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새로 태어나는 아이

청소년극 <자전거도둑헬멧을쓴소년>과 <발가락 육상 천재>

by 이숙정


첫째 아이는 중 2가 되었을 때 사춘기를 시작했다. 사춘기가 무슨 병명이 아니어서 의사 진단을 받은 것도 아니니 아이가 문을 닫고 방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사춘기였다고 추정할 뿐이다. 나 역시 엄마 역할이 태어나 처음이었던지라 이게 사춘기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었다. 증상을 모르니 대처법도 알 수 없었다. 말만 걸면 "알았어." "그만해"가 대답의 전부였다.


말 그대로 질풍노도의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은 사춘기 아이의 엄마로 일 년을 지내고 나니 내 정신이 피폐해졌다. 하지만 아이는 나만큼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과 잘 떠들고 놀고 잘 먹고 잘 잤다. 말만 안 시키면 사춘기 청소년인가 싶게 평온했다. 한번 당하지 두 번은 안 당한다는 마음에 둘째가 중학교에 입학할 즈음, 미리 선수를 쳤다.

"너 사춘기라고 유세 떨지 마. 사춘기가 무슨 훈장도 아니고 전 세계 사람 다 하고 지나가는 성장과정이야. 알겠어?"




누구라도 청소년극을 만들어준다면 이 이해 불가능한 세대를 탐구해보고 싶었다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에서 방황하는 청소년들은 말 그대로 주변인들이다. 온몸으로 자신을 찾아가는 이 시기를 어른들은 이해하기 참 힘들다. 누구라도 청소년극을 만들어준다면 기꺼이 보러 가서 이 이해 불가능한 세대를 탐구해보고 싶지만 제대로 만든 청소년극을 만나기는 어려웠다. 청소년 관람이 가능한 좋은 공연들이 있지만 청소년의 시선에서 만들어진 청소년극을 만나기는 힘들었다. 가끔 보게 되는 청소년극은 지나치게 혹독한 성장기를 다루고 있다거나, 교훈이나 방향을 제시하는 교과서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가 매년 어린이 청소년극을 발표한다는 사실은 그런 의미에서 반가운 일이었다. 가능한 한 빠지지 않고 이 청소년극을 보게 되는 것은 작게는 나와 다른 우주 속에서 살고 있는 딸들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크게는 공연이란 매개체가 청소년과 세상을 연결하는 아주 중요한 다리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자전거도둑헬멧을쓴소년> 속 열여덟 살 수남은 배달 알바를 한다


국립극단 청소년극 <자전거도둑헬멧을쓴소년>과 연극<발가락 육상 천재>는 국립극단이 2019년, 2020년 발표한 청소년극이다. 두 작품 속 아이들은 모두 다른 이유로 달리는 행위를 한다. 폭발하는 에너지를 소유한 이 시기 아이들은 여학생이건 남학생이건 걷지 않고 뛴다. 학교 쉬는 시간 복도를 상상해 보자. 화장실을 가면서도 뛰고 옆반 친구를 찾아가면서도 뛴다. 그 짧은 시간에 운동장으로 뛰어갔다 뛰어 들어온다. 뛰고 달리는 행위가 연극 속에서 청소년기를 상징하는 이유다.


요즘 아이들은 또 다른 이유에서 달린다.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서다. 부족한 용돈 때문에 혹은 생계를 위해서 혹은 갖고 싶은 물건을 사기 위해서. <자전거도둑헬멧을쓴소년> 속 열여덟 살 수남도 배달 알바를 한다. 이 작품은 박완서의 소설 <자전거 도둑>이 원작이다. 원작 속 수남은 청계천 세운상가 전기용품 도매상 점원이었지만 연극 속 수남은 배달 아르바이트생이다.


수남은 절친 명구가 명품 옷을 입은 것을 보고 자신도 아르바이트비를 모아 명구와 같은 옷을 사기로 결심한다. 손님도 많고 배달도 많은 크리스마스날, 수남의 배달 오토바이가 눈길에 미끄러져 차와 부딪치는 사고가 발생한다. 차 주인은 차가 긁힌 것도 아닌데도 수남에게 합의금을 물지 않으면 경찰서에 보내겠다고 협박한다. 넉넉지 않은 집에 손을 벌릴 수도 없고 알바 사장님이 합의금을 물어줄 리도 없다.


방법을 찾지 못하는 수남에게 손을 내민 것은 빈쯔라는 또 다른 청소년이었다. 원작에 없는 빈츠는 구독자 10명을 보유한 먹방 유투버다. 정작 학교에서는 존재감이 1도 없는 학생이며, 집에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아버지뿐이다. 빈쯔는 자신만의 세상에서 미친 듯이 먹방을 하며 세상과 소통한다. 빈쯔는 원작에는 등장할 수 없는 요즘 시대의 청소년이다.


이제 수남은 어떻게 되었을까? 방법은 하나다. 수리비 대신 잡혀있는 오토바이를 훔치는 것뿐이다. 어른에게 다른 묘안이 떠올랐을 수도 있지만 18살 수남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다. 지금도 기억에 선명한 장면은 무대 주변으로 달리기 코스처럼 만들어진 곳을 수남이가 정신없이 내달리던 모습이다. 이 마지막 장면은 백 마디 말보다 더 가슴에 남았다.




남과 다른 나를 찾아가는 12살 아이들의 이야기 <발가락 육상 천재>


시골 자갈 초등학교에는 육상부가 있다. 육상부 1등인 호준, 매번 꼴찌를 하는 은수, 그리고 가운데에서 2,3등을 오고 가는 상우. 늘 변함없는 육상부에 새로운 1등 정민이 등장한다. 정민은 잘 생기고 덩치도 크고 스포츠맨 정신까지 갖춘 완벽한 전학생이었다. 연극 <발가락 육상 천재>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1등을 뺏긴 호준은 달리지 않기로 한다. 정민은 학교 육상부 신기록을 내며 새로운 영웅이 된다. 호준은 인어에게 발가락을 잡아먹혀서 달리지 못한다고 아이들에게 말한다. 육상부 아이들은 호준의 발가락을 잡아먹은 인어를 잡기 위해 바다로 향한다. 정말 아이들은 인어를 찾을 수 있을까? 그래서 잡아먹힌 호준의 발가락을 찾을 수 있을까?


'인어'라는 설정은 어른들의 시선으로는 절대 상상 불가한 것이다. 이번에도 다시 열두 살 그 시절로 돌아가 보자. 열두 살의 남자아이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한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면 어떠한가? 남자아이들의 이야기는 팽이 하나를 가지고도 온 세상을 손에 넣은 듯하다. 그게 그 나이 아이들의 세상이다. '인어'를 잡기 위해 나선 아이들은 사뭇 진지하다. 그리고 진짜 인어가 아이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


아이들은 이제 인어와 달리기를 시작한다. 호준의 발가락도 안전하게 다시 찾았다. 물론 믿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달라졌다. 매번 꼴찌만 하던 은수도, 상우도 1등을 하고 싶다는 숨겨왔던 욕망을 드러낸다. 사실 1등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모두 특별해지고 남보다 뛰어나고 싶다. 주변에는 나보다 더 잘나고 뛰어난 사람들 천지다.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도 치고 허우적대기도 한다. 그것은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연극 <발가락 육상 천재>는 남과 다른 나를 찾아가는 열두 살 아이들의 이야기다.



몇 안 되는 세상에서 아이들이 탈출하기를 희망한다면
공연장에 갈 자유를 허하기를


두 작품은 모두 열린 결말을 갖고 있다. 마침표 찍기를 좋아하는 어른의 시선에서 이 이야기는 '끝이 뭐 이래?'가 될 수 있다. 사실 열린 결말이라기보다 결말이 없는 게 결말이다. 이 이야기에 결말이 있을 수 있을까. 결말이 있다면 어른들의 결말이 아닐까. 청소년기 아이들은 스스로 부딪쳐 가며 자신들만의 답을 찾고 문제를 해결한다. 그것이 서툴고 또 다른 문제를 만들지라도 그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어른이 되어 더 큰 오류를 겪게 된다.


국립극단의 청소년극은 매 작품마다 청소년들의 모임과 대화와 토론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이 작품들이 결말이 없어 답답하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질문을 하게 만드는 것은 그런 창작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청소년극의 등장이 너무 반가운 것은 이것을 어른뿐만 아니라 더 많은 청소년들이 볼 수 있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공부, 학원, 핸드폰, 넷플릭스, 게임이란 몇 안 되는 세상에서 아이들이 탈출하기를 희망한다면 공연장에 갈 자유를 허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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