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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울 Mar 20. 2022

하늘열차에서 생긴 일

-2021년 교통복지사업 「다 함께 대구로」 시민 공모전 수기 참가상

나는 하늘열차 애용자다. 개통 첫날부터 탑승했다. 도로 상황에 따라야 하는 자가용과 달리 지상철은 천재지변이 아니면 거의 오차가 없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도시의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고 계절 따라 바뀌는 풍경을 즐길 수 있으니 눈 호강이 따로 없다.

그런데 작년부터 날벼락이 떨어졌다. ‘코로나’란 놈이 찾아왔다. 세상을 휘젓고 다니는 녀석의 무게를 전부 합쳐도 겨우 일 킬로그램 정도라고 한다. 가볍게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는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처음엔 이웃 나라 이야기라 생각하며 데면데면하게 굴었고, 나라의 당부만 따르면 금방 사라질 줄 알았다. 방역수칙을 따르고 익숙했던 외부활동도 모두 접었지만, 여전히 심술을 부리고 있다. 우리의 반성문이 맘에 차지 않은 것일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코로나는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가족들은 코로나가 숙질 때까지만 지상철을 타지 말라고 옷자락을 붙들었다. 출발역이 집이요, 종착역이 근무지인 나는 무척 고민스러웠다. 나의 출, 퇴근길이 불편해지는 건 뻔한 사실이니까.

나는 마스크만 제대로 쓰면 되지 않겠냐며 자가용과의 이별을 선포했다. 가족들은 펄쩍 뛰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확진자가 되면 어떡할 거냐며 나의 무모함을 꾸짖었다. 만약 코로나에 걸리면 사람들에게 죄인 취급을 당할 거라며 겁을 주었다. 속으로는 살짝 걱정되었지만, 대중교통이 더 안전할 수도 있다며 억지를 부렸다.

”마스크를 착용합시다.“

바뀐 출입구 멘트에 깜짝 놀랐다. 단호한 여자의 청유형 멘트는 쉼 없이 울렸다. 하늘열차는 정거장마다 승객을 토해내고 또, 손님을 태우고서야 문을 닫았다. 마스크에 가려진 사람들의 얼굴을 상상하며 앞 칸에 섰다. 어르신들은 재빠르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예전의 왁자지껄한 진풍경은 사라졌다. 빈자리에 먼저 앉으려는 어르신들의 몸싸움은 가벼운 말싸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한 정거장도 채 못가서 언제 그랬냐는 듯 말벗이 되기도 하고 서로의 장바구니를 스스럼없이 열어 보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하늘열차의 분위기가 낯설기만 하다. 대화 금지는 물론이고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으면 벌금까지 물어야 한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자칫 잔기침이나 재채기라도 하게 되면 따가운 시선을 한 몸에 받아야 한다. 고개를 돌리면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에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한 집 건너 하나로 나붙은 '임대' 현수막이 코로나 시대의 고달픔을 알린다.

바람에 펄럭이는 모습이 서민들의 아우성 같다는 생각에 빠져 있을 무렵, 난데없이 큰 소리가 저만치서 들렸다.

"그라마, 임마가 이래도 된다는 말인교?"

불룩한 배를 출렁거리며 지팡이로 바닥을 땅땅 치는 노인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소리가 얼마나 쩌렁쩌렁했으면 옆 칸의 젊은이 서너 명까지 몰려 왔을까. 불구경 다음으로 재미있는 게 싸움 구경이니 이목을 끄는 건 당연지사다. 노인 앞에 앉은 구부정한 노파의 역공도 만만찮았다.

"얼마나 숨쉬기가 갑갑하면 그러겠소. 마스크를 안 쓴 것도 아니고 쪼매 내린 걸 가지고. 참말로 별스럽데이."

노파의 장바구니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낙엽의 잎맥 같은 핏줄이 불끈 일어섰다. 청년은 자기 때문에 벌어진 사태의 심각성을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것일까. 새 부리 모양의 마스크를 내렸다 올리기를 반복하며 노인의 화를 부추겼다.

"니가 지금 끝까지 해보자는 모양인데 오늘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마."

지팡이는 청년을 향하고 있었지만, 말은 정작 노파 쪽을 향해 있었다. 그때 저 너머에서 한 명의 지원군이 나타났다.

"누구는 안 답답한가요? 전 국민이 코로나 수칙을 지키는 이 마당에 마스크를 제대로 끼지 않은 청년을 두둔하면 안 되죠."

조만간 노인의 반열에 오를 연배의 여인이었다. 이에 질세라 이번엔 노파의 응원군이 등장했다. 먹물 기가 잔뜩 묻은 노신사였다.

"아이고, 전부 손자 손녀도 없소? 좋게 타이르면 될 일이지. 그토록 청년을 쥐 잡듯 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어느새 열차 안의 승객들은 두 진영으로 갈렸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노인과 노파 편으로 나뉘었다. 중년의 여인들도 선거판 유세장처럼 이쪽저쪽에 표를 보태느라 왁자지껄했다. 삽시간에 토론장이 된 열차에서 나는 누구를 응원할까.

며칠 전에 겪은 출근길의 일이 떠올랐다. 공중을 쳐다보니 열차가 저만치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있는 힘을 다해 뛰면 탈 수 있을 듯했다. 거리를 가늠하며 내달려 열차에 오르니 성공의 짜릿함과 함께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빈자리에 앉았다. 맞은편에 앉은 학생이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꼰 다리를 떨어대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태도 불량이었다. 잠시 후, 나를 대놓고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학생의 마스크가 달싹였다. 미간을 찌푸리며 알아들을 수 없는 혼잣말을 했다.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라는 생각에 권위의 눈빛으로 꾸짖었다. 그러자 나를 향해 큰 소리로

“아줌마, 마스크 똑바로 착용하세요.”

아뿔싸, 나도 모르게 숨이 가빠 마스크를 내렸나 보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지만, 얼른 마스크를 올리고 눈을 감아버렸다. 몇 정거장이 지났을까. 붉어진 맘이 가라앉을 무렵, 슬며시 눈을 뜨니 맞은편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부끄러운 기억의 두레박을 퍼 올리고 있던 나를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대구시민 여러분, 모두 질서를 지키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합시다.”

화들짝 놀라 쳐다보니 어깨띠를 두른 직원이 어느 쪽에도 치우침 없이 예의 바르게 안내하고 있었다. 질서의 여신, 에우노미아가 방문한 듯 열차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갈무리 되었다.

찌뿌둥하던 하늘에서 계절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왈가왈부하는 우리를 꾸짖듯 열차가 레일에 미끄러지며 덜컥인다. 몸을 움찔하며 자세를 가다듬은 노인이 노파의 장바구니에 실린 고구마 모종을 곁눈질한다.

”한 다발에 얼마 주었소? 튼실해 보이는데……“

”비라도 흠뻑 내리면 좋으련만.“

창밖을 바라보던 노파의 대답이다. 잘잘못의 무게를 달고 있던 나는 선문답 같은 어르신들의 대화에 생각이 멎는다.

주변은 '코로나 우울'이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회색빛이다. 학교는 수업 방식을 바꾸었고 직장에서는 근무방식이 달라졌다. 갑작스러운 삶의 변화 앞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내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뫼비우스의 띠가 안과 밖의 구분이 없듯 우리는 서로에게 가해자이면서 피해자로 살아가고 있다. 하얀 이를 드러내고 마음껏 부둥켜안을 날을 꿈꾸며 마스크의 끈을 조인다.

목적지에서 내리니 반대편 열차가 스치듯 떠난다. 문득, 머릿속에 동화 같은 소원이 떠오른다. 그 옛날 ‘은하철도 999’처럼 저 열차가 코로나를 몽땅 싣고서 지구를 떠나기를. 하늘 열차의 꽁무니가 아스라이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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