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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울 Aug 22. 2023

폭포 수업



새 학년이 시작되는 교무실 풍경은 장마당을 방불케 한다. 주택가의 골목처럼 좁은 통로를 들락거리며 개인의 짐을 옮기느라 정신이 없다. 그렇게 한참 동안 부산을 떨고 나면 새로 맡을 아이들의 명단이 든 하얀 봉투를 받는다. 아이들에 대한 정보를 캐기 위해 재빠르게 움직이는 교사들도 눈에 띈다. 가끔은 담임들끼리 나누는 대화가 귀에 거슬릴 때도 있다.

“그 녀석 때문에 작년에 시달린 생각을 하면...... 김 선생.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어요.”

“학급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곪은 상처는 도려내야죠.”

꼬리표를 달아서 넘기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나쁜 마음을 가진 것 같지는 않다. 그저 효율적인 학급경영을 위해 정보를 공유하자는 것일 뿐.

그래도 일면식도 없는 한 인간에 대해 끼고 있던 색안경을 넘겨주는 것은, 그것이 동료 교사의 수고로움을 덜기 위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맘이 편치는 않다. 학급 분위기를 위한 사전 인물 파악이라는 말도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다. 아이들의 바깥 모습은 자기 부모를 닮지만, 그 안의 모습은 교사를 빼닮는다는 말이 있다. 교육은 잠재된 우수성을 발견해 주고 그것이 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것은 교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지만, 아이에 대한 색안경을 버리지 않으면 신기루에 불과한 일이기도 하다.

개학 첫날, 출석부 마지막 번호에 기록된 아이가 있었다. 원래는 앞 번호에 위치해야 할 성씨였지만, 조만간 학교를 그만둘 가능성이 있는 아이라는 표시다. 첫날부터 나타나지 않더니 일주일 내내 결석을 했다. 비상연락망에 있는 전화번호도 불통이고 전임 담임에게 물어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깨가 축 처진 한 아주머니가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입구 쪽에 있던 누군가가 무슨 일로 왔는지 물었다. 담임을 만나러 왔는데 몇 반인지도 모른다는 말에 교무실의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그 눈길에는 막연한 경계심이 실려 있었다. 느닷없이 찾아왔으니 사연 있는 학모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지사였다. 연신 굽실거리는 모습이 그런 상상을 불러왔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우리 반 진희의 엄마가 아닐까 싶었다.

나는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의자를 내밀며 자리를 권했다. 빈손으로 오기엔 면목이 없었다며 작은 화분을 내 책상 위에 올려 주었다. 그동안의 사연을 묻자 진희는 학교에 다닐 수 없을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 깊은 한숨과 함께 자퇴나 휴학을 시켜야겠다고 했다. 진희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고 전업주부였던 진희 엄마 또한 충격으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엄마의 방황은 진희의 가출로 이어졌다.

수소문 끝에 거리의 친구들과 어울리던 진희를 찾았으나 교실로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린다고 했다. 뿌리를 잃고 시들어가는 진희를 그냥 정리할 수는 없었다. 상한 영혼을 만나지 않으면 내 가슴에 두고두고 가시가 될 것만 같았다. 자퇴서는 본인 확인 도장이 필요하다. 부모가 대신 찍고 처리할 수도 있지만, 서류 정리를 미루었다.

다음 날, 진희는 어쩔 수 없이 내 앞에 나타났다. 여고생이 감당하기에는 무거운 현실이었던 모양이다. 물미역처럼 늘어트린 머리카락이 얼굴의 절반 이상을 가리고 있어서 그렇지 어딘지 착한 구석이 있어 보였다. 머리를 푹 숙인 채 정수리의 모발을 서너 가닥 뽑더니 토막 내기에 몰두하는 모습에 진희의 손을 잡았다.

그날 우리는 학교 뒷산으로 향했다. 소나무가 울창하고 일명 폭포라고 부르는 물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다가 진희에게 말을 걸었다. 학교를 그만두면 어디로 갈 곳이 있냐고 물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어떻게든 갈라진 논바닥 같은 진희의 마음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에 아버지를 끌어들였다. 네 아빠가 이 자리에 계신다면 무어라 하실까. 진희는 입술을 달싹이며 무어라 대꾸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획 돌렸다. 애써 눈물을 삼키는 진희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선생님은 진희가 교실에 앉아 있는 모습을 꼭 보고 싶구나. 십 년 뒤의 네 모습을 생각해 보렴. 내가 도와줄게”

“자신 없어요.”

또 우리는 학교 뒷산에서 만났다. 마지막 날이었다. 나흘 동안만 나를 만나 달라고 한 것이었다. 네 번을 시도해도 안 되는 일은 받아들이자는 나름의 불문율에 의한 시도였다. 진희에게 내 눈을 쳐다보라고 했다. 뜬금없는 나의 요구에 진희의 눈빛은 흔들렸다. 짜증이 나는지 몸짓이 살짝 거칠어졌다. 아예 눈을 감아 버렸다. 둘 사이에는 침묵이 찾아왔고 가냘픈 듯 우렁찬 새 소리를 듣고 있던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선생님은 새 소리가 왜 이렇게 애절하게 들리는지 모르겠네. 방향을 잃고 허둥대는 어린 새가 잠시 학교로 날아들었으니 그냥 보내지 말라고 하는 듯하구나.”

“......”

“진희야, 올 한해 네 담임으로 살고 싶은데 안 될까?”

“......”

그날 진희는 교문 밖에 머물던 중심추가 교실 쪽으로 살짝 기울었다. 진희는 쉬는 시간에도 조용하고 말수가 없으며 묻는 말에 ‘예, 아니오.’로만 응수했다. 표정은 어두웠고 친구가 없으니 주변에서는 말이 많았다. 수업시간에도 책상에 엎드려 있고 딴 세상을 꿈꾸는 듯한 모습이 불안하다는 것이다. 주변에서는 괜스레 험한 꼴 당하기 전에 진희가 원하는 대로 학교에서 내보내라고 했다. 뭐 하러 사서 고생하냐고 했다.

진희에게 교과서 진도를 물었다. 알 리가 없었다. 오히려 주변의 아이들이 긴장하는 기색이었다. 침묵의 무게감을 이기지 못한 짝이 나서서 현대시 ‘폭포’에 대한 학습활동을 할 차례라고 했다. 폭포의 모습이나 소리를 보고 들으며 떠오르는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해 보자는 내용이었다. 평소 재바르고 분위기를 이끄는 반장이 야외 수업을 하자고 애교 섞인 협박을 시작했다. 폭포가 있는 뒷산으로 가야 느낌이 온다며 버텼다. 말이 폭포지 장마철이 되어야 제법 물소리가 들리는 계단식 개울이었다. 환호성과 함께 제창 삼창에 이어 ’쌤 사랑해요‘까지 외치는 아이들을 어찌 이길 수 있으랴.

모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발적으로 생각을 나누어 보기로 했다. 호시탐탐 멋 내기를 시도하다가 꾸지람을 듣는 아이가 답했다. 아침 자습시간마다 옷차림을 살피는 선생님의 매서운 눈길처럼 느껴진다고 하자 끄덕임의 함성이 터졌다. 다른 아이는 사랑하는 사람과 어디론가 떠나라고 보채는 소리로 들린다고 했다. 구르는 낙엽을 보고도 웃음보가 터지는 나이라더니 부러움과 놀림이 뒤섞인 괴성이 산 공기를 덮었다.

어느덧 발표가 모두 끝날 무렵이었다. 시간이 조금 남아서 지나가는 말로 발표하지 않은 친구를 추천하라고 했다. 기다렸다는 듯 반장이 냉큼 진희의 목소리를 한번 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팔십 개의 눈망울이 일시에 진희를 향했다. 쉬는 시간에도 수다를 떠는 일이 없으니 아이들은 나름 궁금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을 것이다. 진희의 낯빛에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하더니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질 듯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아이들은 당황하는 눈치였다. 나도 순간 어지럼증이 일었다.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모래성이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맘이 급해졌다. 말하기 힘든데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며 위기를 벗어나려 할 때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는데 세차게 흐르는 폭포는 공부하지 않고 방황하는 저를 바라보시며 펑펑 눈물을 흘리시는 듯해요. 폭포 소리는 저를 꾸짖는 아빠의 목소리 같이 느껴진다는 말에 산속 분위기가 순식간에 진지해졌다. 작은 탄식과 위로의 몸짓이 여기저기서 새어 나왔다. 진희를 대하는 친구들의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말을 건네고, 점심시간에 식당에 같이 가기, 쉬는 시간에 진희 주변에서 수다 떨기 등.

개학한 지 한참이 지나서 학교를 그만 다니겠다고 온 아이, 아버지의 사랑을 잃고 가출까지 시도한 아이에 대한 주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수업 태도가 무기력하여 교사를 힘들게 하는, 학급 분위기만 망쳐 놓을 거라는, 급기야 나의 노력은 수포가 될 거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걱정을 딛고 진희는 하루가 다르게 표정이 밝아지더니 학교생활을 무사히 마쳤다.

졸업식 날, 진희는 꽃다발과 편지 한 장을 내밀었다. 지금도 폭포 소리를 듣거나 진로가 간호학과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만나면 그 순간이 떠오르며 가슴이 뜨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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