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추석날 저녁, 아들 내외가 들어섰다.
정갈한 옷차림의 며느리가 주방으로 향하자,
아들의 어깨가 살짝 굳는다.
“뭘 도와드릴까요, 어머님?”
나는 손사래를 치며 며느리를 소파에 앉혔다.
“아무것도 할 거 없어. 호텔식 뷔페를 주문했거든.”
명절 특가로 나온 비대면 상품이었다.
결혼 전 약속대로, 며느리가 명절 음식에 지쳐 쓰러지는 일은 만들지 않기로 했다.
낯빛이 환해진 아들 부부는 엄지척을 보냈고,
나는 손가락 하트로 화답했지만, 입꼬리까지는 닿지 않았다.
며느리가 내민 보따리엔 추어탕, 도토리묵, 김치, 송편이 정갈히 담겨 있었다.
안사돈의 손맛이 배어 있는 음식들이었다.
입안 가득 고소한 송편 앙금이 퍼질 때,
자식을 나눈 인연이 이렇게 깊을 수도 있구나 싶었다.
추석날 아침, 큰집에서 차례를 지내기 위해 서둘렀다.
주방은 한산했고, 형님 혼자 분주했다.
질부들은 정부 방침을 핑계 삼아 오지 않았다고 했다.
네 명의 며느리들이 합심해 “올해는 가지 말자”고 약속했다니,
그 연대가 기특하기도 하고 얄밉기도 했다.
결국 내 며느리만 외톨이가 되었다.
처가에 빨리 가야 한다는 핑계로 차례만 모시고 아이들을 돌려보냈다.
집에 돌아오니 아들 부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나는 주방 소리를 죽이며 밥을 새로 지었다.
문어를 삶고 고기를 굽고, 밑반찬을 내어 식탁을 차렸다.
식사를 마치자 남편이 과일을 깎아 쟁반에 올렸다.
연신 애교를 부리는 며느리를 보며 남편의 얼굴이 풀린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더니, 나는 질끈 눈을 감는다.
아이들을 친정에 보내며 과일과 반찬을 꾸려준다.
그들의 뒷모습이 문밖으로 사라지자,
온몸이 천근만근이다.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문득 중얼거린다.
“어른 노릇, 참 힘들다.”
세월이 어느새 나를 ‘어른’이라 부르게 했지만,
내 삶은 여전히 허둥대는 새댁의 연장선에 있다.
그럼에도 어른이란, 결국 자기 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일 터.
이왕지사 내가 맡은 감투라면,
오늘도 자릿값은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