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살이를 정리하던 나는 엄마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죽음 앞에 항거하듯 흰 띠를 머리에 동여매고 자리에 누운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온몸에 드리워진 우울의 그림자에서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푸념과는 농도가 다름을 느꼈다. 행주를 내려놓고 엄마의 곁으로 다가서자 혼탁해진 눈동자에서 눈물이 흘렀다. 겨울의 찬바람이 동여맨 창문 사이로 스며드는 밤이었다.
죽기는 왜 죽어……. 인명은 재천이라는데......
나의 애원에 엄마는 손사래를 치며 돌아누웠다.
눈만 뜨고 있다고 사는 것인가. 가슴에 시멘트를 발라도 꾸역꾸역 떠오르는 게 자식인 것을. 자식 앞세고 무슨 낯으로 살겠노.
사람들은 자식의 죽음을 '참척지변'이라고 한다. 참혹한 슬픔이라는 의미다. 부드러운 듯 강인하고 따뜻한 듯 냉철했던 엄마에게 외아들의 죽음은 감당하기 어려운 큰 고통이었다. 엄마에겐 너무도 잘 생긴 아들, 단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희망과 행복의 상징물이며 기둥이었다. 아니 엄마의 인생 자체였다. 아들을 잃는다는 것은 엄마 자신을 잃는 것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인생의 벽에 부딪힌다. 하지만 당장 내 눈앞에 놓인 절망의 늪에서 그 무엇도 위로가 되지 못한다. 타인의 어떤 위로의 말도 글도 소용이 없다.
아들에 대한 믿음은 신앙에 가까웠다. 그 끈을 놓지 않았던 엄마는 이제 방향성을 상실했다. 삶의 터전에는 상실의 슬픔이 무성한 잡초처럼 번져 나갔다.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던 분이셨으니 절망이 오죽했으랴. 엄마의 절규는 숨을 몰아쉬면서 손톱으로 긁었다는 죽음의 수용소에 새겨진 핏자국을 떠올리게 했다. 뜨거운 사막 위의 나무처럼 바삭바삭 타들어 갔다.
자식의 모든 가능성과 희망은 어미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아들은 엄마의 자랑거리이자 시퍼런 교만의 원천이었다. 제 앞가림이 변변치 않은 자식들을 은근히 깔보면서 '어디 그것도 직장이라고 다니냐'며 남의 자식을 얕잡아 보았다. 부족하게 태어난 남의 자식을 보면 '차라리 죽는 게 낫지'라는 모진 생각을 중얼거린 적도 있었다.
자연은 인간의 슬픔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모든 게 그대로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싱싱하던 아들이 사라졌는데 태양은 멀쩡하게 떠올랐다. 날씨는 유독 화창했고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렀다. 사람들은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웃고 떠들었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슬픔을 비웃기라도 하듯 세상은 잘도 돌아갔다.
엄마는 세상의 수군거림이 두렵다며 대문을 나서지 않았다. 자식을 삼켜 먹은 어미가 살겠다고 밥상과 마주한 자신을 비웃었다. 수시로 짐승처럼 통곡하고 구르고 삿대질을 했다. 내 아들을 왜 데려가는지 이유라도 말해 달라며 허공에 내질렀다.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는지 말이라도 하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하늘은 침묵할 뿐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엄마는 막내로 태어난 탓에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다. 전쟁터에 나갔던 오빠가 유골함에 담겨 돌아오는 모습도 보았다. 사는 것과 죽는다는 것이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임을 일찌감치 깨우친 셈이다. 평소에 엄마의 얼굴을 보면 남을 품으려는 넉넉함이 묻어 있다. 오래 살았다고 해서 내세우지 않으면서 이웃과 친하게 지내고, 나이가 적은 사람에게는 자상한 할머니, 아직 젊은 사람에게는 따뜻한 아주머니 같은 분이었다.
아들과의 이별 앞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리는 엄마. 음식물을 목에 넘기지 못할 만큼 쇠잔해지니 겁이 났다. 나는 친정살이를 시작했다. 엄마의 육신은 애통과 비통을 수시로 토하더니 흰죽을 허락했다. 죽고 싶다는 갈구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생명력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고마웠다. 지극한 애통함 속에서도 회가 동할 때 부끄럽고 당황스럽지만, 이것이 구원이 아닐까.
한 치 앞도 모르고 한 시간 뒤의 일도 모르고 사는 것이 인간이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인생의 궁극은 죽음이 틀림없다. 영면, 영원한 안식은 누구의 슬픔인가? 최소한 죽은 자의 것은 아닐 것 같다.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요, 증발하고 희미하게 자국만 남고 마는 슬픔이 아니겠는가. ‘자는 잠결에 갔으면’은 엄마의 기도문. 아들 없는 세상을 사랑하게 되어 부끄럽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