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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Feb 07. 2021

"학교밖 청소년, 오늘 뭐했어?"

둘째 딸 아이는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이제 자퇴 3개월차다. 아이가 자퇴를 이야기한 것은 꽤 오래 전이었다. 중학교 2학년 들어서면서 아이는 자퇴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땐 그 흔한 '중 2병'이라 확신했다.


"야, 어디서 중2병 타령이야. 내가 말했지. 그런 거 안 통해."

그렇게 자퇴타령은 사춘기 연례행사로 지나가는 줄 알았다.  다시 그놈의 자퇴타령이 스멀스멀 고개를 든건 고등학교 입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내가 엄마한테 쓴 편지를 지금 줄거야. 부탁인데 다 읽어 주고 읽고 나서 절대 욕하지 말고 화내지 말아줘."


빼곡하게 채워진 편지 내용은 이랬다.  자신은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싶은데 학교 공부를 하루 종일 하고 나면 모든 에너지가 바닥이 나며  왜 이런 공부에 24시간을 모두 매달려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경쟁하고 서로 경계하는 친구관계도 잘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게 너무 힘들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하고 싶은 공부를 시작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이는 친구관계도 좋았고 학교생활도 잘했다. 잘했다는 표현이 조금 우습지만 그랬다. 우등생은 아니어도 성실한 아이란 평가도 늘 따라다녔다. 나이 먹도록 낯가리는 나와 달리 친구 엄마들이 더 찾을만큼 친화력도 좋았다.


"혹시 누가 너 괴롭히니?"

"학교가 공부만 하는 곳인 줄 알아? 사회생활을 배우는 곳이기도 해."

"학창시절은 인생에 한 번 뿐이야. 두 번도 못한다고."

"세상이 고졸이랑 대졸을 차별해. 대졸도 학교로 차별하는 마당에.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그래. 그건 변함이 없을 거야."

"안그래도 코로나로 학교를 안가는데 굳이 자퇴하면서까지 안 갈 이유가 뭐야?"


일단 아이를 설득해야겠다 싶었다. 그땐 누구나 한번쯤 그런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1학년만 지내보고 생각이 변하지 않으면 그땐 진지하게 생각해 보겠노라고. 엄마도 안되는 선이 있으니 모든 것을 다 들어줄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상황은 그렇게 마무리되는 줄 알았다.


그후로 아이는 매우 집요하고 끈질기게 나를 설득했다. 하루는 자퇴 계획서를 들이 밀었다. 자퇴하고 자기 방식대로 공부해서 대학을 간 학생들의 이야기를 카톡으로 보내기도 했다. 검정고시 정보를 보내는가 하면, 느닷없이 시험 공부를 하다 울기도 했다. 언제까지 고민하는 거냐며 협박도 했다.


기말고사가 끝난11월 어느 날, 나는 아이를 불렀다. 내 길고 긴 고민에 마침표를 찍어야겠다 생각했다.

"자퇴란 거 엄만 생각해 본 적 없어. 주변에 그런 사람을 본 적도 없고 자기 아이 자퇴시켰다는 얘기도 못 들어봤어. 엄마는 상상도 안되고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 지도 모르겠어. 그런데 네 생각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엄만 살아보지 않은 길이라 겁나지만 네가 살아갈 세상은 그게 또 다른 길일 수도 있겠다 싶고. 그렇게 하자. 자퇴하자."


자퇴 절차는 간단했다. 부모가 함께 가서 자퇴서와 몇가지 서류에 사인을 하면 됐다. 코로나로 처음 만난 담임선생님과 나는 마스크로 얼굴 반을 가린 채 어색한 인사를 건넸다. 생각이 바뀌면 빨리 돌아와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을 뒤로 하고 우리는 학교를 나왔다.


"학교밖 청소년, 오늘 뭐했어?"

"학교밖 빼고 그냥 청소년이라 불러줄래?"

아이는 내 말에 전혀 기죽지 않는다. 아이는 책을 만들어 판매하고 배송도 스스로 한다. 자기 일정대로(본인의 표현을 빌자면 그렇다) 공부를 하고 쉬고 싶을 때 쉬고 책을 읽고 싶을 때 책을 본다. 너무나 당연한 이것을 학교 밖으로 나와서 하고 있다. 아이는 자신이 선택한 삶에 만족하고 행복한 모양이다. 


아이를 자퇴시켰다고 하니 주변에 반응들은 한결같았다. 나역시 불안함이 1도 없다면 거짓말이다. 아직까지 학벌로, 부모의 재력으로 많은 것이 갈리는 이 사회에서 아이는 맨 몸뚱이로 헤쳐나가야 한다. 이것도 저것도 안되면 어쩌나 초조한 것도 사실이다. 학교라는 안전장치도 없이 사막 한가운데 아이를 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너희만은 안정되게 살라고 그런 길로 가라고 다그쳐도 시원찮은데 쥐뿔도 가진 것 없으면서 꿈대로 살겠다는 아이의 손을 잡아버렸다.


그냥, 나는 한번도 그렇게 살아보지 못해, 내 꿈을 위해 용기내지 못해서, 내 꿈이 무엇이었는 지도 까맣게 잊고 살아서. 돈도, 지위도, 명성도 아무 것도 네가 걷는 길에 놓아 줄 디딤돌이 없지만 마음으로 너를 지지하고 응원한다. 너에겐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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