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었니?

연극 속 엄마 이야기

by 이숙정


"밥은 먹었니?"

엄마 전화의 시작은 밥으로 시작해서 밥으로 끝난다. 그럴 때면 요즘 시대 밥 안 먹고사는 사람 어딨냐고 밥 얘기 좀 그만하라고 엄마에게 면박 아닌 면박을 주곤 했다. 그래도 엄마는 요지부동이다. 한결같이 엄마의 전화는 밥으로 시작해서 밥으로 끝난다.


물론 엄마의 '밥 먹었니?'는 아주 많은 의미를 대신한다는 것을 안다. 잘 지내니? 별 탈 없니? 아픈 곳은 없니? 조심해서 잘 살아라 등등 수많은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안다. 그러기에 나이가 누적될수록 엄마란 이름은 나에게 무겁게 다가온다. 부르기도 무겁고 불리기도 무겁다. 가끔은 누가 '엄마'라고 부르기만 해도 가슴 근처가 뻐근해지기도 한다. 영원한 우리의 아킬레스건인 엄마, 어머니는 우리 인생을 통틀어서 빠질 수 없는 존재이고 연극 속에서도 엄청난 존재감을 갖는다.



엄마의 '밥 먹었니?'는 아주 많은 의미를 대신한다는 것을 안다




연극 <어머니>는 '어머니'를 소재로 한 작품 중에서 가장 전통적이고 전형적인 우리 시대 어머니 모습을 그리고 있다. 2015년 배우 손숙의 명연기로 감상했던 이 작품은 이윤택 연출가가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쓴 작품이기도 하다. 그 시절 어머니들이 그러했듯 작품 속 어머니 역시 첫사랑과 헤어져 남편과 원치 않는 결혼을 하게 된다. 불륜 속에서 첫아기를 낳고 남편의 바람기로 평생을 상처 받고 살았던 어머니의 삶은 조각조각 모두의 어머니와 닮아 있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 분단이란 험난한 시간이 여성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중년 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시기에 충분했다.


지난 시절 어머니들의 희생을 몸으로 체득한, 다음 세대 어머니들은 딸도 많이 배워서 기 피고 살기를 간절히 바랐다. 내 딸이 건강하게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웃고 사는 것이 지상 최대 목표이자 삶의 낛이 된 것이다. 연극 <친정엄마>는 전쟁과 분단을 경험한 어머니들 다음 세대 어머니라고 할 수 있겠다. 2007년 초연 이후, 연극 <친정엄마>는 국민 모녀 연극의 대표 작품이 되었다. 방송작가 고혜정의 자전적 소설 <친정엄마>가 2007년 연극이 되었고 그 후 영화화되었으며 뮤지컬까지 만들어지게 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공감을 받은 이야기란 뜻이기도 하겠다.


주인공 미영은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골집을 떠나 원하는 대학을 진학한다. 미영은 자신이 원하던 방송작가가 되고 바쁜 일상을 보낸다. 그런 딸이 늘 걱정인 엄마는 매번 전화를 걸어 딸의 안부를 묻지만 미영은 엄마의 변함없는 걱정이 귀찮기만 하다. 엄마는 미영의 결혼을 앞두고 상견례 자리에서 예비 시어머니가 미영에게 '없는 집 자식'이라며 못마땅해하는 것을 보게 된다. 미영은 결국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지만 여전히 달라진 것은 없다. 엄마는 늘 딸이 신경 쓰이고 걱정이 되지만 정작 미영은 그런 엄마의 한숨과 걱정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이야기가 이 정도에 다다르면 어김없이 여기저기에서 코를 훌쩍이고 소리 내어 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한번 터진 눈물은 좀처럼 멈추지 못한다. 언제나 내 옆에 있을 것 같은 엄마,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나를 품에 안고 내 등을 토닥여 줄 것만 같은 엄마. 우리에게 엄마는 그런 존재이다. 그래서 더 짜증을 내게 되고 더 퉁명스러운 말이 나가게 된다. 돌아서면 미안하고 돌아서면 서운해할 엄마가 떠올라 딸도 잠을 이루지 못할 거면서 말이다.




언제나 내 옆에 있을 것 같은 엄마,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나를 품에 안고 내 등을 토닥여 줄 것만 같은 엄마.
우리에게 엄마는 그런 존재이다




엄마 앞에서 철딱서니가 없어지는 딸의 슬픈 후회는 연극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그렇게 못돼 먹은 딸일 수가 있을까? 사실 그게 남도 아닌 내 모습이면서 말이다. 엄마와 딸의 이야기는 물 건너 프랑스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프랑스 작가 드니즈 샬렘이 쓴 이 연극은 극단 산울림의 임영웅 연출, 배우 박정자의 출연으로 1991년부터 20년 넘게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프랑스로 건너온 가난한 네 식구는 낡은 호텔방 한 칸에서 힘겹게 살았다. 남편이 죽고 난 뒤에도 엄마는 남매를 키우기 위해 헌신을 한다. 홀로 남매를 키운 엄마에게 자신의 삶이란 허락되지 않았다. 딸은 그런 궁색하고 가난한 엄마의 삶이 싫었다. 그래서 멋진 옷을 입고 파티도 가고 교사로 일을 하지만 자유로운 작가를 꿈꾸게 된다. 딸은 그렇게 엄마에게서 독립을 한다. 엄마는 딸이 독립을 하고 난 뒤, 처음으로 바다를 찾는다. 처음으로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돈을 쓴다. 책을 내고 여행을 마치고 딸이 돌아오지만 이제는 엄마를 만날 수 없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결코 자식들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아니 자식들이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순간을 기다려 주지 못한다. 그것아 아니라 자식이 어머니의 사랑을 너무 늦게 깨닫는 것이 맞는 것일 거다.


-너 어디야? 밥 먹었어? 배 안 고파?

-밥 먹었지 그만 좀 물어봐

-제대로 먹은 거야?

-제대로 먹었지 나 바쁨


나도 두 딸을 낳았다. 나중에 꼭 너 같은 딸을 낳아서 키워 보라던 엄마의 말은 그대로 현실이 됐다. 아이에게 보내는 내 문자도 밥으로 시작해서 밥으로 끝이 난다. 아이들도 나에게 똑같이 말을 한다. 밥 먹었냐고 그만 물어보라고.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은 아무리 딸들이 말을 해도 여전히 딸들이 밥은 먹고 다니는지가 제일 궁금하다는 것이다. 쌀이 남아돈다는 이 시대에, 밥 아니어도 먹을 것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사실은 그렇게 나의 사랑이 너희에게 가닿기를 바라는 것일 거다. 엄마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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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연극 <친정엄마> 포스터, (우)엄마 역에 배우 박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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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연극 <어머니>, (우)연극 <어머니> 커튼콜에서 배우 손숙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