긴장하며 살게 했다
국립극단의 <화전가>와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이 두 편의 연극은 서로 다른 시기와 다른 사회, 다른 역사 배경을 갖고 있지만 묘하게도 한 가지 면에서 일치한다. 모두 여성이 이끌어가는 가정의 이야기란 점이다.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는 2018년 국내 초연된 작품이고, 연극 <화전가>는 2020년 초연된 작품이었다. 서로 다른 시기에 본 두 작품은 늘 하나의 연장선에서 같은 무게감으로 남아있다.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나서 우리 집은 오래도록 여성으로 구성된 가정이었다. 남동생이 있기는 했지만 취직을 하고 회사일에 매여 지내다 보니 늘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것은 엄마, 언니, 나 그리고 나의 두 딸이었다. 여름휴가를 가도 남동생이 빠지기 일쑤여서 여자 다섯이 여행을 떠나곤 했다. 성인이 된 언니와 나야 상관없지만 어린 두 딸아이에게 편향된 성비가 어떤 영향이라도 미치지 않을까 걱정을 하던 때도 있었다.
혼자가 된 엄마는 당시 서른이 넘은 자식들을 데리고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크셨던 것 같다. 이미 자기 밥벌이는 자신들이 하는데도 말이다. 자신이 이 가정의 중심을 잡고 살아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이 엄마를 늘 긴장하며 살게 했다. 그 무거운 책임감을 혼자 아이들을 키우며 산 나 역시 갖고 있었다.
여행을 가서도 병아리들이 길을 다 건널 때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는 어미닭처럼 구경보다 아이들을 보는 시간이 더 많았다. 과장 조금 보태어 누군가 불시에 공격을 해 온다면 온몸으로 막아야 한다는 그런 얼토당토 하지 않는 상상을 하기도 했으니까. 엄마가 되면 없던 초능력도 나온다고 하지 않던다. 엄마가 된 나의 눈에도 엄마는 혼신의 힘을 다해 초능력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아버지 납골묘를 찾을 때면 온 식구들 이름 하나하나 호명을 하며 돌아가신 아버지께 당부를 하셨다. 막내는 좋은 베필을 만나게 해 주고, 둘째는 하는 일 잘 되게 해 주고 큰 손주는 공부 잘하게 해 주고 작은 손주는 건강하게 자라게 해 주고. 굴비 엮듯 이어지는 엄마의 주문에 나머지 식구들이 지쳐가도 감히 빨리 끝내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엄마는 나이 들어 더 이상 밥을 해 먹고 공부를 시키지 않아도 되는 자식들을 위해 그렇게라도 가장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제 식민지와 전쟁이란 우리 역사의 한가운데에서도
남자의 부재, 남편의 부재가
생존의 부재, 삶의 부재로 이어지지 않고 있었다
연극 <화전가>(국립극단 2020년, 배삼식작)의 김 씨도 안동 김 씨 집안의 가장이다. <화전가> 이야기는 1950년 4월, 김 씨의 환갑을 맞아 세 딸과 며느리들, 행랑 식구들이 모이며 시작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환갑잔치에 모인 식구들이 모두 여자다. 이 집안 남자들은 등장을 하지 않는 걸까? 아니면 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걸까? 6.25가 일어나기 두 달 전 이곳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 걸까?
독립운동을 했던 김 씨의 남편은 이미 20년 전 소식이 끊겼다. 고모 권 씨의 남편은 결혼 7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김 씨의 장남 기준은 4년 전 병으로 죽고 기준의 처 장림 댁만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첫째 딸 희야의 남편은 멀리 이북에 있고 둘째 아들 기협은 감옥살이 중이다. 행랑 식구인 독고 할머니 남편은 만주에서 죽었고 할머니의 딸 홍다리 댁은 4번 결혼을 했으나 결국 혼자 산다.
50년대라면 여전히 여성의 삶이 남성에 의해 결정되는 시대다. 하지만 이 집안을 잘 보면 집안을 존속시키는 힘은 남성이 아니고 여성에게 있다. 일제 식민지와 전쟁이란 역사의 한가운데에서도 여성들은 끈질기게 살아가고 있었다. 남자의 부재, 남편의 부재가 생존의 부재, 삶의 부재로 이어지지 않고 있었다.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2018년, 연출/안무 구스타보 자작, 원작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주인공 베르나르다 알바도 집안의 가장이다. 그녀는 두 번째 남편 안토니오가 갑작스럽게 죽은 이후, 남편에게 물려받은 농장과 재산, 식솔들을 관리하고 거기에다 노모와 다섯 딸을 돌보며 산다. 이 이야기는 1930년대 초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한 마을에서 시작된다. 무대 한가운데에서 각자의 시선으로 관객을 향해 서 있는 검은 옷을 입은 10명의 여성들의 숨이 멎을 듯한 아우라는 그녀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예고한다.
베르나르다 알바는 남편의 8년상을 치르면서 가족들에게 엄격하고 절제된 생활을 강요한다. 마을 사람들과 교류도 허락하지 않고 남자를 만나는 것 역시 감시와 통제 대상이다. 하지만 부모가 감시하고 허락하지 않는다 해서 젊디 젊은 딸들의 감정을 막을 수는 없다. 첫째 딸 앙구스티아스는 연하의 약혼자 페페와 결혼을 서두르지만 다른 자매들 역시 페페에게 강한 호감을 드러낸다. 자매들 간에 페페를 둘러싼 미묘한 신경전이 계속되고 베르나르다의 감시와 억압 역시 거세지기만 한다.
엄마의 선택은 김 씨의 그것도, 베르나르다의 그것도 아니었지만
엄마가 지고 있는 가장의 무게는 절대 가벼워지지 않을 모양이다
두 이야기는 나라와 시대를 지워버린다면 우리의 가정, 우리들의 집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두 여성이 선택한 것은 상반된다. <화전가>의 김 씨는 가장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안동에 뼈대 있는 집안의 가장이다. 하지만 김 씨는 막내딸 봉아를 대학까지 보낸다. 여자들에게 교육보다 시집을 보내는 것이 우선하던 시대에 김 씨는 있는 것을 팔아가며 딸을 공부시킨다. 남편 없이 독수공방 하는 맏며느리에게 자신의 남은 패물을 안겨주며 새 삶을 살게 한다. <베르나르다 알바>의 베르나르다는 여성의 지위가 낮았던 1930년대 유럽 사회에서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 세상과 가족의 단절을 선택한다. 그녀는 그것이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 여긴다.
선택이 달라서 결말이 달라졌다고 할 수는 없다. 모든 선택이 정해진 결말로 가는 것은 아니니까. 어쨌거나 김 씨는 전운이 감도는 상황에서도 가족들을 데리고 꽃놀이를 간다. 시집올 때 어머니가 해주신 고운 한복을 딸들에게 입히고 가장 예쁜 모습으로 화전놀이를 간다. 겉보기에 평화로운 베르나르다의 집은 폭발하는 가족들의 감정과 억누르는 가장의 무게가 대립하고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엄마는 요즘 아프시다. 연세가 있으시니 몸이 성한 곳이 없다. 해가 더할수록 약봉지가 하나씩 늘어간다. 쌓여있는 약봉지를 보면 살아온 시간들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상상하게 한다. 엄마는 엄마가 버티고 사는 이유가 결혼하지 않고 사는 자식, 결혼했으나 결국 혼자 사는 자식을 여전히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이라 했다. 엄마의 선택은 김 씨의 그것도, 베르나르다의 그것도 아니었지만 엄마가 지고 있는 가장의 무게는 절대 가벼워지지 않을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