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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울 Mar 20. 2022

할머니의 달걀

-대구도시철도공사 스토리텔링 공모전 장려상(2016년)

이 년 전, 날벼락처럼 칠곡으로 발령이 났다. 가까운 거리에서 오래토록 근무하던 나에게 출근길은 유배 길처럼 멀고도 험했다. 버스를 기다리고 환승해서 직장에 도착하면 몸은 이미 물에 데친 배춧잎이 되었다. 삶이 너무 고달프다고 느낄 때, 삼호선이 개통되었다.

지상철 역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내게는 아직도 비몽사몽의 새벽인데 벌써 많은 이들이 타고 있다. 출입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눈을 뜨자마자 집을 나섰더니 서서히 회가 동하기 시작한다. 비좁은 공간에서 오른쪽의 여학생에게 옷깃이라도 스칠세라 조심조심 가방을 연다. 삶은 달걀 두 개를 넣어 왔었다.

손수건을 무릎에 펼치고 몰래몰래 껍질을 벗겨 입에 넣으려는 순간이었다. 시선을 들자, 이제 막 차에 오른 듯싶은 맞은편의 남학생이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그러한 경우에 타인의 관심을 무시할 정도로 나는 용감하지 못하다. 슬그머니 손수건으로 달걀을 가리고 만다. 저 아이도 어젯밤 늦도록 공부에 내몰리다가 등교시간에 쫓겨 아침밥을 못 먹었을 것이다. 내 아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찡해진다.

가방에 든 달걀을 생각하며 마음이 흔들린다. 나머지 한 알을 줄까? 모르는 사람의 이유 없는 친절은 의심의 대상이 되는 세상에 호의를 거절당하면 나만 무안하지. 머뭇거리며 잠시 고민에 빠진 채 계란만 속절없이 만지작거린다.

그때 남학생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이리저리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연거푸 쏟아낸다. 일시에 시선과 관심의 대상이 된다. 인사성이 좋은 학생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추락하기 까지는 차가 두 정거장을 움직이는 시간으로도 충분했다. 차 안은 삽시간에 시끌벅적한 난장판이 된다. 신기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구경하는 사람, 짜증이 난 듯 시선을 외면하는 사람,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어쩌다가 하는 표정으로 무언의 안타까움을 던지는 사람들 등등. 반응은 천태만상이다.

달걀을 손수건으로 숨기듯, 망설였던 마음을 슬쩍 덮어 버린다. 순간의 안쓰러움과 미안함은 사라지고 궁금증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이제 남학생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말을 건네고, 승객들의 마음에선 흙바람이 일어난다. 남학생은 음식에 대한 집착이 심해 보였다. ‘어떤 음식 좋아하세요, 먹던 밥을 버리면 어떻게 되나요, 버린 음식을 주워 먹으면 왜 안 되나요.’ 맥락 없는 말로 수선을 계속 피우자 ‘병신 새끼’라는 나직한 신음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한 중년 신사는 ‘조용 못해’라며 소리를 버럭 지른다.

그 때였다. 아침시장을 다녀오는 듯 끌개에 잔뜩 물건을 담은 할머니가 차에 오른다. 노란색 의자에 앉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잠시 지켜보시더니 남학생을 손짓으로 부르신다. 할머니의 옆자리 아가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예 옆 칸으로 가버린다. 할머니는 세월의 흔적이 배어나는 끌개를 이리저리 뒤지시더니 검은 봉지를 꺼내신다. 그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아가! 배고프나. 이거라도 묵어 볼래?’,‘달걀이네요, 나 이거 엄청 좋아하는데.’ 남학생은 영락없는 여섯 살 꼬마 수준이다.

할머니는 함량 미달의 그릇을 다루듯 머리와 등을 쓰다듬으며 남학생을 보듬는다. 여전히 수다를 피우지만 할머니 옆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으니 우리의 일상이 다시 균형을 잡는다. 할머니의 골진 주름 사이로 숱한 시간이 흔들리며 보인다. 세월 앞에서 풍화되어 가는 할머니의 모습이 내 머리채를 잡는다.

내가 삶의 애증을 다 짐 지지 못하고 휘청거릴 때, 튼실하게 길러준 마음들을 기억하라며. 나도 저 할머니처럼 살아야지 하다가도 현실에서 또 뒷걸음질 할지도 모른다. 지금껏 내 삶은 누군가의 사랑을 덥석덥석 받기만 했었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나눔과 배려를 실천할 용기가 필요하다. 세상살이는 더불어 할 때, 살맛이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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