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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울 Aug 22. 2023

칠판과 분필을 추억하며



학년이 바뀌는 날, 첫 수업시간이었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어디선가 ‘쌤, 예뻐요.’라는 소리가 날아들었다. 남학생반 특유의 간 보기용 발언이라는 것을 내 어찌 모르겠는가? 점잖게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라며 타일렀다. 그러자 다른 구석에서 질문이 있다며 손을 번쩍 들었다. 뭐냐고 하자 ‘쌤, 거짓말하면 안 된다는 거 맞죠?’ 아뿔싸, 순식간에 교실은 포복절도하는 아이들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녀석은 더벅머리에 얼굴은 온통 여드름으로 울긋불긋한 피부색을 띠고 있어 저절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붉으락푸르락해지는 맘을 가다듬으며 수업을 시작했다.

분필 가루가 봄철의 꽃가루처럼 하얗게 떨어져 내렸다. 분필 가루가 점점이 날리면 맨 앞줄의 아이들은 몸을 피하기 일쑤였다. 나름 요령껏 칠판을 닦아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칠판이 너무 오래되어 낡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칠판 가득히 판서했고 아이들은 필기하기에 경황이 없었다.

꾸벅꾸벅 조는 아이를 깨우며 교실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던 녀석의 이름표를 보았다. 궁서체의 하얀 글씨가 단정했다. 배현준. 가만가만히 다가서는 나와 눈을 마주치자 씨익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눈빛으로 꾸짖자 두 손을 모으고 비는 시늉을 했다. 연이어 재채기에 콧물까지 훌쩍이며 목을 긁기 시작했다. 발그레 성낸 피부와 긁어서 진물이 흐르다가 꾸덕꾸덕해진 딱지가 교복 깃 사이로 슬쩍 보였다. 아토피 피부염이었다.

현준이를 교무실로 불렀다. 상태를 살피고 양호실로 보내려고 한 것인데 뜬금없이 칠판 청소를 맡겨 달라고 했다. 분필 가루를 피해야 할 녀석이 앞장서니 뜨악할 노릇이었다.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는 남학생들을 어떻게 길들일까 고민하던 터라 반신반의하며 그러라고 했다. 얼마나 잘하나 두고 보자는 맘이었는데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교사들이 하나같이 혀를 내둘렀다. 오래된 칠판이건만 새것도 이처럼 깔끔할 수 없다고 이구동성이었다.

그 당시, 특정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분필 끝을 톡톡 부러트려 판서하는 선생님이 있었다. 몸에 밴 버릇이었다. 누군가의 말투나 몸짓을 따라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최고의 개그다. 쉬는 시간에 그 행동을 따라 하는 아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칠판 주변은 부상당한 분필로 가득했다. 그야말로 분필의 수난 시대였다. 타일러도 보고 벌점을 주겠다며 협박도 해 보았지만 피 끓는 청춘의 모방 욕구를 억누를 수는 없었다. 일일이 따라 다니며 감시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서로 모르쇠 작전으로 뻗대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자퇴의 경험이 있고 또래들보다 한 살 많은 현준이를 불렀다. 학급에서는 형이라고 불리며 나름 말발이 서는 듯했다. 그의 힘을 빌려보자는 심산으로 기회를 엿보았지만,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색함을 없애려고 무심하게 물었다.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잠깐의 침묵 뒤에, 갯벌처럼 그의 몸을 휘감고 있던 삶의 무게가 끌려 나왔다. 세상은 왜 정당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채 꽃다운 아이에게 아픔을 안겨 주는 것일까.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먹고사는 일이 빠듯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교 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의 힘겨움을 다 알기도 전에 현준이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장례식을 치르고 현준이는 까칠한 모습으로 등교하였다.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눈빛이 점점 깊어지고 말수가 줄어들었다.

며칠 뒤, 제법 넉넉함이 묻어나는 중년의 여인이 찾아왔다. 자신의 거주지로 현준이를 전학시키겠다고 했다. 졸지에 고아가 된 조카를 거두겠다니 다행이라고 생각되면서도 가슴 한쪽이 시렸다. 분필을 던지며 장난치는 동생뻘 급우들을 어르고 달래며 잘 지냈는데. 현준이는 분필을 대하는 자세가 늘 진지했다. 한지로 예쁘게 옷을 입혀서 가지런히 세워 둔 분필을 보노라면 손님을 기다리는 가족처럼 단아했다. 쉬는 시간이면 흩어진 분필의 매무새를 가다듬고 다시 수업을 준비했다. 몽당 분필은 집게에 따로 끼워 쓰기 좋도록 만들었다. 지금껏 분필을 그토록 진심으로 대하는 학생은 없었다.

현준이를 배웅하는 날이었다. 말없이 악수하는 아이, 어깨를 툭 부딪치며 말을 건네는 아이, 허공에 대고 발길질하는 아이, 방식은 달라도 마음은 같았다. 친구 같은 형에 대한 애정이 그만큼 깊었다. 현준이는 나에게 조그만 상자를 내밀었다. 포장지를 뜯어보라는 아이들의 성화에 열지 않을 수 없었다. 노란색 한지로 하나하나 곱게 감싼 분필이었다. 분필집게를 쓰지 않는 나를 위한 이별의 선물이었다.

삼십 년이 넘게 분필 가루를 마시며 가르침의 세월을 걸어왔다. 학교는 엄청나게 바뀌었고 앞으로는 더 달라질 것이다. 아이들은 교실에서 각종 영상물을 시청할 수 있고 인터넷도 활용할 수 있다. 최신형 수업 자료가 넘쳐난다. 교실마다 물 칠판을 설치했으므로 이제 분필 가루는 날리지 않는다. 전자칠판에 익숙해져 가는 아이들에게 분말로 떡이 된 칠판지우개 두 개를 한 손에 하나씩 들고 서로 맞부딪혀 털어내라고 하면 어떤 표정일까.

교실이 세련될수록 학교는 오히려 메말라 간다. 분필이 유일한 수업 도구였던 시절엔 끈끈한 정이 있었다. 신기루처럼 가물거리는 칠판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집중하려고 애쓰면서도 뜨거운 우정과 인정이 있었다. 그러기에 뿌연 분필 가루가 날아다니던 초라했던 그 시절이 더욱 생각난다.

대충 문지른 칠판이 지저분하다. 처삼촌 벌초하듯 하는 한심한 놈들. 분무기로 물을 칙칙 뿌리고 다시 칠판을 닦는다. 어느새 햇살은 칠판의 가장자리까지 스며들어 왔다. 칠판 귀퉁이에 몸을 반쯤 기댄 채 분필들이 서 있다. 빛을 받아 더욱 뽀얀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또각또각, 써 내려가는 칠판 글씨 사이로 이제는 마흔 살 언저리에 있을 현준이가 걸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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