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공주는 다 예뻐?

동화 속 공주를 잊게 만드는 무대 위 공주들 이야기

by 이숙정

무릇 부모란 자식 바보들이다. 자식이란 카테고리에만 들어가면 부모들은 바보가 된다. 눈에 하트가 뿅뿅 그려지고 자식이 하는 말 하나하나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한다. 아이가 '엄마'라고 말해도 천재가 아닌가 의심하게 되고 아이의 행동 하나에 놀라 영재교육을 시켜야 할지 고민을 하는 것이 부모다. 반대로 우리 아이가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은 아닌지 지하 땅굴을 파고 들어갈 기세로 고민을 하는 경우도 생긴다. 내게도 그 비슷한 순간이 있었다.


"엄마, 왜 공주는 다 예뻐?"

"엄마 왜 악당은 꼭 벌을 받아?"

"엄마, 왜 동화는 다 해피엔딩이야?"

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폭탄을 투하하듯 질문을 쏟아냈다. 그 질문은 내 상식과 지식수준으로 대답을 해주기 어려웠다.


"뭐?"

"해피엔딩이 좋은 거지, 다 죽고 그러면 좋겠어?"

상상력이라고는 1도 없는 엄마의 대답 아닌 질문에 아이는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관점으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장하다고 엉덩이라도 두드려 줘야 하는데 그땐 아이가 너무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되었다.



그러게, 왜 공주는 다 예쁠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진짜야?

결혼생활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텐데?

왕자는 진짜 다 잘생기고 용감한 거야?


잊고 있었던 아이의 질문이 불현듯 떠오른 건 어른이 뮤지컬 '난쟁이들'(2015년,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을 보고 나서다. 동화책 속 공주란 공주는 다 등장하는 이 뮤지컬에는 우리가 아는 공주는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순수함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보려야 찾을 수 없는 판을 뒤집는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인공이 예쁘다는 이유로 계모의 살해위협에 시달리는 사랑스러운 백설공주가 아니라 난쟁이들이다. 감출 수 없는 성적 욕구에 충실한 백설공주, 돈이 제일 중요한 속물근성 신데렐라, 마음이 여려서 가진 것 다 퍼주고 남에게 쉽게 속는 맹한 인어 공주가 이 뮤지컬 속 공주들의 실체다.


말을 타고 등장하는 왕자들의 실체는 정의와 용맹 따위와 거리가 한참 멀다. 왕자들은 대놓고 사람들은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현실을 노래한다. 백마 탄 왕자는 상상 속에나 가능하다는 말이다. 잘생긴 왕자와 결혼했지만 속궁합이 맞지 않아 괴로운 백설공주나, 돈을 보고 결혼했지만 빚만 가득한 왕자와 이혼해버린 신데렐라는 현실을 동화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요즘 그녀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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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은 다르지만 뮤지컬 '신데렐라'(2015년, 충무아트홀 대극장) 역시 동화를 새롭게 재해석한 작품이다. 대극장 뮤지컬답게 화려한 무대와 내로라하는 출연진은 내용을 떠나 동화 '신데렐라'의 환상을 느끼게 해 줬다. 동화와 다른 점이라면 신데렐라가 벗겨진 구두를 두고 갈 것인지 가지고 갈 것인지를 고민을 하는 대목부터다.



당연하다 여겼던 것들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새롭게 세상을 보려는 도전


신데렐라는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여성으로 등장한다. 왕자도 딱히 자신이 왕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왕자라고 다 왕자가 적성에 맞는 것은 아닐 것이고 또 왕자라고 다 왕이 되고 싶어 하란 법은 없다. 자신의 권좌에 욕심이 없다고 해서 왕자가 매력 없으란 법도 없다. 의붓언니 가브리엘은 선한 심성 탓에 어머니의 말을 거스르지 못할 뿐 신데렐라의 조력자가 된다. 동화책 속 인물들과 다른 설정과 이야기 전개는 기존의 '신데렐라'와 많이 다른 작품을 탄생시켰다.


공주를 다른 식으로 해석하는 시도들은 무척 많다. 자신의 운명을 잘생기고 용감한 왕자에게 의탁하던 공주는 이제 아이들의 애니메이션 속에서도 찾기 힘들다. 아름다운 공주 대신 뚱뚱하고 못생긴 공주가 더 인기를 얻기도 한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 왕이 되는 것이 왕자가 아니고 공주이기도 하다. 물론 아직까지 우리는 '왕자'와 '공주'의 세상 속에서 벗어 나오고 있지는 못하지만, 성역할의 고정관념은 깨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공주는 다 예쁘고 악당은 꼭 벌을 받고 모든 동화책은 행복하게 끝나서 재미없다는 큰 아이는 동화책을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을 '공주'라고 부르면 경기 일으키듯 싫어하기도 했다. 다행히 세상은 변해서 악당이 승리하는 영화도 나오고 모든 이야기가 행복하게 끝나지도 않는다. 그 누군가 당연하다 여겼던 것들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새롭게 세상을 보려는 도전이 만들어낸 결과일 거다. 뭐, 딸아이와 내가 세상을 변화시킨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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