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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울 Aug 22. 2023

김선생과 박부장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한 공간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김 선생은 처음 맡은 업무인지라 걸음마 배우는 아기처럼 엉덩방아 찧기가 잦았다. 박 부장은 화통이라도 삶아 먹은 듯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입은 잠시도 쉬지 않는다. 항상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생중계하므로 듣고 싶지 않은 일까지도 저절로 알게 만들었다. 박 부장의 일주일은 '월화수목금금금' 이다. 주말을 반납한 채 일에 몰두하는 열정은 북극의 백야처럼 꺼지지 않았다.

김 선생은 이처럼 난감해 본적이 없었다. 수업을 위해 공부도 하고 조용하게 연구하며 사색할 시공간이 필요하다. 더구나 사람들과 수다를 떨거나 귀를 빌려주면 쉽사리 피로감에 휩싸이는 체질이다. 그래서 박 부장의 부산스러운 몸짓을 접하자 맘이 돌아앉기 시작했다. 넋두리에 응대하지 않으면 박 부장이 눈치를 차리겠지 싶어서 일부러 대답에 인색하게 굴었다. 그러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감각이 없는 사람인지 인간성이 여유로운 것인지 도무지 박 부장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답답해진 김 선생은 그녀에 대한 정보수집에 들어갔다. 인맥을 동원하여 박 부장과 같이 근무했던 사람을 알아내어 넌지시 물었다. 그들의 대답은 '정신이 쪼매 없지요. 워낙 일하기를 좋아해서 부산스러울 겁니다.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였다. 긍정과 부정적 태도가 애매하게 혼합된 대답은 박 부장과 함께한 세월의 채도를 유지하려는 뉘앙스였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겠지만 그럴 수도 없으니 퇴근시간 무렵이면 김 선생은 파김치가 되었다. 칼 퇴근을 평생의 신조로 살아온 김 선생은 일하는 박 부장보다 먼저 나서는 맘이 편치 않았다. 당연하고도 정상적인 퇴근에 왜 미안한 맘을 가져야하나 싶어 속이 상하기도 했다.

교문을 벗어나면 홀가분할 줄 알았지만 집에 도착할 때까지도 귓전을 울리는 소리가 있다. 우리 똥강아지. 쉬는 시간마다 찾아드는 아이들을 향해 날리는 박 부장의 단골멘트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으니 꿈속에서도 똥을 싸는 강아지 모습이 나타날 지경이다. 박 부장과 개인사를 조금씩 내놓을 정도로 낯가림이 옅어질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농담처럼 '나는 부장님보다 머리가 나쁜가보네요. 업무를 볼 때 옆에서 말을 걸거나 시끄러우면 집중할 수가 없다'며 넌지시 말했다. 이 정도면 삼척동자도 알 만한 소리가 아닌가. 그러나 박 부장은 꿈쩍도 않았다. 도떼기시장 같은 분위기는 계속되었다.

한번은 큰 행사를 앞두고 아이들의 간식을 구입하러 가자고 했다. 인터넷으로 배달시키면 되지 않느냐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직접 가야 과자, 과일, 음료수 등을 행사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억지로 시장에 따라 나온 아이처럼 김 선생은 투덜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박 부장은 '우리가 발품을 팔면 하나 사는 가격에 두 개를 아이들에게 먹일 수 있잖아'라고 했다. 연이어 김 선생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내 돈도 아닌 돈을 쓰면서 뭐 하러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삐뚤어진 앞니를 드러내고 웃는다. 먹거리를 직접 고르고 살피는 모습이 어미 새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박 부장에 대한 윗분의 신망은 두터웠다. 개인시간을 반납하고 헌신적으로 앞장서니 당연했다. 정확한 시간만큼만 일하는 전자저울 같은 동료들의 수근거림이 간간히 들렸다. 유유상종이라더니 김 선생은 자석에 끌리듯 그 곳으로 달려가서 합류했다. 아마도 삐딱선을 타고 있는 속마음에 정당성을 부여하고픈 자기애의 일종이 아닐까 싶다. 소리는 소리를 부른다고 하더니 손가락질하는 소리는 차츰 퍼져갔다. 박 부장에게 귀띔해 주어야 할지말지가 고민되었다. 큰 맘 먹고 외부와 내통하던 신하가 자백하듯 풍문을 알렸다. 그런데 당사자는 가벼운 한숨만 내쉴 뿐 별 반응이 없었다. 두어 시간 동안 잠시 조용할 뿐, 박 부장의 일상은 원상복구 되었다.

날이 갈수록 박 부장을 찾는 고객들은 늘어갔다. 작은 일에도 오해와 이해를 들락거리는 여고생들의 예민한 마음들이 포근한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비밀스런 이야기를 털어놓고 가는 날이면 박 부장의 고민은 깊어지고 낯빛에는 연민이 가득했다. 또 안개와 구름 같은 미래 앞에서 허둥대는 아이들에게 길잡이 노릇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자녀의 반항기를 감당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학부모의 눈물바람을 품으며 같이 울어주느라 밤이 깊었다. 그녀는 시들거리는 아이들에게 활기를 불어 넣는 산소 같은 존재였다.

김 선생은 지금껏 다양한 동료들을 접했다. 질서와 규범을 강조하는 엄격한 훈장형, 응석을 받아주며 그저 오냐오냐 바람막이가 되어주려는 보호자형, 자유와 즐거움을 마음껏 허용하는 할매형, 선생과 아이가 구분 되지 않을 정도로 맞장구 능력이 뛰어난 친구형 등등. 참으로 제 각각이었다. 그렇다면 박 부장은 어떤 사람일까. 아이들의 버르장머리를 따끔하게 가르치니 훈장형이고 서랍에 간식거리를 채워두고 출출함을 호소하는 아이들에게 틈틈이 내어주니 보호자형이라 해야 한다. 성적에 주눅 들고 긴장된 아이들의 숨통을 트이게 해주니 할매형이라 할 수 있다. 또 바닥을 치며 시들어가던 아이도 그녀와 깔깔대면 싱싱해지니 공감형의 모습도 갖추었다 할 것이다.

계절이 한 바퀴를 돌자 두 사람은 헤어졌다. 사람과의 만남은 크레파스처럼 우리들의 삶에 조금씩 색깔을 보탠다. 3월 앞에 섰다. 시처럼 살았던 박 부장을 떠올린다.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울부짖는 담쟁이들을 쓰다듬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가면 된다고 힘을 주었던 사람이다. 김 선생도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 떨고 있을 담쟁이 잎들을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 담쟁이 잎 하나가 되어보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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