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예순 살 생일날이다. 며느리가 준비하는 상차림이라니 대견함과 기대감으로 새삼 맘이 뻐근해진다. 안내하는 장소의 상호가 정겹다. '감나무집'이라는 간판에서 고향집 마당어귀를 떠올리며 방으로 들어선다. 준비된 반찬들을 보니 입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한다. 여자는 남자의 기미상궁이라도 된 것처럼 젓가락질이 바빠진다. 케잌을 자르고 술잔을 부딪치며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커다란 옹기가 위풍당당하게 입장을 하니 임금을 맞이하는 신하처럼 다소곳이 맞이하다. 해신탕이라고 한다.
‘해신탕’이라는 이름은 바다의 신이 즐겨먹었다는 데에서 유래했다. 예전에는 귀족들이 여름철 더위를 이기기 위해 즐겨먹었던 음식이다. 삼계탕에 낙지, 전복, 새우등 다양한 해산물을 넣는데 보양식으로는 최고로 꼽힌다. 삼계탕을 먹으면 몸에 열이 오르는 경우가 있는데 찬 성질의 전복과 고단백의 낙지를 함께 끓여 먹으면 중화가 된다고 한다.
뜨끈한 국물 맛이 오묘하다. 사발에서 피어오르는 온기 사이로 한 남자가 걸어 나온다. 남자는 손바닥 크기의 촌 동네에서 자라기엔 아깝다는 동네사람들의 입방아에 등 떠밀려 도시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열두 살부터 시작된 유학 탓인지 늘 사랑에 배고팠다. 그래서 어둠을 싫어하고 정에 민감한 것일까. 남자는 매우 따뜻하다. 맘을 다쳐서 절뚝거리는 사람을 보면 제비다리 고치는 흥부의 심정으로 붕대를 동여매는 일에 부지런하다. 돈이 없어 갈팡질팡인 친구를 만나면 지갑을 여는 손에 망설임이 없다. 그래서 직장이나 친지들로부터 인사말이 끊이지 않는다. 여행을 가도 주변인들의 선물을 빠짐없이 챙겨야 맘이 편하고,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남자의 입 꼬리는 귀에 걸린다.
남자의 국 사발과 옹기 사이를 들락거리는 여자의 손길이 나비처럼 날개 짓친다. 해신탕의 쌉쌀한 향기에 실린 여자의 넋두리가 방안 가득 퍼져나간다. 친지들에 대한 따뜻한 남자의 물질적 배려를 헤프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비빌 언덕 없이 시작한 신혼살림에 곳간이 새는 낌새가 들면 열쇠를 채우느라 소란스러웠다. 성큼성큼 앞서가는 주변의 상황에 안달을 내며 남자의 느긋함에 눈 흘기고 버럭질도 했다. 월급쟁이가 허리띠 졸라매봤자 늘그막엔 집 한 채 차이라는 남자의 주장에 맞서는 여자의 마음은 수시로 팍팍했다.
둘은 다방면에서 확연히 달랐다. 보릿고개를 겪으며 질리도록 먹은 죽에 대한 기억 때문에 남자는 걸쭉한 음식 앞에선 쭈뼛거린다. 여자는 물기 없는 밥상을 대하면 모래사막처럼 숨 막히는 답답함에 허덕인다. 또 국수를 이유 없이 싫어하는 남자의 취향을 까탈스럽다며 손사래를 친다. 어디 그뿐이랴. 약속시간에서도 얼렁뚱땅한 개념과 철두철미한 태도로 인한 대립각이 수시로 맞선다. 청소할 때 정리정돈에 열중하는 남자와 먼지 닦아내기에만 혼신의 힘을 쏟는 여자다. 물건을 고를 때도 매장을 통째로 사들일 듯 구석구석 들쑤시고 다니는 모습에 남자는 가자미 눈이 된다. 살찌우는 방법에 열중하는 남자와 살 빼는 운동에 몰입하는 여자의 아웅다웅은 해신탕처럼 오래토록 끓었다.
세월이라는 옹기에 나란히 담겨진 두 사람은 강산이 변하는 모습을 세 번이나 함께 보았다. 처음엔 서로의 맛을 뽐내기 위해 엎치락뒤치락이었다. 서로의 마음에 흙바람을 일으키며 대못 박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따뜻한 삼계탕은 전복과 낙지의 입성이 반가울 까닭이 없었을 것이다. 밀쳐 내보기도 하고 토라지기도 해보지만 한 옹기에 담겼으니 양보하고 품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계절이 대여섯 번 바뀌자 악쓰고 도리질을 치던 여자의 뻣뻣한 맘에 힘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남자가 불혹이 되니 작은 일에도 바르르 떨던 맘이 잦아들었다. 여자가 갱년기에 접어들면서는 서로의 말에 가끔씩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드라마를 즐겨보는 여자를 한심스레 바라보던 남자가 이제는 드라마에 빠져서 훌쩍거린다. 트로트를 흥얼거리는 남자 앞에서 가곡을 부르며 고상을 떨던 여자는 미스터트롯에 열광한다.
해신탕은 짧게 끓이면 제 맛이 나지 않는다. 오랜 시간에 걸쳐 푸욱 고아야 제 맛이 난다. 바다의 산삼이라 불리는 전복과 타우린이 풍부해 혈액을 청소해준다는 낙지가 듬뿍 들어 있어야 제대로 몸보신을 할 수 있다. 이제 막 결혼한 아들과 며느리를 지그시 바라본다. 손님상에 올릴 차림을 시작하는 해신탕처럼 부디 잘 우려지길 바라며 숟가락을 열심히 움직인다.
불끄기
남편은 오래토록 병을 앓고 있다. 그의 병을 고치려고 아내는 삼십 여년을 애써 보았지만 차도가 없다. 오늘도 욕실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다. 남편이 잠결에 화장실을 사용하고 아침이 되도록 전등을 끄지 않은 것이다. 아내의 앙칼진 목소리가 공기를 가른다. 남편의 동선을 따라 다니며 켜진 스위치를 누르기에 지쳤기 때문이다. 켜는 일은 잘도 하면서 끄지 못하는 이유를 알 수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절약을 호소하며 달래기도 하고 벌금제도를 시행하겠다며 협박도 해보았으나 아내의 처방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러니 이제는 악을 써대는 목소리만 나날이 높아진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될 텐데 왜 불끄기를 제대로 못하느냐. 줄줄 새는 전기세가 아깝지도 않느냐. 욕실 문이라도 닫지 않으면 오며가며 불빛을 확인이라도 할 것인데 정절을 지키는 열녀처럼 문깃을 꼭꼭 여미는 이유가 무엇이냐. 대낮에도 스위치를 켜는 못된 습관은 어디에서 생겼느냐. 전기를 물쓰듯 해대니 부자 되기는 애시 당초 글렀다며 악담을 퍼부어댔다. 그러나 남편은 모른 척 딴 짓이다. 오히려 아내의 화에 부채질하는 말을 한다.
자동센스가 달린 전등불로 바꾸면 될 일 아니냐. 내가 번 돈으로 내가 전기세 내는데 왜 그러느냐. 나는 멍청이라서 그러니 똑똑한 당신이 끄면 되지 않느냐. 차라리 전구를 모두 뽑아 버리고 촛불을 켜고 사는 편이 낫지 않겠냐. 수십 년 째 똑같은 잔소리를 듣고 있자니 지겹다며 적반하장으로 투덜거린다.
각자의 생각만 쏟아내는 소리에 욕실의 불빛은 질린 듯 하얗다. 불끄기를 사이에 둔 팽팽한 신경전은 수시로 맹렬해진다. 마누라의 마음은 조금도 읽을 줄 모르는 중늙은이. 언제까지 똑같은 일로 어르고 달래야 하나 싶어 가슴에서 불기둥이 치솟는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될 일인데 상대방을 얼마나 무시했으면 그러나 싶어 남편의 머리를 쥐어박듯 스위치를 세차게 눌러 버린다.
"돈 아까운줄 모르는 헤픈 사람아. 죽이나 국수를 보면 가난했던 시절이 떠오른다며 도리질하더니 말짱 흰소리였구먼. 여태껏 참을 만큼 참고 살았다. 혼자서만 손톱여물을 썰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수시로 복장 터지는 소리나 해대는 주제에"
저렇게 허공에라도 내지르면 마음의 불이 꺼지려나. 출근길이 바쁜 아내는 남편의 가슴에 대못을 박으며 현관문을 향한다. 남편도 아내의 잔소리를 말려 버리려는 듯 헤어 드라이기 소리를 한껏 높이고 일부러 노래까지 흥얼거린다. 아내의 마음은 금방이라도 터질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풀었다.
겨우 맘을 누그러트리고 퇴근해서 보니 불이 또 켜져 있다. 범인은 뻔하다. 안방 드레스룸을 사용하는 사람은 딱 둘이니까. 아내는 허공에 대고 ‘정신머리를 어디에 달고 다니는지 모르겠다.’고 혼잣말로 투덜댄다. 아침부터 지금껏 종일토록 켜두었다 생각하니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그런데 딸깍 소리와 함께 불빛이 사라지자 불현듯 마음의 불끄기를 제대로 못하는 사람과 사는 남편도 참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마음에 불이 쉽사리 켜진다. 모닥불, 장작불, 산불 등 형태를 달리하는 불이므로 자칫 어줍잖게 대응하면 오히려 불길에 부채질하는 꼴이 되고 만다. 발화점도 죽 끓듯 변덕스럽다. 발화점은 물질이 연소하기 시작할 때 온도로서 물질에 따라 다르다. 성냥골, 종이, 나무를 가열하면 성냥골이 가장 먼저 타고, 종이가 그 다음에 타며, 나무는 불이 붙지 않는다. 아내의 발화점은 성냥골보다도 낮다가도 나무보다 높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따라 다니며 불끄기에 바쁘다.
한번은 해외로 가족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남편은 언제 다시 오겠냐며 가는 곳마다 길거리문화와 기념품을 싹쓸이로 경험하고 구입했다. 최소의 경비로 최대의 효과를 얻으려는 아내는 수시로 눈을 흘겼다. 서서히 여행의 즐거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내의 가슴에 조금씩 지펴지던 불이 급기야 로마에서 산소를 만났다. 트레비 분수가 있는 광장에는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때 아들이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남편은 빙그레 웃으며 그곳을 향했다. 거기에는 키 큰 흑인 남자가 '원달러 플리즈'라 외치며 손에는 형형색색의 고무 찰흙을 늘였다 줄이기를 반복하며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한창 '만득이'라는 고무찰흙이 유행하고 있던 터라 집에도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물건이었다.
아들의 즐거움을 위해 딸랑 1달러를 소비하는 남편을 향해 '또~~ 사려고 하냐~~'며 광장이 터지도록 소리쳤다. 공기를 가르는 앙칼진 여자의 외침에 오케아노스 조각상마저도 놀라는 찰나였다. 외국인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빨려 들였다. 남편의 여행방식을 타박하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던 아내의 가슴에서 불길은 미친 듯이 춤추었다. 이리저리 날뛰며 울부짖는 아내의 모습에 남편은 아연실색이 되었다. 기껏 1달러에 불붙은 아내를 어찌 해야 할 것인가. 남편은 또 허둥지둥 불끄기에 나서야 했다.
전등불과 마음불을 어찌 비할까. 귀밑머리가 새도록 변함없이 전등불을 못 끄는 남편도 대단하고 그런 남편과 지치지도 않고 티격태격하는 아내도 놀랍다. 아직도 보이지 않는 마음에 풍로질을 해대는 아내도 딱하지만 그런 아내 옆을 지키는 남편이 타오르는 불길에 화상입을까 걱정스럽다. 마음 한 자락 다스리기가 호락호락한 일이던가. 언젠가 천국과 지옥의 차이에 대하여 들은 적이 있다. 팔을 굽힐 수 없는 상황에서 서로의 입에 밥을 대신 떠 넣어 주는 곳이 천국이라고 하였으니 내가 못하는 일을 대신 하라는 말이 아닌가. 남편이 켜 둔 스위치를 누르는 손가락이 슬며시 서슬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