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가 왔다. 칠월칠석 오작교를 건너서 온 모양이다. 어둠이 가장 진하게 내려앉은 시간, 제상에 뽀얀 밥을 올리자 어둑한 기운 하나가 들어선다. 잠시 머뭇거리는 듯 망설이다가 이내 병풍을 등지고 앉는다. 촛불은 절하는 사람들이 몰아쉬는 숨소리에 이리저리 나부낀다. 허리가 꾸부정한 엄마가 그리움이라는 술을 드리자. 다소곳이 서 있던 그녀의 딸은 용서라는 절을 울린다.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제상의 주인은 내 오빠다.
오빠는 엄마에게 알뿌리 같은 존재였다. 땅속으로부터 물과 양분을 빨아들여 제 몸에 저장하는 고구마 같은 아들이었다. 하늘을 덮을 만큼 빼곡한 잎들의 몸부림과 원뿌리의 성장을 위해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는 곁뿌리들의 노력으로 완성되는 존재였다. 그 아들 때문에 엄마는 가슴이 시퍼렇게 멍들어야 했다.
자손이 귀한 집안의 며느리였던 엄마의 어깨는 무거웠다. 연거푸 아들 둘을 잃은 엄마의 가슴은 상처로 너덜너덜해졌다. 생명력이 다한 듯 누렇게 시들어갈 때 얻은 자식이 오빠였다. 그래서 하늘을 우러러 별을 따는 심정으로 귀하게 기르고 싶었지만, 별은 바람만 불어도 지쳐 쓰러지는 여린 잎 같았다. 깜깜한 밤에도 십리 길을 버선발로 오가는 엄마의 등에는 열로 상기된 오빠가 업혀 있었다. 아들의 목숨 줄을 부여잡고 다니느라 얼마나 애간장을 태웠을까.
아들을 알뿌리로 여겼던 그 시절, 연거푸 딸만 셋을 더 낳은 엄마는 삶의 영토를 더 넓히지는 못했다. 집안 형편은 쪼들렸지만 오빠로 인해 엄마의 삶은 굳건하고 싱싱했다. 그렇지만 엄마의 사랑을 독점하는 오빠 때문에 여동생들의 행복은 외면당했다. 튼실한 알뿌리를 위해서 곁뿌리들의 뒷바라지가 있어야 하듯 나는 오빠를 위해 웅크리고 양보하며 살았다.
아들이라는 훈장을 앞세운 오빠는 동생들의 몫을 당연히 자신의 몫으로 생각했다. 오빠의 도움을 받아야 할 내가 오히려 목구멍에 걸린 가시 같은 그의 가방을 등굣길에 들어야 했다. 동생들도 발에 맞지 않은 구두 같은 오빠의 비위를 맞추어야 했다. 죽 끓듯 변덕스러운 그의 욕망을 위해 우리들은 늘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그로 인해 엄마는 우리가 의지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일찌감치 알았다. 그래서 바람이 불어오면 바람보다 먼저 엎드리는 방법부터 배웠다.
세월이 흘러도 오빠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점점 더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일에만 열중하였다. 손톱 여물을 썰며 모은 가산을 오롯이 물려주고도 눈치만 슬금슬금 살피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는 제각각 푸른 멍을 안고서 마음에서 엄마를 내쳤다.
오빠가 반백을 넘긴 어느 봄이었다.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고들 하지만 예고 없이 찾아든 불행은 혼란과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의 인생에 높은 파도가 밀려왔다. 나날이 심해지는 병증만큼이나 세상은 그를 떨도록 만들었다. 급기야 일을 그만두어야 했고 그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그가 왜 이같이 혹독한 일을 당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손짓하여 불러들인 적도 없고, 몽둥이찜질로 내칠 수도 없으며 목이 터지도록 하늘을 원망해도 대답해 주지 않는 이 상황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아들에 대한 믿음의 끈을 놓지 않았던 엄마는 방향성을 상실했다. 어쩌면 엄마에게 인생의 네비게이션은 오빠의 등짝이었는지도 모른다. 엄마의 삶의 터전에는 상실의 슬픔이 무성한 잡초처럼 번져 나갔다. 오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던 분이셨으니 절망이 오죽했으랴.
이제 저 여인을 어찌해야 하나. 뿌리를 잃은 줄기처럼 시들시들한 모습 앞에서 마음의 문을 반쯤만 열고 살았던 나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 마음만큼이나 어둑한 밤이었다. 직녀가 견우를 만난 듯 엄마는 제상의 주인을 향해 넋두리를 쏟았다. 나는 그런 엄마에게 그 동안의 한과 서러움을 신들린 듯 토해냈다. 엄마라는 울타리 안에서 비정하게도 굴었다. 긴 겨울을 이겨내는 풀잎처럼 연약한 엄마의 마음을 마구 짓이겨 놓았다. 내 좁은 소갈머리로 화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세월은 약이 되어주었다. 수시로 목젖 너머로 울컥하며 넘어오던 기억들도 추억으로 저장되기 시작했다. 이승을 떠난 오빠의 혼이 머물며 먹고 간 제사 음식을 먹었다. 음복주를 마시면 복을 받는다는 주변의 권유를 못 이긴 척 술잔을 받았다. 엄마의 골진 주름 사이로 숱한 시간이 흔들리며 보였다. 연거푸 두어 잔을 더 마시자 세월 앞에서 풍화되어 가는 엄마의 모습이 내 머리채를 잡았다. 열 달 동안 오롯이 자궁에 품어서 튼실하게 길러준 마음을 기억하라며.
마침내 나는 오빠와 무언의 약속을 하고 말았다. 이승과 저승의 맹세이니 되돌릴 수도 없다. 이번에도 나는 또 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